체코의 비영리단체가 아프리카 곳곳에 스케이트 파크를 짓고 있는 이유

체코의 비영리단체가 아프리카 곳곳에 스케이트 파크를 짓고 있는 이유

에스콰이어 2024-03-27 21:00:00 신고



SWB(Skate World Better)를 설립하기로 결심한 지도 벌써 5년이 되어간다. 어린 시절 스케이트보드를 접한 이후로 사는 동안 그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우리는 스포츠가, 개중에서도 특히 스케이트보딩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독특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아프리카 전역에 스케이트 파크를 건설하는 비영리단체를 만든 건 그런 이유였다. 우리가 젊었을 때 경험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 특히 한 줄기의 작은 희망, 기쁨, 즐거움이 필요한 나라의 사람들도 경험하도록 하고 싶었으니까. 스케이트 파크의 라이프스타일은 완전히 본질적인 삶이다. 젊은이들은 노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경험 많은 사람들은 이제 막 시작한 초보자들에게 영감을 주며, 요즘엔 남성과 여성이 뒤섞여 함께 탄다. 이것이 바로 우리 프로젝트의 주제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런 의문을 가질 것이다. ‘왜 꼭 아프리카인가?’ 우리는 종종 예상치 못한 편견을 만난다. 아프리카에 필요한 것은 물과 음식인데 왜 스케이트 파크를 만들고 있냐는 것. 이에 대해 즉답할 수 있는 사실이 몇 가지 있다. 나는 코펜하겐대학교에서 아프리카 연구를 전공하며, 대학원 졸업 논문으로 SWB 프로젝트를 채택했다. 하지만 석사학위는 오히려 그냥 부차적인 것이었다. 친구들과 아프리카에 스케이트 파크를 짓는 그 자체에 관심이 더 많았다. 아프리카를 연구한 사람으로서 평소에 아프리카 대륙의 발전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았고, 다양한 국가들에 스케이트 파크 짓는 것을 통해 개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스케이트보딩은 젊은 사람들의 심리적 측면에서 아주 유용하다. 혼자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인데,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이기고 싶다는 마음도 심어주며, 보더 개개인의 관점에서는 자기 스스로를 능가하고 이기고 싶다는 열망이 자연스레 피어오른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첫눈에 스케이트에 매력을 느낀다. 스케이트보딩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호기심 많은 이들은 보드를 집어 들고 자발적으로 타보거나 곧장 개별 기술들을 시도해보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때가 중요한 터닝 포인트다. 그 터닝 포인트가 쉽진 않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어렵다는 걸 깨닫고 바로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극복하겠다는 마음과 포기하지 않으려는 열망이 있는 이들은 끊임없이 시도한다. 몇 시간, 때로는 며칠, 때로는 몇 주 동안 도전에 매진하고, 결국 성공하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의 엄청난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이 원리는 삶 자체에 대한 은유이고, 우리가 스케이트보딩이 삶의 태도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이유이며, 애초에 SWB를 시작한 이유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무언가 다른 것, 원초적인 계획이 아닌 것, 각자 자신에게 적합하다고 느끼는 것을 제공하고 싶었다. 전통적인 형태의 개발 지원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온 마음으로 믿는 길을 선택했을 뿐이며, 어린이와 젊은이는 수십 년 안에 아프리카의 새로운 얼굴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했을 뿐이다. 그들이 친구들과 스케이트 파크에서 보낸 시간 덕분에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키우고 건전한 우정을 쌓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 몰라’ 하며 기대한다. 그런 경험이 그들이 삶에 접근하는 방식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을.


