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은 개봉 초반부터 남다른 흥행력으로 6일 만에 누적 관객수 2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꾼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영화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1026 사건과 1212 군사반란까지의 내용만을 담고 있는데요. 배우들이 연기한 과거로부터 소환된 4인의 실제 삶은 어땠으며, 실화임에도 실명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화 '서울의 봄' 아무도 건들이지 못했던 역사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12·12 군사반란을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담아내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12·12 군사반란을 그린 TV 드라마는 있지만, 이 사건을 영화화한 건 ‘서울의 봄’이 처음입니다.
작품이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소재로 다룬 만큼, 주요 캐릭터도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합니다. 정우성이 연기하는 ‘이태신’은 장태완 제7대 수도경비 사령부 전 사령관을 참고했죠. 황정민이 맡은 ‘전두광’은 그 이름과 대머리 특수 분장으로 유추할 수 있듯,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삼습니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정우성 배역)
전두광(황정민 분)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은 군사반란에 성공하면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선 분)을 비롯한 진압군들의 인생은 다소 비극적이었습니다.
연행된 장태완 장군은 6개월간 가택연금에 들어갔고, 아들 소식을 듣고 충격받은 그의 아버지는 이듬해 4월 건강이 악화돼 사망했습니다.
무엇보다 장태완 장군은 아내와 1남 1녀를 두고 있었는데, 영화에서 잠깐 언급된 것처럼 공부를 아주 잘하는 우등생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자연대에 합격해 수석을 할 정도로 뛰어났지만, 1982년 행방불명된 아들의 사체가 발견돼 충격을 안겼습니다. 아들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종결됐고, 장태완 장군은 외아들을 가슴에 묻어야했습니다.
한국증권주식회사 사장, 국회의원 등을 지내다 2010년 별세했는데, 안타깝게도 2년 후 아내마저도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성민 배역)
정승화 장군을 포함해 장태완, 정병주까지 모두 강제 예편(전역)을 당했고, 특히 정승화는 군대 내 최고의 권력을 상징하는 4스타에서 무려 이등병으로 강등되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이 18계급을 강등당해서 불명예 제대한 것입니다.
또한 서빙고 조사실로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1212 군사반란 직후에는 해당 사실이 공개되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1993년 9월, 무려 14년이 지난 뒤 국방위원회 국정조사에 참석한 정승화 총장이 "밤새 조사를 받았고, '지금도 뭐 대장인 줄 알아? 참모총장인 줄 알아?' 그러더니 내옷을 다 벗겼다. 붙들어 맨 채로 고개를 붙잡고 돌려서 수건을 뒤집어 씌우더니 수건에다 계속 물을 들이부으니까 숨이 딱 막히더라. 계속 물을 먹었다. 그걸 30분 하면 누구나 다 질식한다"며 끔찍했던 그날을 고백했습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정만식 배역)
정병주 특전사관은 영화에서 왼쪽 팔에 총상을 입고 끌려나갔는데, 실제로 평생 왼팔에 큰 부상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1987년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길 기대했으나, 전두환에 이어 또 다시 노태우가 당선되며 여전히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유지하자 실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1212 군사반란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던 인물이라 알려졌습니다.
노태우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이후 평소처럼 집을 나섰다가 실종됐으며, 139일 만에 경기도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해 수사를 마무리했고, 현재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김오랑 소령(정해인 배역)
정병주 장군의 비서실장으로 반란군에 대항해 정 장군을 지키려다 숨졌습니다. 그의 나이 35세였습니다.
아내 백영옥 씨는 시력약화증을 앓고 있었는데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시신경이 마비되는 등 완전히 실명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군인 아파트에서 쫓겨나고 복지시설에서 봉사를 하면서 살았으나, 자신이 살던 건물 옆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실수로 베란다에서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김오랑은 1212 군사반란 현장에서 소령으로 사망했지만, 아내 백영옥 씨의 노력 덕분에 1990년 중령으로 특진 추서됐습니다. 2014년에는 특전사령부에서 보국훈장이 추서됐고, 지난해 11월 국방부 중앙전공상심의위원회는 김오랑 중령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실화에 실명 사용하지 않은 이유?
이 작품은 모두가 알듯이 1979년 12월12일 전쟁같이 벌어진 9시간의 소용돌이를 그렸습니다. 실화를 모티프로 하지만, 독특하게도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어딘가 묘하게 조금씩 다르게 설정됐습니다.
전두광(황정민), 노태권(박해준), 정상호(이성민), 최한규(정동환) 등 누구나 알만한 실존인물들의 이름의 한끗을 비틀었습니다. 특히 엔딩에서 실제 하나회 기념 사진을 배치해, 실화와 픽션 사이 아이러니한 감정을 극대화합니다.
영화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은 “누군가는 제가 비겁하게 이름을 바꿨다고 하던데, 사실 전 그 이름을 쓰고 싶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많이 바꾸고 싶었죠. 실존인물에 대해선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거든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요."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어 "역사적 사건을 깊이 분석할수록 제 해석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들었어요. 실존인물로 출발했지만 ‘김성수의 세계관’ 안에서 움직이는 아바타이길 바랬고요. 그래야만 캐릭터에게 인성과 품성도 부여하고, 기록엔 없지만 사건 당시 그들의 대화나 표정에 대해서도 자신만만하게 디렉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죠."라 말했습니다.
김성수 감독은 12.12 사태만 검색해도 나오는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각각 생각하는 기억을 건져올리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지금 관객들이 그 역사로 유입될 수 있는 문이 전 그 ‘하나회 기념 사진’이라 여겨서 삽입했고, 굉장히 상징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하나회)에겐 승리의 기록으로 남긴 사진이고 아름다운 기억이겠죠? 한국을 위해 굉장히 큰 구실을 하셨으니, 자랑스러운 모습이라 생각해서 남겼을 테니까요. 하지만 관객들도 진짜 그렇게 볼까요?”라 말하며 자신의 의도를 설명했습니다.
한편 영화 '서울의 봄'은 11월 9일 첫 시사회 평가가 공개되었으며, 대체로 긍정적인 평이 나왔다. 정식 개봉 이후에도 호평을 이어 가며, 2023년 한국에 개봉한 영화 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과 함께 가장 높은 관객 평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Copyright ⓒ 살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