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현대시장 피해 상인들 울분…피해 복구 지지부진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등 굽은 할머니는 불에 타 무너져 내린 가게를 바라보며 눈가를 붉혔다.
악몽 같던 한 달 전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다.
인천 현대시장 상인 안종희(79·여)씨는 지난달 4일 토요일 장사를 마치고 선잠이 들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동료 상인으로부터 "시장에 불이 났는데 우리 가게도 다 타고 있다"는 다급한 전화가 왔다.
바로 달려 나가려던 찰나 가장 먼저 화재 소식을 듣고 현장에 다녀온 손녀가 안씨를 뜯어말렸다.
당시 손녀딸은 뇌경색을 앓는 할아버지와 노쇠한 할머니가 쓰러질까 우려해 일부러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안씨는 손녀의 만류에도 불구, 아픈 무릎을 보행기에 의지한 채 집에서 10분 거리 떨어진 시장으로 급한 발걸음을 옮겼다.
안씨에 이어 남편까지 새벽녘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바지락과 굴 등 해산물을 팔던 가게의 좌판과 내부가 모두 시커멓게 타 버린 채였다.
안씨는 2일 "불이 꺼진 데를 봤더니 시커메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싹 다 타 버렸다"며 "숟가락 하나도 못 건지고 울기만 했다"고 했다.
그의 가게에 있던 바지락과 굴도, 냉장 시설 2곳도 모두 타 버려 3천만원 넘는 피해를 봤다.
현대시장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한 1969년부터 54년 세월을 바쳐 사남매를 키운 삶의 터전은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는 막내아들이 5살이던 그해 '나가서 1천원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처음 시장으로 나선 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삼켰다.
동대문 제기동에서 사온 도라지며 종로5가에서 떼온 '메리야스(속옷)'를 팔고, 나중에는 도매상서 가져온 참외도 팔아 봤다.
안씨는 "물건 떼 오는 게 너무 힘드니까 좀 가까운 중구 연안부두로 다니면서 바지락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며 "그렇게 공들인 가게가 이젠 방화범이 지른 불에 다 타 버렸다"고 호소했다.
이어 "자식들한테 손 벌릴 형편도 아니고 그저 하루하루 하루살이로 살고 있다"며 "우리 삶을 다 바친 곳을 떠날 수도 없는데 더 바라는 것도 없고 피해받은 만큼만 보상받았으면 한다"고 바랐다.
시장에 불을 낸 40대 상습 방화범이 잡혔다는 소식을 나중에 접했지만 가게를 잃은 마음에 허탈함만 더 커졌다.
현대시장에서는 앞서 지난달 4일 오후 11시 38분께 A(48)씨의 방화로 큰불이 나 점포 205곳 가운데 47곳이 불에 탔다.
그러나 이 중 안씨 가게처럼 완전히 타 버린 점포 14곳 중 9곳의 상인들은 화재 한 달째인 현재도 영업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50∼70대 고령인 이들 상인은 피해 보상 대책을 기다리며 시장 앞에 설치된 가설 천막으로 매일 출근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동구는 임시시장을 개설하는 대신 시장 내 빈 점포를 이들 상인에게 지원하기로 했지만, 이 공간은 전기·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등 시설이 열악해 5곳만 입주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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