파트너, 팀 그리고 동네 사람들

아프리카는 일반화하기 어려운 곳이다. 멀리서 보면 대륙 전체가 특정 고정관념으로 뭉쳐질 수 있지만, 그 안의 국가들은 각기 다르며, 각각의 갈등을 겪고 있다. 한 나라에서는 정치적 문제가 만연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종교적 이견이, 또 다른 나라에서는 민족 간의 충돌이 만연하다. 스케이트 파크는 어디에 있든 이러한 불화를 없애준다. 함께 스케이트를 타러 다니는 두 친구는 종교적 차이나 심지어 피부색 차이도 잊어버린다. 그들은 오직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사랑이라는 공통점, 그리고 상대방보다 더 많은 새로운 것을 해내려는 열망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스케이트보드 커뮤니티에 속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말의 진실함을 알 것이다. 전 세계 보더들은 함께 여행하고, 소통하며, 무엇보다도 하나의 대가족처럼 느낀다. 그러니까 우리의 사명은 이 가족을 아프리카의 새로운 친구들로 확장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스케이트보딩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들이 또 다른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할 수 있다는 순수한 믿음이 있었다. 우리는 두 가지 근본적인 사항에 집중했다. 올바른 파트너(리더)의 선택, 그리고 그 후의 고품질 건설 작업. 주위에 운동장이나 여가를 즐길 공공장소가 전혀 없는 지역에서 스케이트 파크는 모든 아이들 관심을 끌어들인다. 도시에 스케이트 파크가 생기면 며칠 만에 소문이 멀리까지 퍼지고, 예상치 못한 건설물을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이런 반응은 그 많은 아이들과 함께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의 파트너들은 항상 스케이트보딩 교육과 다른 교육을 결합한 복합적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우리가 스케이트 파크를 지은 지역의 아이들은 많은 경우 한 번도 학교에 다닌 적이 없고, 심지어 누구도 그들에게 글쓰기, 수학, 돈 다루기, 예절 같은 걸 가르쳐주지 않았다.


즉 파트너란 스케이트 파크를 만들고 난 후 그 스케이트 파크를 관리하는 이들로 그게 우리가 그들을 ‘리더’라 부르는 이유다. 우리는 단순히 본인들의 지역에 보드를 탈 공간을 갖고자 하는 욕구보다 더 깊은 관심과 고민을 갖고 있는 이들을 우선 선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스케이트 파크에서 직접 주최하는 수업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들에게 스케이트보드를 대여해주는 시스템을 고안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HIV/AIDS 감염 예방을 가르치는 지역 병원 사람들과 협업한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강의를 들은 후 참여한 아이들에게 스케이트보드를 나눠주는 식으로, 배움과 재미가 교환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스케이트 파크 안에서 전통 공예나 예술에 대해서도 가르칠 수가 있다.
적절한 리더를 만났다면, 이제는 우리 차례다. 재정에 따라 옵션을 정하고, 이에 따라 건설에 참여할 팀을 구성한다. 도움의 손길을 주고 싶어 하는 열성적인 사람들, 사진작가, 모험가들이 늘 가득 모인다. 하지만 팀의 핵심은 항상 스케이트 파크 건설을 담당하는 전문 건축가들이다. 우리가 지금껏 만든 스케이트 파크가 현지 재료를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퀄리티를 가졌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다.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이 지역에서 스케이트 파크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만들어낼 가치를 믿고, 본인의 여가 시간을 빼서 전문성을 제공하며, 땀을 흘린다. 팀 구성이 끝나면 각자 도구를 챙기고 거기에 수십 개의 스케이트보드를 추가해 현지로 향한다.
건설 전에 오랜 기간 지역 시장과 이용할 땅에 대해 계획하고, 그림 그리고,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프로젝트에 한 달, 그러니까 단 30일만 투자해 그 안에 끊임없이 일한다. 이 기간이 관광비자가 나오는 최대 기간이기 때문이다. 워킹 비자를 얻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지금까지 아프리카에 지은 다섯 개의 건축물을 다시 다 짓는 것보다도 어려울 것이다. 팀, 계획 그리고 장비가 준비되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또는 ‘맥주’ 같은 몇 가지 단어를 현지 언어로 배운 후 여행을 떠난다. 그 후 자원봉사자, 운전자, 아이들 그리고 정기적으로 와서 우리가 주말이나 밤까지도 일하는지 확인하는 동네 사람들까지 팀이 되어 한 달 동안 생활한다. 우리는 우리가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 그들의 지역사회를 위해 기꺼이 많은 것을 희생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콘크리트 위에서 뛰어다닐 아이들의 모습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에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곳에서 찾은 가능성들

