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김주현 기자] “그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는 게 힘들수록 오히려 더 집착하게 되더라고요. 그림에 몰두하다 보면 자연스레 힘든 것들이 생각나지 않아요.”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문화매거진과 마주한 강산(强山) 작가의 말이다. 그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경찰, 그리고 작가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그림이 없으면 못 살았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름처럼 정말 강처럼 산처럼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환영받지 못한 출생”이었다.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버려졌다가 3살이 되던 해 다시 친정의 품에 돌아갔지만 녹록치 않은 삶이 계속 됐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빨리 돈을 벌어야했기에 전공을 살려 경찰이란 직업을 선택했다. 일 자체가 힘든 데다 가족의 투병까지 겹치는 바람에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았다. 그런 강산을 다잡게 한 원동력이 다름 아닌 ‘그림’이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 밖에 못 나갔을 때, 크레파스로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다 제가 오히려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크레파스를 거쳐 연필로 그림을 그리다가 이제 색을 넣고 싶어서 아크릴 물감을 구매했죠. 한참 아크릴로 그리다가 또 저처럼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오일 파스텔로 그리시더라고요. 이런 재료가 있었구나!... 운이 좋게 대회에서 상을 받게 돼 전시를 보러 갔는데, 거기서는 동양화의 매력에 빠졌어요. 동양화 재료도 사고, 또 아이패드로도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죠. 제 그림엔 재료가 무척 많아요. (웃음) 제가 하고 싶은 건 동양화 쪽인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아크릴과 아이패드, 이 두 가지로 일단 압축이 됐어요. 빨리 그려야 하는 생활 패턴 탓에 그렇게 된 거죠. 뭐 그릴지 고민하는 데만 한 달 이상 걸리고 오히려 그림은 금방 그리는 것 같아요.”
제대로 배워본 적 없는 그림으로 상을 받은 일은 작가 강산에게 일종의 터닝 포인트로 작용했다. 그림을 그리기만 했을 땐 몰랐던 관람객의 시선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꼈단다. “상을 받고 다른 작가님의 그림을 보니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그림을 단순히 그리는 것 이상으로 ‘나를 표현하는 게 맞지 않나’란 생각도 들었어요. ‘무조건 보고 그리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표현하자’, 이 단계를 거쳐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강산의 그림은 독특하다. 성별이 모호하고, 덩치가 크다. ‘작가 강산’과 ‘경찰 강산’을 오고가며 자연스레 생긴 화풍이다. “저를 표현할 때 ‘벌크 업’ 시켜서 그려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됐어요.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되고 싶다는 걸 표현한 거죠. 이렇게 보이고도 싶고요. 자신감을 갖는 게 좋지 않겠어요?” (웃음)
오는 30일까지 충남 아산에 위치한 초사아트갤러리에서 개인전 ‘the Story’를 진행 중이다. 그는 “제 이야기를 담은 것도 있지만 경찰인재개발원 인권리더십센터에서 성평등 과정을 운영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가 정말 많다. 사는 게 힘든 분들도 제 그림을 보고 힘을 내셨으면 하는 바람에 ‘the Story’로 전시 제목을 지었다”며 “되돌아보면 올 한 해는 경찰로서도, 작가로서도 성과가 있었다. 전국 14만 경찰을 상대로 교육하는 일이다 보니 새로운 경험도 많이 했고 그 덕에 그림도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주변에서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너는 뭘 하나 생각해서 행동으로 옮기면 결과가 나온다’고요. 그림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것 같아요. ‘그림이 너한테 어떤 존재야?’ 묻는 분들껜 이렇게 답해요. ‘그림 없으면 못살았을 것 같다’고.”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스트레스 푸는 법도 제대로 몰랐단다. “환영받지 못한 출생”이란 말이 스스로를 지독하게 괴롭혔지만 그저 받아들일 뿐, 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다. 그의 유일한 숨구멍인 ‘그림’을 통해 벗어나는 과정에 우직하게 서있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림을 그릴 땐 저에게 당근을 주는 편이에요. 경찰인재개발원에서 동료를 잘 만난 것도 참 복인 것 같더라고요. 동료들이 ‘잘한다’, ‘그림 좋다’ 이야기해주는 게 좀 커요. 칭찬에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웃음) 칭찬을 제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힘들 때마다 ‘그래, 나 잘하고 있지’ 되뇌는 거죠."
마지막으로 강산은 “거창한 계획이 있다기보다는 남은 인생 동안 작가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죽을 때까지 붓을 들 힘만 있다면 그림을 계속 그릴 예정”이라며 “제가 윤석남 작가님을 참 좋아한다. 저와 비슷한 나이대에 그림을 시작하셔서 벌써 80대가 되셨는데도 그림이 너무 멋있더라. 그런 모습으로 남고 싶다”고 강조했다.
[작가 이력]
아주대학교 법학과 졸업
영국 Kingston Univ. Pre-Master 입학허가
De Montfort 석사과정 입학허가
[개인전]
2021 오산중앙도서관
2022 제주 북타임
2023 the Story, 초사아트갤러리
[수상]
2018년 대한민국 미르인 예술대전 입상
[출간]
2022 에세이 꿈꾸는 화가 엄마의 새벽 2시(바이북스)
2023년 그림책 손톱달의 비밀(아이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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