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이 되는 법: 희망 편

성덕이 되는 법: 희망 편

바자 2022-11-27 00:00:00 신고

3줄요약
 
덕질이란 일종의 멀티버스다. 일상 세계가 있고, 스타와 공유하는 세계가 있고, 팬들끼리의 세계가 있고…. 그렇게 생겨난 무수한 멀티버스 덕분에 사는 게 즐거운 사람들. 그게 덕후 아닐까.
 
Track 2. 희망 편: A씨의 무한한 덕질은 가능할까
지속가능한 덕질은 판타지일까? 대중음악전문 기자 박희아는 말한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마법의 세계 밖으로 기꺼이 탈출할 용기가 있다면, 당신의 덕질도 무한히 안녕할 거라고.
 
부쩍 ‘덕질의 유한함’을 느끼고 있다는 1세대 아이돌 팬 A의 사례. 많은 사람들이 A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직도 좋아해?” 익숙한 질문이다. “응. 아직 좋아해.” 그러면 다음 질문이 따라붙는다. 질겁한 얼굴과 함께. “왜?”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가장 먼저 상대를 놀래키는 부분은 20여 년의 시간을 보내며 여전히 한 팀 혹은 한 명에게 애정을 쏟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순정과 의리에 대한 경의의 표현. 나쁘지 않은 접근이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다. 씁쓸한 표정이 절로 지어지며, “왜?”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 원흉을 언급하는 상대에게 나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때 치는 대사는 대충 이렇다. “나도 그 사람이 싫어. 탈퇴했으면 좋겠어.”
탈퇴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A의 말은 7에서 8할 정도의 진심이 담긴 얘기다. 앞서 말했듯, 그는 지금 ‘덕질의 유한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음주운전과 도박, 성매매 알선 의혹, 불법 촬영물 유포 등 온갖 사회 문제로 점철된 그의 히스토리가 너무나 부끄럽다. 그나마 자신은 문제를 일으킨 멤버가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사자성어 같은 것들이 A씨를 괴롭힌다. 예를 들면 유유상종, 오비이락 같은 것들 말이다. 이렇게 피로한 상황에서 A씨는 더 오랜 순정과 의리를 맹세할 수 있을까?
2할에서 3할 정도 남은 마음은 미련이다. 문제의 원흉을 향한 미련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그 원흉을 진심을 담아 좋아하고, 때로는 사랑까지 했던 나의 과거에 대한 미련. A씨를 비롯한 많은 팬에게 어떤 팀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과거란, 10대와 20대를 함께 보낸 정신적 지주에 관한 나만의 히스토리이기도 하다. 이처럼 남의 역사가 곧 나의 역사가 되는 마법이 가능하고, 공통의 것으로 인식된 역사를 기반으로 미래까지 약속할 수 있는 관계는 아마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가 유일할 것이다.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중에 맞이한 열애설이 달갑지 않은 이유, 반대로 팀이 하락세로 향하는 와중에 접하는 임신 내지는 결혼 발표가 달갑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애와 결혼이 질투를 부르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사건들은 열심히 스트리밍을 하고 앨범을 사면서 성공에 불을 붙이던 팬들이 자기들 모르게 이면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만든다. 삶의 지향이 다른 역사가 평행우주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느낀 허무함. 그것이 팬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마법 같아 보였지만, 사실 이 인연은 눈속임에 불과한 마술이었다는 사실이 갑작스럽게 드러나며 팬들은 내상을 입는다. 그렇지만 A씨와 다수의 팬덤은 희망을 잃은 게 아니다. 실제로 팀에서 문제를 일으킨 멤버가 활동 중단, 탈퇴를 하고 나서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가 더 끈끈해진 경우가 있다. 마법에서 깨어난 사람들끼리 현실적인 연대를 통해 한층 지속가능한 관계를 수립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2할의 미련이 있더라도, 8할의 진심이 사회 문제를 일으킨 그와 그를 옹호하는 팬들에게 화를 낸다. 지금 잘못한 사람을 옹호하다 보면 오히려 우리 팬덤이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로 비춰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잘못을 지적한다. 점점 팬들 사이에서도 도덕, 윤리, 법, 법감정, 예민도 등의 단어가 중요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단어들이야말로 팬들에게 ‘덕질의 유한성’을 극복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키워드들이다. 도덕과 윤리 안에서 행동하는 사람을 찾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위법 소식에 사람들이 혀를 차는 이유를 생각해보며 법감정에 대해 이해한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말을 예민하게 귀 기울여 듣고, 그 발언이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것이라면 그 불쾌함을 토로한다. 많은 팬들이 더 이상 신비롭고 아름다운 마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기를 거부한다. 물론 A씨는 마법 같은 기분에 휩싸여 있을 때 조건 없이 주는 사랑으로 행복했던 적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아티스트들이 그 행복을 먼저 깨부술 수 있다는 점을 알린 이상, A씨는 좀 더 이성적으로 아티스트의 행보를 바라볼 생각이다. 그래야만 무한히, 내 마음이 다치지 않는 건강한 팬으로 살 수 있을 테니까.
공동의 역사를 빼앗긴, 역사에 흉이 진 팬들은 여전히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 생각해보자. 지금 가장 속이 끓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다. 언제든 팬들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개선하지 않으면 돌아설 수 있다는 사실을 깨친 그들이다. 어떤가!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는가?  


에디터/ 손안나 사진/ 이현석 글/ 박희아(대중음악전문 기자) 일러스트/ 김남희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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