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50명의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기계가 도입되면 50명의 노동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이 50명이 해고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은 저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통해 기존에 하루 8시간 일하던 100명의 사람들이 이제부터 4시간씩 일하면 되지 않느냐는 답을 내놓았다. 같은 책에서 러셀은 “근로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현대에 노예 제도는 필요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우리가 러셀과 같은 답을 생각해 내지 못한 이유는 뼛속 깊이 체화된 노예근성 때문일지 모른다.
지난 주 tvN 예능 <알쓸별잡>에서 김상욱 교수가 러셀의 이야기로 운을 떼며 소개한 책 『가짜 노동』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방영일인 지난 7일을 기점으로 직전 일주일 대비 판매량이 약 11배 급증하며 주간 베스트셀러에서 종합 7위, 사회·정치 분야 2위를 차지했다. 저자 덴마크의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철학자 아네르스 포그 옌센은 ‘가짜 노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과잉 노동의 배경을 다양한 통계와 취재를 통해 탐구해 나간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정해진 노동시간에 얽매이는 근무 환경이 가짜 노동을 유발한다는 지적이다. 책에서는 사무직 노동자들이 팬데믹 이후 사무실로 돌아간 뒤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사람들은 갑자기 하루치 업무량을 단 두세 시간 만에 완수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두 뭔가 하느라 늘 바빠 보여야 했던 일터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방종, 예컨대 창문을 내다보며 생각을 가다듬는 행동을 해도 괜찮았다. 즉, 가짜 노동에는 관중이 필요했던 것이다. 관중이 없을 때 우리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너무나 많다.”
우리나라는 IT 초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독특한 국가다. 지난 4~5월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월평균 재택근무 일수는 1.6일로 34개국 직장인 중 가장 낮았다. 연구진은 협소한 주거 환경, 보수적인 직장 문화 등이 이런 결과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좁은 집에서 가족과 부대끼며 일하는 것도 불편하지만, 회사에서 내가 일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마치 연극처럼 수행해야 하는 ‘가짜 노동’(형식적인 잡무, 내용 없는 회의, 불필요한 보고서 등)은 우리의 마음을 갉아먹으며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이 책의 결론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착취하는 사고 강박에서 벗어나 노동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에 가깝다. 우리나라에 적용해 이야기한다면 급격한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과잉 노동 신화, ‘한강의 기적’의 망령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물론 이는 개인의 성찰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철학적으로 풍성하지만, 그만큼 일개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짜 노동’을 유발하는 통조림 같은 사무실 환경을 통렬하게 지적하는 대목을 읽을 때는 속이 후련하다가도 ‘내 마음가짐이 문제라는 건가?’라는 삐딱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혹시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면, 보다 현실적으로 노동 환경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 분석한 『주4일제가 답이다』나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같은 책을 함께 읽어 보는 것도 좋겠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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