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추천하는 이 달의 책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추천하는 이 달의 책

에스콰이어 2023-04-01 18:00:00 신고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 어크로스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에디터로 살면서 소설가가 된 입장이지만, 조지 손더스가 ‘작가의 읽기’를 공유하기 위해 꼽은 7개의 단편은 톨스토이, 고골, 체호프 등의 대표작도 아니며, 심지어 읽어봤더라도 그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다. 물론 고골의 ‘코’만 빼면 그렇다. 그러나 손더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다 보면 그가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대신 ‘마차에서’를 선택한 이유,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 대신 ‘가수들’을 선정한 이유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스무 페이지 남짓한 단편을 읽으며, 그 단편에 대한 여든 페이지에 가까운 손더스의 해설을 읽는 경험은 단편소설이라는 장르가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효율적인 전달로 글쓰기의 정수를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보여준다. ‘마차에서’를 읽으며 바실리예브나가 마차를 타고 딴생각을 하다 말고 갑작스레 하노프를 두고 ‘잘생겼어’라는 생각을 떠올릴 때,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왜 우리는 이 구절이 더없이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손더스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 이유를 조금은 깨달을 수 있다.
박세회

다시는 집을 짓지 않겠다

지윤규 / 세로북스
언젠가 어느 중견 건축가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집을 지어보면 괴물이 돼요.” 예정에 없던 비용이 계속 발생하고, 일정이 자꾸 늦춰지고, 새로운 제약이 끝없이 등장하고, 다 나를 속이려는 사기꾼 같기에, 누구나 평정심을 잃고 만다는 것이다. ‘집을 지으면 수명이 10년 단축된다’는 지윤규의 표현은 같은 말을 건축주의 입장에서 한 것일 터. 물리학과 교수 퇴임 후 농부로 살고 있는 그는 농장 옆에 작은 집을 짓기로 했고, 그 과정을 일지 형식으로 정리했다. 이변은 없다. 건축주 지윤규는 상술한 경로를 따라 수명을 깎는 고통에 빠진다. 괴물이 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그는 고통 속에서도 인부 하나하나의 사정까지 헤아리고, 감사해야 할 것에 감사하려 애쓴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구나 집을 짓는 데에 참고할 만한 실용적 기록이며, 동시에 무작정 다정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안겨주는 에세이 같기도 하다. 기록과 내역과 자료를 꼼꼼히 곁들이며 인명과 지역은 모두 가명 처리한 세심함 역시 이 고통의 기록을 사뭇 고귀하게 느끼게 되는 이유다.
오성윤

곽재식의 도시 탐구

곽재식/ 아라크네
SF 작가 곽재식을 처음 알게 된 건 그의 트윗 덕분이었다. 한 학기에 31학점을 들으면서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아 카이스트를 2년 반 만에 조기 졸업했다는 무용담이 담긴 트윗. 이 밖에 그는 6개월에 단편 4편을 집필하는 ‘1곽재식 속도’로도 유명했다. 그의 책을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읽는 내내 감탄하며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아는 게 많으니 그만큼 빠른 속도로 쓸 수 있는 모양이라고. 국내 10개 도시를 배경으로 과거 여행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인 감상이 아닌 넘치는 호기심을 엮고 엮어 거침없이 이야기를 확장해나간다. 예를 들어 경주 편, 찰보리빵으로 시작돼 음식을 소개하는 듯하지만 갑자기 보리가 쌀보다 맛없다고 느껴지는 이유를 말하더니 품종 개량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주제가 연결된다. 그러나 과학적인 설명만 나오는 건 아니다. 외계인이나 고조선 시대 검사의 활약상 등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서는 SF 작가다운 흥미로운 상상력을 십분 발휘해 부족한 진실을 채운다. 도저히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흡인력에 술술 읽히는 것이 매력이다.
김현유

도쿄의 편집

스가쓰케 마사노부 / 항해
“잡지 에디터는 무슨 일을 해요?” 이 질문을 들었을 때 한숨이 나오는 건 대답이 귀찮아서가 결코 아니다. 긴 대답을 일목요연하게 내뱉기 위한 일종의 준비운동이다. 편집이라는 말 아래엔 기획, 섭외, 취재, 촬영 등 수많은 세부 항목이 숨어 있다. 만약 브랜드와 협업을 하거나 영상 콘텐츠까지 함께 엮인 기사라면 고려해야 할 경우의 수는 배가된다. 저자는 〈에스콰이어〉 재팬 편집부를 거쳐 토요타, 소니뮤직 등 여러 브랜드의 컨설팅을 담당해온 인물로 편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획을 세우고, 사람을 모아서, 창작하는 일”이라는 간결한 답을 내놓는다. 만약 이 답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면 당신은 책을 읽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고, 만약 무릎을 탁 쳤다면 당신은 관련 업계 종사자일 것이다. 책은 수백 장의 잡지 페이지와 사진, 예시를 곁들이고 있어 편집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더라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텍스트와 이미지, 디자인의 미로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면 이 책을 나침반 삼아 헤쳐나가길 기원한다.
박호준


EDITOR 김현유 PHOTO 어크로스/세로북스/아라크네/항해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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