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민의 뮤지엄 노트] 로댕의 문단속: 지옥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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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민의 뮤지엄 노트] 로댕의 문단속: 지옥의 문

문화매거진 2023-09-30 23:23:33 신고

▲ 로댕(Rodin, Aufuste/프랑스/ 1840~1917) 지옥의 문(청동/ 85x400x635cm/ 1880~1917년 캐스팅1930~1933년)
▲ 로댕(Rodin, Aufuste/프랑스/ 1840~1917) 지옥의 문(청동/ 85x400x635cm/ 1880~1917년 캐스팅1930~1933년)


[문화매거진=최여민 작가] 자궁문을 열어 세상 빛을 보고, 관의 문이 닫혀 완전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질 않는 때까지 우린 수많은 문을 드나든다. 공간과 공간을 나눠주며 넘나들 때마다 다른 곳으로 이끌어 주는 문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서나 필요한 존재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부터 버스와 지하철, 학교와 직장, 엘리베이터, 식당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문들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쉬울 뿐이다.

매일 마주하는 만만한 문과 달리 로댕의 문 앞에서는 큰 들숨과 날숨이 필요하다. 할 말 많은 지옥의 문 앞에서는 행복 같은 사치는 잊어야 하며, 다양한 지옥의 온상이 펼쳐진 모습에 뒷덜미를 꽉 붙잡아야 한다. 



양 문 좌우로 기둥과 함께 문에는 마치 대들보가 얹힌 형태로 문의 꼭대기에 서 있는 이들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영락없는 죄인의 모습인 세 사람은 신과의 약속을 깨뜨린 원죄를 용서받지 못한 채 지옥의 문 위로 쫓겨났다.

아담 밑에서는 열리는 문 위로 턱을 괸 채 아래를 관망하고 있다. 지옥치곤 한결 여유가 느껴지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깊은 사색에 빠져있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느긋하고 차분한 명상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맹수라도 만난 듯 온몸이 공포감에 휩싸여 얼어붙어 버렸다. 발가락에 온 힘을 준 그의 발아래로 사나운 짐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옥이 시작되었다. 

왼쪽 문 하단 중앙에 자리 잡은 이들은 그냥 봐도 비극적이지만 천륜이기에 끔찍함이 배로 느껴진다. 배신의 죄를 지어 먹을 것 없이 탑에 갇힌 우골리노 백작과 그의 아들들이 죽음과 함께한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백작은 먼저 죽은 아들을 먹었고, 이로 인해 지옥에 가게 된다. 이성과 감성의 끈이 모두 사라진 극한의 상황에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백작과 나뒹구는 자식들의 모습은 이미 지옥임을 말해준다. 

그와 반대로 밑에서 열렬히 키스하는 이들은 지옥에서 찾아볼 수 없는 로맨틱한 장면이다. 한 쌍 연인들에게서 지옥 속 행복을 찾아보려 하지만 남편의 동생과의 키스 중인 모습은 최고의 사랑에서 순식간에 용납할 수 없는 불륜의 현장으로, 이를 목격한 남편에게 죽임을 당하는 지옥의 결말을 보여준다.



서사시인 단테의 신곡 ‘지옥, 연옥, 천국’ 중 지옥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로댕의 ‘지옥의 문’은 활자를 뛰어넘어 죄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과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190여 명의 사람이 등장하는 지옥의 문 속 몇몇은 각각의 작품으로 만들어졌으며, 실제 사람으로 떠냈다는 오해를 살 정도로 완벽한 비례의 작품으로 존재한다. 극적인 표현과 더불어 금방이라도 비명이 들릴 듯한 생동하는 모습들은 순식간에 지옥에 몰입하게 만들어 준다.

문의 기능보다는 예술을 위해 문이 한발 양보한 모양새다. 예술에 충실한 ‘지옥의 문’은 1880년 장식 미술관을 위해 프랑스 정부의 의뢰로 시작되었지만 미술관 대신 기차역이 들어서며 작품이 중단될 위기가 닥쳤다. 하지만 로댕은 멈추지 않고 작품 속 수정을 거듭하며 작품을 만들어나갔다.

20년 동안 작품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았지만, 미완성으로 남겨진 ‘지옥의 문’에서 로댕의 온갖 고뇌와 선택을 느껴볼 수 있다. 인류를 사랑한 로댕은 포기하지 않고 무려 8m 높이와 4m에 이르는 넓이의 문으로 지옥의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있다. 지옥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로댕의 엄중 경고를 받들어 타락을 멀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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