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 전성시대

넥타이 전성시대

엘르 2023-09-20 00:00:00 신고



크롭트 톱에 헐렁한 팬츠를 입고 다녀도 될 만큼 복장에 대한 규정이 자유로운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넥타이를 매는 게 일상이던 시절이 있었다. 체크무늬 교복을 입던 시절, 아침마다 셔츠 깃을 세워 끈을 쭉 잡아당기면 그만인 넥타이를 매던 나와 달리 아빠는 정성스럽게 길이를 조정하고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그리고 또 감아 빼고 넥타이핀까지 꽂아가며 정성스럽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렇게 매일 아침 반복해서 넥타이를 매던 부녀의 출근길이었지만 지금은 은퇴한 아빠의 옷장에서도, 내 서랍 속에서도 넥타이는 구석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넥타이를 매는 법까지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질 무렵, 지난 파리 살로몬 로스차일드 호텔에서 열린 발렌티노의 2023 F/W 쇼는 기억 속 아이템을 다시 찾게 만들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가 ‘블랙 타이’를 주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넥타이 룩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셔츠 깃 아래로 홀터넥처럼 타이의 매듭을 이은 미니드레스에 록 스터드 백, 컴뱃 부츠를 매치해 강렬한 펑크 룩으로 시작한 쇼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넥타이를 더한 수트에 마이크로 쇼츠와 스커트를 매치한 룩으로 이어졌고, 깃털과 비즈 장식에 타이를 더한 나이트웨어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다양한 소재의 셔츠에 넥타이를 빈틈없이 조여 맨 룩이었지만, 런웨이 위에 펼쳐진 룩들은 넥타이의 무게감을 홀가분하게 벗어 던진 모습이었다.


열다섯 살 된 딸이 친구들과 제 옷장을 급습해 블랙 수트와 셔츠, 넥타이를 꺼내 입고 놀러 나가는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딸은 제가 수트를 입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죠. 딸이 선택한 룩은 단지 셔츠와 수트가 좋아서,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패션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딸의 접근방식처럼 넥타이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건 피치올리만이 아니었다. 이번 시즌 강세인 80년대 파워 수트 룩이 이어졌던 알렉산더 맥퀸 쇼에선 실루엣만으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젠더리스한 모습이었는데, 특히 셔츠에 넥타이를 하고 뷔스티에를 매치한 남녀 룩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생 로랑 남성 컬렉션에서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니트 드레스와 카울 장식의 실키 룩을 선보이며 남성과 여성 컬렉션의 간극을 좁혀나가고 싶다고 밝힌 안토니 바카렐로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하지만 올 초부터 남자들의 스커트를 입는 트렌드와 넥타이를 활용하는 방식을 단지 ‘젠더리스’ 흐름으로만 묶기에는 실제 활용 범위와 카테고리에 한계가 있다.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는 2000년대 트렌드는 그런지 펑크를 재해석하며 셔츠를 일부러 헝클어뜨리고 타이를 느슨하게 매어 연출했고, 단정한 오피스 룩을 완벽하지 않은 모습으로 비튼 ‘오피스 코어’에도 타이는 전체 룩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한 수의 아이템으로 등장했다. 마구 구겨진 셔츠와 속옷이 보일 정도로 내려간 로라이즈 펜슬 스커트 등 주얼리를 절제해야 하는 룩에 좁고 가느다란 타이는 가장 볼드한 액세서리로 존재감을 발휘했으니까.






그뿐 아니다. 체크와 니트 스웨터, 플리츠스커트의 조합으로 완성되는 프레피 룩에도 타이는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브랜드 초창기부터 끊임없이 프레피 룩을 재해석해 온 톰 브라운은 넥타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기를 반복하며 목에서 벗어나 룩을 완성하는 하나의 디테일로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넥타이’ 하면 중성적 스타일로 반향을 일으킨 1977년 영화 〈애니홀〉의 다이앤 키튼으로 통용되던 시절도 지났다. 벨라 하디드처럼 허리 라인이 강조된 베스트 룩에도 타이를 더할 수 있고, 엠마 코린처럼 볼 캡을 쓰고 넥타이를 더한 수트 차림으로 테니스 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다.











넥타이에 대한 문턱을 넘고 싶다면 우선은 앞서 언급한 디자이너들처럼 고정관념을 해체할 필요가 있다. 넥타이를 셔츠, 재킷과 비슷한 컬러로 통일하거나, 가죽과 크리스털 등 소재감이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 완벽한 수트 룩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렸다면 이젠 넥타이가 주는 의외의 매력을 즐길 차례다.


에디터 김지회 IMAXtree.com GETTYIMAGESKOREA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

Copyright ⓒ 엘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