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를 모은 퍼렐 윌리엄스의 루이 비통 데뷔 쇼가 베일을 벗었을 때, 컬렉션만큼이나 이목을 끌었던 건 쇼 장소였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퐁네프 다리였으니 말이다. 퐁네프 다리는 1607년에 완공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교량이다. 모네와 르누아르를 포함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속에 단골로 등장했으며, 영화 〈퐁네프의 연인〉의 주 배경으로 로맨스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왜 퐁네프 다리였을까? 퍼렐은 루이 비통 데뷔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미국 버지니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새로운 엠블럼이기도 한 ‘LVers’는 버지니아 주의 슬로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버지니아(Virginia is for lovers)’에서 따온 것이다. 퍼렐은 사랑의 역사가 담겨 있는 퐁네프 다리를 버지니아와 파리를 연결 짓는 은유적 공간으로 활용했다. 퐁네프 다리가 루이 비통 본사 앞에 있다는 지리적 특성도 한몫했다.
패션계에 입문한 래퍼 퍼렐의 커리어가 루이 비통으로 이어졌고, 앞으로 하우스에서 굳건한 입지를 다져나가겠다는 당찬 포부도 담겨 있다. 루이 비통이 컬렉션을 다리 위에서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 크루즈 컬렉션은 교토에 있는 미호 뮤지엄에서 열렸다. 미호 뮤지엄은 깊은 산속의 무릉도원이라 불릴 만큼 신비로운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이곳은 거대한 터널과 흔들다리를 통해 들어가야 하는데, 바로 이 터널과 다리를 루이 비통의 런웨이로 변신시킨 것. 광활한 숲을 배경으로 한 니콜라 제스키에르 특유의 미래적인 컬렉션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광경을 선사했다.
또 몇 개월 전 서울을 강타한
루이 비통 프리폴 컬렉션도 빼놓을 수 없다. 잠수교 한가운데에 터널 조형물을 세운 후 터널부터 다리를 가로지르는 런웨이를 완성했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참여한 환상적인 조명 연출과 반포대교 분수 쇼로 대미를 장식한 컬렉션은 많은 이의 찬사는 물론, 서울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디자이너의 다리 사랑은 루이 비통만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파리에서 공개된
알라이아의 2024 W/S 컬렉션은 센 강이 한눈에 보이는 레오폴드 세다르 상고르 다리 위에서 펼쳐졌다. 피터 뮐리에는 관객에게 초대장 대신 접이식 의자를 보냈고, 게스트들은 자신이 앉을 의자를 들고 와 다리 위의 런웨이를 완성했다.
센 강 아래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노을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목조 다리 위에 세워진 런웨이는 자유로운 파리의 낭만을 대변하듯 컬렉션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한편 벨에포크 시대의 미학을 관망할 수 있는 파리의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패션 하우스들의 단골 무대로 사랑받아 왔다.
샤넬은 바네사 파라디와 함께 2023 F/W 쿠튀르 컬렉션의 티저 영상을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위에서 촬영했고,
발렌티노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아래를 클럽으로 탈바꿈시켜
2023 S/S 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이며 파리의 밤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킴 존스는 조금 독특한 방법으로 다리를 활용했는데, 지난
2022 F/W 디올 멘즈 컬렉션을 위해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그대로 재현한 대형 세트를 지은 것. 다리 위아래를 자유롭게 거니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 외에도 동서양의 만남을 주제로 한
겐조 컬렉션은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드비이 육교를, 몽환적인 네온사인이 시선을 사로잡는 쿠레주의 컬렉션은 생 마르탱 운하를 런웨이로 선택했다.
이렇듯 다리라는 공간이 디자이너에게 작용하는 힘은 강렬하다.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며 시공간을 이어가는
‘연결’의 의미를 지녔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강변이 주는 시각적 미장센까지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매일 걷던 잠수교가 루이 비통의 런웨이로 변신한 것처럼 누군가의 일상과 함께하는 다리가 또 다른 이들에겐 특별한 무대가 되는 일.
곧 시작될 2024 S/S 패션 위크, 우리를 이어줄 새로운 다리는 또 어디일까?
에디터 김명민 Courtesy Of Louis Vuitton Courtesy Of Valentino GettyImagesKorea IMAXtree.com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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