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원보람 시집 '라이터 불에 서로의 영혼을 그을리며'

[신간] 원보람 시집 '라이터 불에 서로의 영혼을 그을리며'

뉴스로드 2022-11-25 09:00:15 신고

라이터 불에 서로의 영혼을 그을리며
라이터 불에 서로의 영혼을 그을리며

걷는사람 시인선 73번째 작품으로 원보람 시인의 『라이터 불에 서로의 영혼을 그을리며』 가 출간됐다.

원보람은 201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실을 정직하게 읽을 줄 알며 언어와 표현법 뒤에 숨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평이한 시어 속에 긴장의 풀잎이 날카로운 원보람의 시는 잔혹동화 같은 면모로, 고요함 가운데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낸다.

‘라이터 불에 서로의 영혼을 그을리며’라는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시인은 사랑의 고통과 위험성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고통으로 진화하는 감정은 밤의 취향/우리는 언제쯤 안전할 수 있을까요/(…)/교회 앞에 버려진 아기와 마른 꽃들이/하나의 식구를 이루는 옥탑에서/나는 가끔 창문을 열고/지상에서 손을 흔드는 이웃들에게/모든 세간을 쏟아 버리고 싶었습니다”(「옥탑의 비밀」)라는 문장처럼 고통을 주는 주체에 대해 증언하는 작품이 많다.

그러나 원보람은 원망하는 태도보다는 슬픔을 직시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매번 다른 면이 나오는 주사위를 던져서/엉망으로 훼손된 진심을/한 칸씩 옮기는 방식으로”(「진심 게임」) 그는 차라리 ‘패배’를 자처한다. 나뿐 아니라 누구나 서로에게 그을릴 수 있다는 마음 상태를 지닌다.

시집에는 청춘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험한 사랑과 상처가 솔직하고도 처연하게 그려진 시편들이 눈길을 끈다. “날짜를 세는 일은 나의 새로운 습관이에요 (…) 날짜를 세다가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말았습니다 도무지 일상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날이 오면 정말 이별입니까 잘 먹고 잘 살고 안녕히 모두 안녕히 하나의 이벤트가 끝납니다 나는 여전히 빈손입니다”(「타협」)와 같이 이별을 형상화하는 대목들이 선연하다. ‘이벤트’처럼 끝나 버리는 사랑이라니, 그런 처지에서도 ‘타협’하는 태도를 취해야만 하는 세상살이의 냉정한 이치를 이 젊은 시인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낸다. 이것이 인생이라고.

이처럼 원보람 시인이 형성한 시세계는 깨져 버린 감정의 잔해들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일찍이 배우고 터득했지만, 단단하게 그리고 용기 있게 그 사실을 직시하며 내일의 가능성을 믿는 일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보람은 자신의 감각을 믿으며, ‘마술’보다 더 마술 같은 다음을 향한다. 흘러가는 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권한다. 

 

추천의 글

원보람의 시는 불신한다. 연인을 믿지 않고, 세상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지 않는다. 오로지 축축하거나 빽빽한 풍경과 거기에서 오는 감각이 있을 뿐이다. 믿지 않기에 감각만을 남기며 감각만이 남았기에 이 불신은 아름다움으로 기록된다. 상처를 믿지 않고 고통의 감각만을 느낀다면, 애초에 상처가 없던 것처럼 상처를 지울 수 있다. 불행을 믿지 않고 이질감만을 느낀다면 불행을 삭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감각은 순수한 것, 감각은 용기 있는 것. 순수와 용기에서는 가능성이 태어난다. 그러한 가능성으로 원보람은 쓴다. “미래를 예언하는 건 일종의 자만”이라고 “우리는 아무것도 모를 권리가 있다”고. “날아오는 새를 삼”키는 “보호색”을 띤 “고층 빌딩”들의 세상, “슬픔으로 잘 짜”인 “사회”인 이곳에서 “주기적으로 주변을 자”르며 살아가고 있다고. “정신 승리를 거듭하다가 몸은 패배하는 우리들”이 느껴야 하는 것은 고통과 두려움이 아니라 “나무 아래”에서 그저 “바람에 흩날리는” 감각뿐이라고.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움직이는 촉각을 통해 우리는 “잠시 동안 혼자가 아”닐 수 있다고. 연민도 자기 비하도 아닌 딱 그만큼의 감각으로, 원보람의 시는 있다. 담백하고 단단하게 존재하고 있다.

-강지혜 시인

 

시인 원보람

대전에서 태어나 201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영화소설 『검은 사제들』, 『글로리데이』, 『형』, 『안시성』, 『손 더 게스트』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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