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피겨 이해인의 극복기 "웹툰 그리며 힘냈어요"

'MZ세대' 피겨 이해인의 극복기 "웹툰 그리며 힘냈어요"

연합뉴스 2023-04-02 08:14:22 신고

3줄요약

'제2의 김연아' 이해인, 베이징 올림픽 출전 낙마 훌훌 털고 우뚝

"난 기분파…새 시즌 트리플 악셀 도전!"

메달 들어보이는 이해인 메달 들어보이는 이해인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이해인이 서울 올댓스포츠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4.2 jjaeck9@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힘들 때 우는 자는 삼류, 힘들 때 참는 자는 이류, 힘들 때 웃는 자가 바로 일류."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의 재료로 많이 쓰이는 이 문장은 운동선수들의 좌우명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긍정적인 사고'는 육체적 한계를 자주 느끼고 각종 스트레스에 노출된 운동선수들이 가져야 할 필수 요소다.

낙천적인 성격과 웃음, 밝은 에너지로 역경을 이겨낸 선수가 여기 있다.

주인공은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국가대표 이해인(17·세화여고)이다.

이해인은 지난달 치러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내 한국 여자 싱글 선수로는 김연아(은퇴) 이후 무려 10년 만에 시상대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그는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자신의 철학과 성격, 앞으로의 목표에 관해 소개했다.

새벽 훈련을 하고 학교 수업까지 듣고 왔다는 이해인은 "피곤하지만 괜찮다"며 까르르 웃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초등학생 이해인 초등학생 이해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 초등학생 때 3회전 점프 5종 완성…천재 소녀 이해인

이해인이 처음 피겨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 놀러 갔다가 스케이팅의 재미에 푹 빠진 이해인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개인 지도를 받으면서 피겨의 길로 들어섰다.

이해인은 "그땐 화장을 받고 예쁜 의상을 입는 것이 마냥 좋았다"며 "당시 놀이터에 있는 구름사다리를 3개씩 이동하는 등 운동 신경이 남달랐는데, 부모님이 이런 내 모습을 보시고 운동선수의 길을 반대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이해인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실력이 급성장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3회전 점프 5종(토루프, 루프, 살코, 플립, 러츠)을 모두 뛰게 됐고, 6학년 때는 (3바퀴 반을 회전하는) 트리플 악셀도 시도했다"고 말했다.

피겨계는 깜짝 놀랐다. 한 빙상인은 "이해인은 완성형 선수였다"며 "기술력뿐만 아니라 스핀 등 비 점프 요소까지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이해인은 출발부터 달랐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인 2019년 ISU 주니어 그랑프리 2개 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했다.

한국 선수가 한 시즌에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2개 대회 연속 우승한 건 김연아 이후 14년 만이자 한국 선수로도 김연아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대기록이었다.

그는 승승장구했다. 주니어그랑프리 파이널(왕중왕전)과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모두 5위를 차지하는 등 '제2의 김연아'로 입지를 확실하게 잡았다.

이해인은 "그땐 한창 실수하지 않던 시기"라고 돌아봤다.

제가 그린 그림이에요 제가 그린 그림이에요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국가대표 이해인이 3월 31일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그린 '피겨선수 엘사'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이해인은 평소 웹툰과 그림그리기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소개했다. 2023.4.2. cycle@yna.co.kr

◇ 사춘기 때 찾아온 슬럼프…MZ세대 이해인의 극복 방법은 '웹툰 그리며 즐기기'

이해인은 시니어 무대 입문 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키가 자라면서 신체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점프 과제는 물론, 스핀 등 비 점프 과제까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주변에선 퇴보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오른쪽 복숭아뼈에 물이 차는 부상이 찾아온 것도 이해인에게 치명적이었다.

이해인은 "슬럼프가 왔었다"며 "매우 힘든 시기였다. 피겨를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슬픈 눈망울로 얘기했다.

사춘기 소녀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슬럼프를 이겨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이때다.

이해인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며 "이때부터 직접 스토리를 짜서 웹툰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이해인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담긴 각종 그림을 보여줬다.

외국 피겨 선수들은 물론, 국내 선수들의 모습을 마친 사진처럼 표현했다. '엘사' 등 만화 캐릭터를 그린 솜씨가 대단했다.

