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필리핀 내 주요 군사기지 사용 요청… ‘중국 포위 라인’ 완성하나

미국, 필리핀 내 주요 군사기지 사용 요청… ‘중국 포위 라인’ 완성하나

BBC News 코리아 2023-02-02 12:50:52 신고

3줄요약
해상에서 경례하는 해군의 모습
Getty Images
미국은 필리핀 내 주요 군사 기지에 대한 사용권을 바라고 있다

동아시아 지도를 살펴보면 북쪽의 한국과 일본에서부터 남쪽의 호주까지 쭉 길게 이어진 미국의 동맹국 라인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에 빠진 부분이 있다. 주요 분쟁 유력 지역인 대만과 남중국해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서필리핀해’라는 명칭을 주장한다)

그리고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2일(현지시간) 필리핀에서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을 만나기로 예정된 가운데, 미 당국은 마침내 빠진 부분을 채울 수 있길 고대하고 있다.

필리핀 소식통들은 이번 미국과 필리핀의 합의를 통해 필리핀 내 군사 기지에 대한 미국의 접근권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남중국해와 대만 주변 중국의 동태를 감시하기에 용이한 자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사용권 요청을 모색하고 있는 기지 중 3곳이 자리한 루손섬은 필리핀 북쪽 끝으로, 중국을 제외하면 대만과 가장 가까운 땅이다.

한편 이번 과거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과 미국의 이번 협상은 30여 년 전 양국이 맺은 약속을 뒤집는 일로,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될 문제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그레고리 폴링 동남아시아 전문가는 “남중국해에서 발생 가능한 비상사태 중 필리핀에서의 접근성이 필요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면서도 “미국은 영구적인 기지를 찾고 있는 게 아니다. 필리핀의 기지에 대한 사용권에 대한 논의일 뿐 기지 건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즉 대규모 병력이 주둔할 기지가 아니라, 물자를 수송하고 주변을 감시하는 등 “가볍고 유연한” 작전 수행 시 사용할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필리핀 내 주요 군사 기지 4곳의 위치
BBC
미국이 바라는 필리핀 내 주요 군사 기지 위치

바꿔 말하면, 이번에 미국이 군사 기지 사용권을 확보한다고 해도 필리핀 클라크필드와 인근 수빅 해변에 미군 1만5000명이 주둔하며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군 기지를 이뤘던 1980년대로 회귀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렇듯 과거 필리핀엔 대규모 미 병력이 주둔했으나, 1991년 필리핀 정부는 미군 철수를 요청했다.

당시 필리핀에선 폭정을 일삼던 독재자 페르난디드 마르코스가 시민들의 손에 몰락한 상태였기에, 옛 식민 지배자마저 되돌려 보냄으로써 민주주의와 독립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했다.

당시 베트남 전쟁도 이미 끝난 지 한참이었으며, 냉전 또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군사력은 미군이 걱정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게 1992년 미군은 필리핀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부분 철수했다.

그렇게 30여 년이 흐른 2022년, 마르코스의 장남인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가 대선에서 승리하며 대통령궁으로 복귀했다.

더 중요한 점은 중국은 더 이상 군사적 약체가 아니며, 필리핀 코앞까지 성큼 다가와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 지도를 다시 그리며 영유권을 주장할 때 필리핀 정부는 그저 무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위기감을 느꼈으나, 개입할 만한 상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 2014년부터 중국은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깊숙한 곳에 자리한 미스치프 암초 등 10곳에 인공섬 기지를 건설했다.

필리핀 대학의 헤르만 크래프트 정치학 교수는 그때까지만 해도 필리핀과 중국의 관계엔 큰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남중국해에서 필리핀과 중국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 중국은 스카버러 암초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더니 2014년 인공섬을 짓기 시작했죠. 중국이 (필리핀의) 토지를 약탈해 가면서 관계가 변했습니다.”

한편 호세 쿠시아 주니어 전 주미 필리핀 대사는 “필리핀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할만한 능력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쿠시아 전 대사는 중국이 남중국해에 새로운 기지를 짓고 이를 군사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반복적으로 어겼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약속을 어기고) 인공섬을 군사기지화 했고, 이에 필리핀의 더 많은 영토가 위협에 처하게 됐습니다. 오직 미국만이 이들을 막을 힘이 있습니다. 필리핀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필리핀 올롱가포나 앙헬레스 거리가 미 해병대와 공군 수천 명으로 북적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존 필리핀군 기지 안에 새로운 미군 시설이 들어오는 것이며, 소규모의 미군이 순환 배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필리핀 내 미군들이 몰렸던 지역의 모습
Getty Images
미 해군기지에서 가까웠던 루손섬 서남부 올롱가포 지역은 1970년대 불법 성매매의 중심지였다

한편 필리핀에선 여전히 미군이 저지른 폭력 및 학대가 민감한 주제로 남아있다. 일례로 당시 미군 철수 시 버려진 필리핀인 생모와 함께 버려진 아이들이 1만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좌파적 성향의 ‘신 애국 동맹’의 레나토 레예스 사무총장은 “(미국과 필리핀은) 오랜 불평등의 역사를 지녔다”면서 “필리핀은 그 사회적 비용을 부담해야만 했다. 강간, 아동 학대, 유독성 폐수 유출 등의 역사를 앓아왔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미군의 필리핀 복귀는 필리핀 내 좌파 단체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물론 이전만큼 대규모 병력이 주둔하진 않겠으나, 현재 미 당국은 남중국해를 마주보고 있거나 혹은 대만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몇몇 군사 기지에 대한 사용권을 원하고 있다.

비공식적인 보고서에 따르면 루손섬 내 카가얀, 잠발레스, 이사벨라 기지와 팔라완섬 내 기지 한 곳을 언급했다고 한다.

카가얀 기지는 대만을, 잠발레스 기지는 스카버러 암초를, 팔라완섬 기지는 스프래틀리 군도와 마주 보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계획에 대해 폴링은 남중국해 내 중국의 추가 영토 확장을 저지하는 동시에, 대만섬 주변 중국군의 동태를 주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폴링은 “미국과의 이 동맹을 제외하면 필리핀이 따로 중국을 저지할 방법은 없다”면서 “인도로부터 브라모스 순항미사일을 수입하는데, 미국은 필리핀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배치하고자 한다. 이렇게 합치면 중국 선박을 저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대만 내 충돌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필리핀은 미군 작전을 위한 “후방 접근 구역” 혹은 난민 대피소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폴링은 “대만에 사는 필리핀 국민이 15만~20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종종 잊는다”고 덧붙였다.

경례하는 필리핀군과 미군의 모습
Getty Images
지난해 말 합동 군사 훈련을 시행한 필리핀과 미국

그렇다고 해서 필리핀이 중국의 부상에 도전하고자 저항하고자 미국의 완전한 동맹국이 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게 크래프트 교수의 지적이다.

“필리핀은 호주나 일본처럼 남중국해나 동중국해 내 중국의 이익에 직접 도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길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경제적 이익을 위해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맺길 원합니다.”

한편 중국 또한 필리핀과 미국 간 새로운 기지 사용 협정이 자국과 필리핀의 관계를 방해하게 두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미 국방장관의 필리핀 도착 시점에 발간한 사설을 통해 미국이 “필리핀을 위한 함정을 팠다”면서 “중국과의 대립 최전선에 필리핀을 몰아가려 한다”고 비난했다.

한편 중국을 미국만큼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국가라고 믿는 레예스 사무총장은 “필리핀이 다시 한번 (강대국) 사이에 끼어들고 있다”며 우려했다.

“필리핀은 여전히 미국을 큰형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도 식민지 정신이 남아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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