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이슈] “불리지 않는 이름이라도”…앙상블에 주어진 ‘이름’의 의미

[D:이슈] “불리지 않는 이름이라도”…앙상블에 주어진 ‘이름’의 의미

데일리안 2022-11-25 07:31:00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는 말을 몸소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앙상블’ 배우들이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특정한 배역 이름도 없이 ‘앙상블’ ‘멀티 역’으로 표현되지만 무대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뮤지컬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쇼노트

극중에서 한 번도 이름이 불릴 일 없는 배우들에게까지 ‘굳이’ 배역 이름을 주지 않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짓는 것도 제작자의 선택이다. 어떤 방향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몇몇 작품에서 앙상블 개개인에 배역 이름이 주어지는 사례들은 분명 뮤지컬 시장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주·조연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앙상블의 군무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댄스 뮤지컬의 효시’라 불릴 정도로 춤이 중요한데, 주·조연뿐 아니라 앙상블에게도 각각에 맞는 안무가 있을 정도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모든 앙상블 배역에 캐릭터 이름이 주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작진은 캐릭터에 이름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과 배경 등의 설정을 모두 제시해 배우들에게 전달했다. 그 덕에 배우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더 정교하게 구체화할 수 있었고, 각각의 캐릭터들이 모두 무대에서 빛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관계자는 “저희 작품에선 절대 ‘앙상블’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한 명 한 명의 배역들을 ‘앙상블’이 아닌 하나의 캐릭터로 접근해서 이름과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면서 “앙상블 역시 무대에서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자신의 캐릭터를 이해하고 연기에 임할 수 있도록 제작 단계에서부터 섬세하게 준비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뮤지컬 '광주'(위)와 '킹키부츠' 공연 장면 ⓒ

뮤지컬 ‘광주’도 마찬가지다. 2020년 초연부터 올해 4월 삼연으로 관객을 찾았던 이 작품에서 앙상블은 ‘시민군’ ‘광주시민’ ‘편의대원’ 등으로 표현되며 각각의 캐릭터에 이름과 전사, 서사를 부여했다. 프로그램북에는 이들의 콘셉트 컷이 따로 만들어져 삽입되기도 했다.

‘광주’ 관계자는 “배우들이 연기를 함에 있어서 캐릭터의 전사, 서사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앙상블 배우들에게 각각의 서사가 주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 “그런데 ‘광주’의 경우 각각의 캐릭터에 전사와 서사를 줌으로써 ‘모든 구성원이 주인공’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 작품이다. 배우들 역시 보통의 뮤지컬이었다면 ‘앙상블’로 불리는 역할에 이름이 부여되면서 매우 만족감을 보였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서울에서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현재 투어 공연을 펼치고 있는 뮤지컬 ‘킹키부츠’도 모든 앙상블에게 이름이 부여된 작품이다. 지난 시즌 ‘킹키부츠’에 ‘머트’(Mutt) 역으로 참여했던 배우 전걸은 “기존에 앙상블로 무대에 설 때는 스스로 캐릭터에 이름을 붙여서 작품에 임했다”고 말했다. 캐릭터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이름 없는 배역에 스스로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이름이 주어진 만큼, 배우들의 책임감의 무게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걸은 “(‘킹키부츠’에서는) 배역에 이름이 주어졌는데, 때문에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머트’라는 이름은 극중 한 번도 누군가에 의해 불리지 않지만 배우에게는 너무 소중한 이름”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들은 “앙상블에 대한 편견과 더불어 환경도, 존중도 부족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환경도, 인식도 바뀌어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주연배우 OOO외 몇 명’으로 소개되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관객들도 앙상블을 그저 주연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만 보지 않는다.

한 뮤지컬 관계자는 “앙상블 배역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제작자의 선택이고 필수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이름이 주어지면 배우들도 그만큼 책임감이 커지고, 나아가 작품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불리지도 않는 이름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름’이 주어지면서 앙상블 역시 작품의 한 구성원으로서 존중받는다는 의미로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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