만화는 이해인에게 탈출구가 됐다.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해인은 "난 (살이 잘 찌는) 떡볶이와 치킨을 좋아하는데 이것도 조금씩 먹어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며 "스튜디오 지브리(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작품도 보면서 웃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밝게 웃는 이해인 밝게 웃는 이해인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국가대표 이해인이 3월 31일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4.2. jjaeck9@yna.co.kr

◇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이해인은 웃고 또 웃는다

이해인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힘든 시기를 이겨냈다. 2020년과 2021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생겼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이해인은 웃으면서 부담과 압박, 스트레스를 극복했다.

언제나 밝은 웃음으로 고통을 이겨냈던 이해인이지만, 올림픽 출전권을 코 앞에 놓친 건 힘든 일이었다.

그는 2021 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위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한국의 여자 싱글 올림픽 쿼터를 2장으로 늘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작 2021년 12월에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선수 선발 1차 대회에서 극심한 컨디션 난조를 이겨내지 못하며 상위 2명에게 주는 올림픽 출전 티켓을 놓쳤다.

이해인은 "(올림픽에 나가는) 언니 오빠들이 부러웠다"며 "(출전 선수들의) 프로필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등 올림픽 분위기가 일더라.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환한미소로 인터뷰하는 이해인 환한미소로 인터뷰하는 이해인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이해인이 서울 올댓스포츠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4.2 jjaeck9@yna.co.kr

그래도 이해인은 주저앉아 눈물만 닦지 않았다. 베이징올림픽 개막 직전에 열린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보란 듯이 개인 최고점을 올리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 직후에 열린 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선 7위에 오르며 201년에 이어 2년 연속 톱10의 성과를 냈다.

이해인은 그렇게 올림픽 출전 무산의 아픔을 이겨냈다.

그는 4대륙 선수권대회 프리스케이팅 연기 후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뚝뚝 흘렸던 장면에 관해선 "힘들었던 시기였고, 대회가 열린 장소(에스토니아 탈렌)에서 과거 실수한 경험이 있어서 많은 생각이 났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 올림픽 아픔을 씻어낸 이해인은 기어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지난 2월에 열린 2023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지난달 2023 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최종 총점 220.94점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고 2013년 김연아 이후 10년 만에 시상대에 올랐다.

그는 "포기하지 않은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웃음을 지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두 팔 번쩍 든 이해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두 팔 번쩍 든 이해인

[로이터=연합뉴스]

◇ 도약하는 이해인 "새 시즌엔 트리플 악셀 도전"

이제 이해인은 2023-2024시즌 도약을 노린다.

이해인은 공중에서 3바퀴 반을 회전하는 고난도 점프인 트리플 악셀에 도전한다.

그는 "사실 전부터 훈련을 해왔다"며 "훈련 때는 가끔 성공하는데, 그동안 실전에 쓸 생각을 못했다. 이젠 보여드릴 때가 된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트리플 악셀은 2023 ISU 피겨스케이팅 팀 트로피 대회(4월 13~16일 일본 도쿄) 직후인 4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훈련할 계획이다.

이해인은 "일단 팀 트로피를 잘 끝내고 오겠다"며 "이번 대회 기간에 내 생일(4월 16일)이 껴 있는데, 생일에 대회를 치르는 만큼 최대한 즐기고 돌아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메달 들어보이는 이해인 메달 들어보이는 이해인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이해인이 서울 올댓스포츠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4.2 jjaeck9@yna.co.kr

팀 트로피 대회는 피겨 국가대항전으로 남녀 싱글, 페어, 아이스 댄스 등 4개 종목 총점으로 순위를 겨룬다.

한국은 남자 싱글 차준환, 이시형(이상 고려대), 여자 싱글 김예림(단국대), 이해인, 페어 조혜진-스티븐 애드콕 조, 아이스 댄스 임해나-취안예 조가 나선다.

이해인은 "동료들과 한 팀으로 국가대항전에 나가는 만큼 기대가 크다"며 "정말 재밌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한참을 웃으면서 답하던 이해인은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관한 질문엔 미소를 걷고 진지한 모습으로 답했다.

그는 "올림픽은 꼭 출전하고 싶은 대회"라면서 "다만 일단은 눈앞에 놓인 대회에 집중하는 게 순서인 것 같다. 차근차근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올림픽을 향한 '일류선수' 이해인의 본격적인 도전은 이제 시작됐다.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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