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한남, 배윤재 이현 2인전 《TERRAFORMING》 개최

히피한남, 배윤재 이현 2인전 《TERRAFORMING》 개최

에포크한남 2024-03-25 17:10:15 신고

갤러리 히피한남은 3월 23일부터 4월 13일까지 배윤재와 이현의 2인전  《TERRAFORMING》 을 개최한다. 
 

히피한남, 배윤재 이현 2인전 《TERRAFORMING》  전시전경
히피한남, 배윤재 이현 2인전 《TERRAFORMING》  전시전경

 

먹구름과 아지랑이 

글. 비평가 정영수 

이현과 배윤재는 꿈과 같은 회화적 공간 안에서 모호한 덩어리를 만진다. 이현은 연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로 먹구름을 닮은 뿌연 장소를 만들어 낸다. 그에게 뿌연 장소란 가장 자신다운 공간이다. 배윤재는 가루 물감인 분채를 겹겹이 쌓아 미묘한 색의 “무엇이든 가능한 물체”를 그린다. 그에게 이 모호한 덩어리는 온도를 갖기 전의 중립적인 사물이자, 형상이 확정되지 않은 뿌연 움직임이다.

꿈은 날카롭지 않다. 그곳에서는 아픔이나 차가움, 뾰족함 같은 것들도 모호하게 번역된다. 그러니 꿈에서는 선명한 사진을 남길 수 없다. 흔들리거나 번진 장면만을 남길 수 있을 뿐이다. 최선을 다해 기억한다 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반드시 빠진 부분이 생기고 왜곡된다. 그 왜곡이, 비논리성이, 비확정성이 꿈의 질감이 된다. 꿈의 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이 된다. 부드럽기 때문에 부드러운 것이 아닌, 날카롭고 선명한 것이 제거된, 중립적이며 건조한 부드러움이다. 이곳은 파편적이지만 봉제선을 찾을 수 없는 모호한 공간이다. 심지어 꿈에서는 수영을 할 때조차 차갑다기보다 부드럽다고 느낀다. 만약 차갑다면 잠에서 깰 시간이 다가왔다는 말이다. 잠에서 깰 시간은 언제인가? 지금은 아니다.
 

히피한남, 배윤재 이현 2인전 《TERRAFORMING》  전시전경
히피한남, 배윤재 이현 2인전 《TERRAFORMING》  전시전경

이현은 유년의 어떤 기억에서 시작한다. ‘그 날’은 뿌옇고 비가 올 것처럼 흐리지만, 조용하다. 마치 구름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고요한 이 장소에는 단 한 명의 사람뿐이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곳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 잡아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이 장소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아이가 서투르게 오려 붙여 둔 것처럼 고개를 삐뚜름하게 돌린 구름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땅도, 건물도, 자동차도 전부 구름으로 덮여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방이 구름이다.

구름이 된 마을은 이제 분명한 경계를 가지지 않는다. 나무는 집과 구분되지 않고, 땅은 하늘과 닮았다. 낮이지만, 이상하게 밤이기도 하다. 모든 것들이 모호하게 섞이는 동안 이 공간의 주인은 여전히 어딘가에 숨어 있다. 그는 속삭인다. 기도를 하는지도, 놀이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구름은 간절한 기원처럼 보이기도 하고, 순진한 유희의 결과물로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이 자에게 기도와 놀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치 불안과 유희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듯이, 이 공간의 주인은 구름을 빚어내며 신자이면서도 마법사가 된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흐리기 때문에 즐거운 곳이 만들어진다.
 

히피한남, 배윤재 이현 2인전 《TERRAFORMING》  전시전경
히피한남, 배윤재 이현 2인전 《TERRAFORMING》  전시전경

한편 배윤재는 신자도 마법사도 아니다. 그는 관찰자다. 그는 길게 시간을 두고 관찰한다. 일상적인 공간 안에서, 시간을 길게 늘이는 것만으로도 그는 회화적인 공간에 진입한다. 길게 관찰하면 사물의 전생부터 잠재태까지 한 번에 관찰할 수 있다. 그곳에서 사물은 씨앗에서 선인장으로, 그리고 사막의 사구로, 바다의 파도로, 선박의 흔들리는 그림자에서 다시 씨앗으로 돌아온다. 사물은 일렁인다. 배윤재가 관찰하고 그린 것은 일렁이는 사물이라기보다는, 사물의 일렁임이다. 이것을 아지랑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배윤재는 사물의 아지랑이를, 미묘한 흔들림을 그려낸다.

덕분에 사물은 그 외곽선이 닫힌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뼈대 없이, 내부가 표면이 되고 다시 표면이 내부가 되는 이 사물은 공간적으로 고정된 상태에서도 ‘움직인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작가의 호언장담은 단지 사물의 생김새를 관람객의 상상력에 맡기겠다는 말은 아니다. 이 물체는 실제로도 움직이거나 흔들리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물체도 될 수 있는 미묘한 상태가 된다. 확정 지을 수 없는 형태를,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색을 가진다.

그러나 먹구름도, 아지랑이도 모호한 것에서 끝나지만은 않는다. 먹구름은 비를 부르고, 아지랑이는 뜨거움의 전조다. 이들은 어떤 거대한 움직임의 일부일 뿐이다. 달리 말하자면, 모호함은 연극 무대의 구불구불한 커튼처럼, 음식을 덮어 둔 천처럼, 얼굴을 가리는 베일처럼, 그 뒤에 무언가를 감추어 둔다. 그 뒤에는 무엇이 올까? 이현의 ‘안전한 구름’은 심상치 않은 사건의 전조일까? 배윤재의 일렁임은 폭발적인 생명력을 암시하는가? 뿌옇거나 부드러운 장막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사실 아무것도 기다리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이현의 세계는 영원히 구름 낀 세계일 수도 있고, 배윤재의 세계는 영원히 “뭉쳐졌다가 팽창하”기만 할 수도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모른다는 사실 덕분에 우리는 건조하고 부드러운 장막 뒤에 무엇이든 감추어 둘 수 있다. 꿈에서 깨기를 기다리면서, 모호한 표면에 둘러싸여서.

/자료제공=히피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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