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세 화가의 마지막 자화상

[미술로 보는 세상] 세 화가의 마지막 자화상

연합뉴스 2023-03-19 09:00:09 신고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르네상스 시기 처음으로 자화상이 등장했다.

이후 자화상을 그리는 일은 화가에게 의무 혹은 통과의례처럼 여겨졌다. 자화상을 그리지 않은 화가는 드물다.

잘 알려진 대로 두드러지게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는 렘브란트(1606~1669)다. 에칭과 드로잉을 포함하면 60여 점(복사본까지 합하면 100여 점)에 이르는 자화상을 그렸다.

젊은 시절엔 자의식의 발현으로, 말년에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또는 성찰의 수단으로 그렸다.

이 그림은 그의 마지막 자화상(1669)으로 언급되는 작품이다.

'자화상' (1669) '자화상' (1669)

내셔널 갤러리 소장

눈길을 보면, 그 누구의 자화상보다 '깊다.' 양쪽 눈에 드리운 명암의 대비는 화려한 전성기와 비참한 말년이라는 그의 삶 '두 조각'을 상징하는 듯하다.

손을 모아 쥐고 있는 자세에서 모든 걸 내려놓은 초연함이 느껴진다. 조금도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았다.

사람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불문학자 박정자는 '시선은 권력이다'에서 '타인의 시선은 냉혹한 권력의 하나'라고 했다. 혐오감, 두려움,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

렘브란트의 시선은 편안하다. 자화상은 그림일 뿐이지만, 눈 맞추기 쉽지 않은 것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자화상은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초월한 것일까?'

그의 눈을 들여다볼수록 마치 그가 아닌 '나'를 보는 것 같다.

그는 이 자화상을 그린 얼마 후 가족도, 돈도, 친구도 없는 고독 속에서 굴곡진 생을 마감했다.

한편 자화상을 전혀 그리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단 한 점의 자화상을 그린 화가가 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다.

'자화상' (1919) '자화상' (1919)

상파울루 대학 현대미술관 소장

그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와 여러 공통점이 있다.

'불우의 화가'였으며, 사후에야 빛을 받아 대가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사망한 나이도 거의 같다. 각각 36세와 37세였다. 또 국적은 각각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였지만, 둘 다 프랑스에서 예술혼을 불태웠다.

두 사람이 확연하게 다른 지점은 자화상이다. 고흐는 렘브란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다양하고 많은 수의 자화상을 남겼다. 고갱과 헤어진 뒤엔 귀를 자른 자기 모습마저 두 점이나 그렸을 정도다.

모딜리아니는 이 그림, 딱 한 점의 자화상(1919)을 남겼다. 그의 뮤즈였던 잔 에부테른(1898~1920)의 초상을 다수 그린 것과 대비된다.

'소녀의 초상' (1919) '소녀의 초상' (1919)

개인 소장

미술 에세이스트 서경식의 평이다. "모딜리아니는 자기 자신을 예술 표현의 대상으로 삼는 데 관심이 없었던 드문 예술가다. 그는 스스로 모델이 되어 '불멸의 존재'가 되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그는 병이 깊어 죽음이 눈앞에 온 것을 안 다음에야 자화상을 그렸다. 그도 남기고 싶었다. '불멸'은 아니지만 '존재'와 '기억'을….

그의 불행한 삶을 알고 감상하기 때문인지, 이 자화상을 접할 때마다 애처롭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 특유의 화법으로 묘사한 표정은 여린 웃음 같기도 하고, 비장한 초연함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자화상에 감정이 쉬이 이입된다면, 그건 '나의 모습'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혼자서 혼자를 혼자로 그리는 일'은 어쩌면 우리가 매일 해야 하는 일이다.

리하르트 게르스틀(1883~1908)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같은 나라의 구스타브 클림트(1862~1918)보다 스무 살 어린 표현주의 화가다.

이 화가는 고작 스물다섯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긴 작품도 많지 않은데,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죽기 직전에 그린 이 그림, '웃는 자화상'(1908)이다.

'웃는 자화상' (1908) '웃는 자화상' (1908)

벨베데레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이뤄질 수 없던 한 여자와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아르놀트 쇤베르크(1874~1951)는 '무조(無調)음악'으로 20세기 현대음악을 연 작곡가다. 역시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게르스틀은 쇤베르크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이웃으로 지내던 중 그의 아내 마틸데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둘은 '밀월 도피'까지 벌였지만, 마틸데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두 달 만에 게르스틀을 등지고 가족에게 돌아갔다.

상실을 견디지 못한 게르스틀은 자신의 화실에서 목을 맨다. 20대의 나이에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어린 영혼'은 그림 제목처럼 웃는 것이 아니라 우는 것이었다.

인간에 내재한 감정의 자취와 궤도, 그중 '사랑의 상처'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린 유치환의 시 한 구절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가 떠오른다.

혼이 응축될 때 작가는 글을 쓰고, 음악가는 곡을 짓고, 화가는 그린다. 끝내 자기 모습을 그린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는 '그림이란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대상을 본 뒤 대상으로부터 시선을 떼야 하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고 그리든, 기억에 의존해서 그리든 자화상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볼 수 없는 자신을 그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화가는 자신을 그린다. 다 잃은 다음에도, 죽기 직전에도, 마치 숙명처럼 그린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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