우리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모잠비크의 수도인 마푸토에서 진행되었다. 2019년에는 3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팀을 구성해 스케이트 파크 2개를 한 번에 짓기 시작했다. 각각 도시의 다른 쪽 끝에 있었다. 자원봉사자 중에는 함께 아프리카 연구를 전공한 동급생, 어릴 적 친구들, 프라하 출신 보더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온 전문 건축가들이 있었다. 두 프로젝트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그 공원들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가는가 하는 건 마푸토 스케이트 커뮤니티, 특히 그들의 리더인 프란시스코 비뉴의 손에 달렸다. 커뮤니티는 지역 대학과 연결되었고, 추후에 남아공과 영국의 학교와도 연결되었다. 이 스케이트 파크는 몇 년 동안 수백 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그들에게 기본 교육을 제공하고, 이웃 남아공으로 유학할 수 있게 도왔다. 학생 중 몇 명은 세계 스케이트보드 대회에도 참가했다. 이탈리아나 미국에서 모잠비크를 대표했던 것이다.
우리는 추억, 새로운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사가 성공했다는 기쁨으로 가득 찬 채 유럽으로 돌아왔다. 마푸토의 스케이트 팀은 결단력과 실행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여정이 여기서 끝난 게 아니라 이제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줬다. 우리는 체코 정부가 아프리카에 제공하는 개발 지원 가능성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체코 내에서 지속적으로 홍보 중인 보조금을 발견해 신청했으며 결국 받게 되었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짐을 쌌고, 계획을 세운 후 현지 상황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2021년에 서쪽 잠비아의 지방 도시인 몽구로 날아갔다. 또다시 전 세계에서 온 24명의 팀으로 한 달 만에 리우와 플레인 국립공원 가장자리에 1200m² 규모의 콘크리트 정글을 지었다. 우리는 잠비아와 체코 간의 장기적 협력의 일환으로 이 프로젝트를 선정했지만, 위 스케이트 몽구 조직의 창립자인 지역 지도자 조니 칼렝가의 야망도 큰 영향을 끼쳤다. 잠비아에서의 프로젝트에 관해 체코의 방송사와 협력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잠비아에서 돌아온 지 2년쯤 지났을까,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체코 UNPD 파트너십의 투자자들은 우리의 첫 번째 프로젝트에 열광했고 다음 협력을 제안해왔다. 최근의 내전 그리고 ‘커피 생산량 세계 1위’라는 키워드밖에 아는 게 없는 에티오피아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2023년이 왔고, 아프리카 대륙의 외진 곳들에 스케이트보드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또 한 번 여행할 시간이 되었다. 지난 3월, 에스와티니(스와질란드)에 먼저 다녀왔다. 에스와티니 지역 스케이트 커뮤니티와 수년 동안 접촉해 왔고, 체코 프라하 기반의 회사인 ‘보니디 스케이트 파크’와 연결해 프로젝트를 구성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체코인으로 구성된 팀으로, 우리는 에스와티니의 수도 음바바네 한가운데에 네 번째 스케이트 파크를 건설했다. 건설 자금은 유럽 위원회가 부분적으로 투자해주었고, 모든 장비와 나머지 자금은 보니디 스케이트 파크가 제공했다. 그리고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12월에 에티오피아로 떠났다.


