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어린이의 외침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계속 몰랐으면 좋겠어요"

12살 어린이의 외침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계속 몰랐으면 좋겠어요"

프레시안 2023-03-18 09:44:30 신고

"전쟁이 어떤 건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수록 좋다."

12살 어린이가 겪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상을 알리는 책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예바 스칼레츠카 지음·손원평 옮김·생각의힘·272쪽)에서 저자는 역설적으로 전쟁을 '모르는 편이 좋다'고 말한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절대 이전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을 겪은 이들이 "다시 삶을 즐기고 하루하루를 즐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쟁을 알기 전과 다르다. 그것은 '평온한 일상'이 아니라 단지 "전쟁 없는 날들"에 불과하다. 설사 전쟁이 '끝나더라도' 전쟁이 삶에 새긴 상흔을 없었던 일처럼 도려낼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저자 예바 스칼레츠카는 지난해 전쟁 발발 당시 러시아에 인접한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던 평범한 12살 어린이였다.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24일부터 두 달여 간 예바가 직접 쓴 일기를 펴낸 책이다. 특히 초기 한 달 간의 상황은 거의 매일 기록돼 있다.

침공 열흘 전인 2월14일만 해도 예바의 생활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이날 열두 살 생일을 맞은 예바의 방엔 풍선 장식이 돼 있었고 집을 나서기도 전에 학교 친구들의 축하 문자 메시지가 쏟아졌다. 학교에서 마주친 친구들의 생일 축하 인사에 방실방실 웃으며 답하다 보니 얼굴이 아플 지경이었다. 방과 후엔 가족과 친척들이 생일 잔치를 열어줬다. 친구들과는 주말에 만나 볼링을 쳤다. 부모님은 예바가 두 살 때 이혼했고 이후 어머니는 터키로 떠났다. 아버지도 외국에서 일해 예바는 평소엔 할머니와 둘이, 엄마가 터키에서 돌아올 때면 외조부모와 함께 지냈다. 전쟁이 시작되기 4일 전인 지난해 2월20일 예바는 일기에 할머니와 "둘뿐이지만 우린 행복하다"고 적었다. "러시아에 대한 소문과 속삭임"이 들려 오지만 "이게 바로 내 삶"이라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난해 2월24일 예바는 이유 없이 새벽 5시에 깼다. 그리고 그 직후 "커다란 금속음"을 들었다. 러시아 국경 쪽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미사일이 들판을 가로지르는 것을 봤다. 그리고 "갑자기 거대한 로켓이 집을 스치더니 무시무시하게 큰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할머니가 "푸틴이 정말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려 하는 거니?"라고 물었지만 "그 사실을 믿기란 몹시 힘들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무도 알려준 적이 없었고 "누구도 전쟁에 대비돼 있지 않았다." 공포에 휩싸인 채 공황 발작을 견디며 우선 집을 떠나 지하 대피소로 향했다. 생일 축하 메시지가 오가던 친구들과의 단체 채팅방에선 이제 폭발과 탱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지하에서 하루를 버티고 이튿날 집에 잠시 들러 짐을 싸 하르키우 외곽 포격이 덜한 지역에 위치한 할머니 친구 집으로 떠나기로 했다. 짐을 챙기려는 예바에게 할머니는 "두고 가야 해. 우리 목숨이 더 소중하니까!"라고 말한다. 예바는 친구들을 떠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고 썼다. 이날 2주 간의 휴교령이 내려졌지만 "전혀 휴가 같지 않다."

전쟁이 일어난지 3일째 되는 날 이 12살 어린이는 여러 번 되뇐다. "전쟁 중엔 단 하나의 목표만이 남는다. 살아남는 것"이라고. "목숨이 옷 몇 벌이나 집보다 중요하다"고.

"예전에 가졌던 꿈이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뭐였는지 우리는 이제 기억하지 못한다. 예전에 했던 말다툼이나 골머리를 썩던 문제들도 기억나지 않는다. 과거에 품었던 그런 고민은 더는 중요하지 않다. (중략) 힘들고 어려웠던 모든 일이 사소해진다. (중략) 신에게 평화를 달라고 요구하며 하루 종일 기도한다."

이미 식량값이 터무니없이 올랐고 "모든 사람이 보드카를 사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은 대피소에서 다른 대피소로 피하는 도중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녀 죽자 사자 뛰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폭격과 전투기 소음에 예바는 또 다시 공황 발작에 시달린다.

전쟁 4~5일째엔 폭격에 "적응"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전히 폭격과 총격 소식으로 가득한 학교 친구들의 채팅방에서 아이들은 재미있는 영상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하려 애쓴다.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폭격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친구에겐 음악을 들으라며 자신만의 공포 극복 방법을 공유한다. 어른들은 폭격이 빗발치는 와중에도 식량 한 조각을 사기 위해 가게에 줄을 선다.

6일째, 예바는 폭격이 일어나도 더는 지하실에 숨지 않는다. "집이 폭파되면 아무도 지하에 있는 우리의 존재를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에바는 자신이 원래 살던 아파트 부엌에 미사일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전쟁 7일째, 예바의 꿈은 전날 꾸었던 전쟁 전 평화로운 하늘에 관한 것에서 폭격 맞은 집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이후에도 예바의 꿈에는 평온했던 날들 대신 전쟁 발발 첫날이 계속해서 찾아 온다. 이날 예바와 할머니는 하르키우를 떠난다.

하르키우를 떠난 예바는 전쟁 9일째 우크라이나 서쪽 끝 우즈호로드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예바가 쓰고 있던 일기가 영국 기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예바와 할머니는 그들의 도움으로 우크라이나를 벗어나 헝가리를 거쳐 아일랜드로 향하게 된다. 다른 친구들도 독일로, 폴란드 국경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전쟁이 길어질 수록 우크라이나인들의 고통은 커지는데 마땅이 주어져야 할 관심은, 특히 뿌리 뽑힌 개인과 가족의 삶에 대한 관심은 옅어진다. 학교에 지각하지 않으려 애쓰고 지리·수학·영어·독일어 과목을 좋아하며 매주 일요일엔 피아노를 배우러 시내로 나갔던 12살 어린이의 삶을 어느 날 날아 온 미사일이 '영원히' 바꿔 놨다. 아일랜드에서 얻은 모든 위안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한 순간도 멀어지지 않았다"고 쓴 예바의 글은 전장에서 떨어져 있어도 전쟁이 진행되는 한 우크라이나인들은 결코 평온을 얻을 수 없음을 알린다.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료된다 해도 개인의 고통이 곧바로 '종료'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전쟁을 겪은 이들은 이제 포격과 미사일 소리에 잠에서 깨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토록 그 소리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전쟁이 어떤 건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수록 좋다. 그러면 세상은 더 행복한 곳이 될 거다. 전쟁보다 더 끔찍한 것은 없으니까."

▲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예바 스칼레츠카 지음·손원평 옮김·생각의힘) 표지. ⓒ생각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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