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님 셔츠는 Levi’s. 오버사이즈 재킷은 Sportmax. 모자는 Qmillinery.
Q 모델 데뷔 후 서서히 연기에 뛰어들기 시작한 2016년부터 지금까지 호정에게 어떤 흐름이었나요
A 연기에 뛰어든 후부터는 견디는 마음으로 임해온 것 같아요. 연기 탐구를 지속하는 과정이죠. 결이 비슷한 역할을 많이 못 해봤고, 캐릭터마다 주어지는 게 달라서 확신이 들다가 휙 사라져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역할을 연기해야 하니까. ‘그래도 이제 조금은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다가 새로운 역할이 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바뀌어요.
Q 한 인터뷰에서 30대가 되기 전에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죠. 그 생각은 변함없나요
A 어머, 제가 그런 말을 했나요? 그게 언제였더라…. 2019년인가 봐요. 그런 생각은 여전하죠. 그때 왜 ‘30대’라고 말했을까요? 30대가 넘어도 그 마음은 그대로일 텐데. 항상 시간은 아깝죠.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을 때이고, 매 순간 낭비하며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작품에 임하는 것도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 중 하나이지만, 연기하지 않을 때 주어지는 시간에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도 중요해요.
Q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의 문종녀, 〈인질〉의 샛별, 〈징크스의 연인〉의 조장경…. 이토록 모두 다른 역할을 분석할 때 잃지 않는 점은
A 캐릭터마다 접근방식이 다르지만, 변하지 않는 건 있어요. 직접 형상화하고 그려보는 것. ‘이 친구는 이럴 것 같아’라며 머릿속으로 혼자 그려봐요. 성격을 단어로 나열해 보기도 하면서요. 그러다 촬영하면서 인물에 대해 알아가고 다듬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낯선 사람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되게 궁금하잖아요. 누구인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모르다가 함께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알게 되는 것처럼. 촬영에 들어가거나 혹은 그 전에 감독님, 작가님과 대화했을 때 제가 머릿속에 그리고 분석해 온 캐릭터의 모습과 두 분이 생각한 그림이 딱 맞아떨어지면 너무 좋죠. 그렇지 않아도 서로 의견을 나누며 캐릭터가 구체화되는 과정은 늘 활기로 가득해요.
데님 베스트는 Polo Ralph Lauren. 데님 팬츠는 Wooyoungmi. 슬링백 힐은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Q 액션 활극에 도전했죠. 〈도적: 칼의 소리〉의 언년이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거침없는 인물 같은데요. 내가 생각한 언년이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A ‘짱돌’ 같은 친구. 열심히 굴러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강한 여자. 하지만 촬영을 하면 할수록 언년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겉보기엔 너무 바삭하고 매콤한데 속은 아주 여리고 슬픔으로 가득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친구죠. ‘언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에 대한 고민을 자주 했고, 복잡했어요.
Q ‘총잡이’로서 화려한 손기술과 액션이 필요했을 듯합니다. 촬영 전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A 액션을 잘 소화해야 하는 역할이라 액션 스쿨을 6개월도 부족해 1년가량 다녔어요. 액션 팀에 많이 졸랐어요. 조금만 더 훈련시켜 달라고요. 액션 스쿨 다니면서 ‘배움이 거듭돼 살이 붙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느꼈어요.
브라운 오버사이즈 재킷과 이너 웨어 톱, 스커트, 부츠는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가죽 장갑은 Hamp;M.
A 성격과 말투는 정말 비슷해요.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언년이는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이죠. 연기하면서 굉장히 시원했어요. 감정 표현을 다 할 수 있었으니까요.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게 매력적이고 재미있었죠. 그만큼 배울 점도 많았어요. 언년이는 아주 단단한 사람이거든요.
A 정말 춥고 더웠습니다(웃음). 진짜 치열했고요. 모든 분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일했고, 저는 개인적으로 고독했어요. 엄청 외로운 현장이었죠.
블랙 슬리브리스 톱은 Axel Arigato.
A 언년이 캐릭터 특성상 혼자 다니는 일이 많고, 매번 다른 등장인물과 마주하는 역할이거든요. 그런 점이 외롭다고 느껴졌지만, 홀로 맞서 싸워야 하는 언년이 자체가 외로운 캐릭터라는 점도 한몫했어요. 다른 분들이 보기엔 현장에서 제가 까불이 같았을 수도 있지만(웃음). 촬영이 끝나고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후련함이 더 컸어요. 어려운 액션 신들을 해내고 후련해서 밝게 웃으니 선배님들이 “야, 너 왜 이렇게 좋아해!”라고 하셨죠(웃음).