에티오피아를 위한 영양제

에티오피아는 몇 년 전 내전을 겪었다. 북부 지역 티그레이는 해방과 독립을 원했지만, 지역 전쟁의 실패로 오히려 세 핵심 민족 집단(티그레이, 오로모어, 암하라)의 더욱 극심한 고립을 불러왔다. 국가는 민족적 특성뿐만 아니라 종교적, 언어적, 사회적으로도 분열되어 있다. 민족의 하위 그룹은 서로 다른 전통과 관습을 갖고 있고, 암하라어와 오로모어는 아예 같은 언어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서로를 이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인구의 일부는 이슬람교를 믿고, 일부는 정교회 기독교인이며, 다른 일부는 지역적 형태의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을 실천한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 살고 있는 에티오피아인들은 서로 어울리고, 존중하고, 잘 지내는 데에 무수한 장애물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위의 언급된 모든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관련이 있다고 느꼈고, 그래서 다시 가보기로 결정했다. 다시 한번 UNDP 자금을 사용했고, 보니디 스케이트 파크와 또 함께 일했다. 그들은 이미 수년 동안 프라하에 콘크리트 스케이트 파크를 건설해 왔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장비와 추가 자금을 제공해주었으며, 성실한 체코인 인력을 확보해주었다. 이번 프로젝트 팀은 처음으로 순수 체코인 또는 체코슬로바키아인 그룹으로 구성되었다. 우리의 파트너는 아디스아바바에 거주하는 에티오피아 남부 토박이인 이스라엘 데제네였다. 이스라엘은 2008년에 메가비 스케이트 조직을 설립했고, 그의 여동생 무루켄은 몇 년 후 그 여성 버전인 메가비 걸스를 설립했다.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노력, 현대사회에 대한 포용 그리고 남성과 파트너 관계가 아닌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할 것을 목표로 우리는 두 메가비 조직을 지원하며 동기를 부여했다. 암하라어로 ‘메가비(Megabi)’는 ‘건강한 영양분’을 의미한다. 조직의 목표는 문자 그대로 건강한 방식으로 인간의 영혼에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었고, 그건 우리의 목표와 맞닿아 있었다.
우리는 3주 동안 에티오피아에서 끊임없이 일했다. 이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어 하는 현지인 친구 미키가 우리를 매일 픽업해주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손에 망치를 쥐어본 적도 없었지만, 수도 구석구석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단순히 조언을 주는 것을 넘어 매일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야 할 곳이 생기면 어디든지 데려다주었다. 매번 신선한 에티오피아 커피를 갖고 다니는 현지 여성들 덕분에 공사도 한층 즐거웠다.
지역의 다양한 맛을 혀뿐만 아니라 공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모든 가정은 인센스 스틱, 향, 송진 그리고 이국적인 나무의 껍질을 끊임없이 태운다. 이번 프로젝트 동안 일에 집중하는 것이 다소 어려웠던 건 그 때문이었다. 우리의 감각은 향과 맛 외에도 현지 사람들의 말과 존재감에 끝없이 점령당했다. 어쩌면 먼 길을 온 중부 유럽의 남자들이 매일 쉬지 않고 일하도록 모두가 감시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중 누구도 그것을 똑바로 거절할 수 없었고, 지역 아이들과 놀고 장난을 치느라 일은 종종 중단되었다. 우리가 왜, 누구를 위해 바로 그곳에 왔는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그저 인부로서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범을 보이고 싶어 하는 지역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었다. 작업 마지막 날에는 스케이트 파크를 노란색(에티오피아의 국가색 중 하나)으로 칠하고, 콘크리트가 조금이라도 푸르게 보이도록 몇몇 꽃과 야자수 두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밤에도 스포츠 공간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도록 주변 벽에 조명을 설치했으며, 스케이트 파크를 직접 이용해보며 테스트해보기도 했다. 다음 날 우리는 현지 여성들의 노래와 아이들의 환호에 맞춰 공식적으로 공원의 문을 열었고, 챙겨 온 스케이트보드를 나눠준 후 감격에 눈물을 흘리며 새 친구들을 껴안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번 아프리카를 떠나왔다. 이번에도 새로운 경험들과 무엇보다 평생 남을 추억들을 가득 안고서. 콘크리트 스케이트 파크를 남겨두고 노하우를 전수했으며, 운영은 우리가 아는 최고의 일손에 맡겼다. 작별 인사를 했고, 지역 어린이들의 행복 가득한 에너지를 보며 우리가 이 모든 일을 하는 이유, 그리고 곧 또다시 이곳에 와야 할 이유까지 벌써 느낄 수 있었다.



WRITER MARTIN LOU?ECKY PHOTOGRAPHER KUBO KRI?O TRANSLATOR 유은지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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