Q 〈무빙〉에도 출연했습니다. 전직 안기부 요원이자 투시력을 가진 홍성화의 딸 ‘양세은’ 역할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크더군요. 원작에 없는 캐릭터라고
A 원작에 없으니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낮을 거예요. 모두 양세은이 누구인지 모르죠(웃음). 이 친구의 앞날이 어떻게 그려질지 너무 궁금해요. 제가 제일.
Q 다양한 현장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칭찬과 비판을 들어왔겠죠. 기억에 남는 말은
A 〈도적: 칼의 소리〉 촬영이 끝날 때쯤 감독님께서 “너는 그냥 언년이가 돼 있더라”라고 말씀하셨어요. 거의 마지막 촬영쯤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죠.
뷔스티에 톱은 Ganni. 데님 롱스커트는 YCH. 카우보이 모자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A 그래서 감사했어요. 오랜 시간 언년이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기 때문에 정이 많이 들었거든요. 주변 사람들은 제가 언년이를 연기하는 동안 진짜 언년이 같았대요. 종잡을 수 없고, 기본적으로 분노와 예민함이 있는 모습이었나 봐요. 촬영이 끝난 후에도 언년이를 지우기까지 오래 걸렸고, 마음이 힘들었어요. 끈끈한 정 때문에.
Q 함께한 캐릭터를 떠나보낼 때 호정의 마음가짐은 어떤 쪽인가요? 시원하게 떠나보내는 편인지, 아니면 한동안 붙잡아두는 편인지
A ‘쿨’하게 떠나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많이 찍은 편이 아닌 제게 그 생각은 오만이고 착각이었어요. 애정을 갖고 임했던 친구를 보내는 건 항상 아쉽습니다.
Q 느슨해지는 순간도 무시할 순 없겠죠. 스스로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나요
A 대본을 계속 읽어요. 쉴 때도요. 읽으면 읽을수록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끝난 신도 다시 보면 아쉬워서 마음을 다잡게 돼요.
A 너무 긴장해서 손을 벌벌 떨면서 촬영한 적도 있어요. 몸에 힘이 강하게 들어가고 경직돼서.
A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신을 촬영할 때 특히 더 떠는 것 같아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크면 오히려 긴장하고, 그런 긴장감에 압도당해서 몸이 떨려요. 오히려 리허설 때가 더 좋을 때도 있어요.
블랙 슬리브리스 톱은 Axel Arigato. 깃털 장식의 팬츠는 YCH. 페이크 퍼 뮬은 Gucci.
Q 촬영현장, 일터가 편안해지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A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편했던 적 없어요. 스태프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것과 별개로요. 촬영현장이 편해지면 위험하다는 신호 아닐까요?
Q 8년 차입니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겪었을 텐데, 그 과정에서 생겨난 나만의 원칙은
A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그 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죠.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요. 그저 내가 좋으면 좋아하는 마음 그대로 다 보여주는 편이죠. 그들에게 바라는 것도 없어요. 그게 저만의 사회생활 팁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우리는 모두 성장하는 사람들이고 저도 그 가운데 한 명이죠.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수한 일을 겪는데, 그 과정에서 누군가로부터 비난받거나 부정당하는 일도 생겨요. ‘너는 이럴 거야, 여기서 끝낼 거야’ 등등의 말. 그런 말이 저에겐 동력이에요. 오히려 고맙고, 좋아요. 승부욕이 많은 사람이라 승부욕을 자극하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기분이 좋고 절로 몸을 움직이게 돼요. 나쁜 것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해로울 게 없으니.
A 한 가지에 머무르는 걸 싫어해요. 도전적이고, 활동적이고, 무언가 시도하는 데 주저함이 없죠. 그 점이 무기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안 될 거라며 하지 말라는 것에도 거침없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는 있는 것 같아요.
Q 사람 이호정과 배우 이호정은 각각 어떤 사람인가요
A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 너무 단순한가요(웃음). 정말 그래요. 저는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아요.
A 배우 일을 하면서부터 자신을 잘 못 믿는 것 같아요. 배우는 정답이 없는 직업이고, 그 정답을 찾기 위해 지금은 ‘해낸다’는 마음으로 탐구해 가는 단계거든요. 한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 도움 덕분에 제가 활발히 움직일 수 있어요. 그래서 자신을 더 못 믿겠어요.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잘한 걸까? 의문투성이죠. 하지만 이제는 좀 믿어보려고요. 믿음이 없으면 더 힘든 것 같아서.
에디터 정소진 사진가 윤송이 스타일리스트 이경은 헤어 스타일리스트 조미연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숙경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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