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로만 와도 눈치 보였는데…이제 ‘아내 캐디’가 대세”

“갤러리로만 와도 눈치 보였는데…이제 ‘아내 캐디’가 대세”

이데일리 2022-06-24 00:1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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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은채(왼쪽) 씨와 허인회(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스타in 주미희 기자] “불과 8년 전에는 지금 아내가 갤러리로만 와도 눈치가 보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분위기가 많이 자유로워졌죠. 제가 바꿔놓은 것 같아요. 하하.”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풍운아’ 허인회(35)의 말이다. 아내 육은채 씨가 여자친구이던 시절, 갤러리로 경기를 구경하러 왔는데 주위에서 ‘뭐야?’라며 웅성댔다. 아내가 자신의 캐디를 하는 것이 로망이었던 허인회의 부탁으로, 골프의 ‘ㄱ’자도 모르던 육은채 씨는 골프를 익히기 시작했다. 육은채 씨는 2014년에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 허인회의 백을 처음 멨는데 좋지 않은 시선이 당연히 그들을 따라다녔다. 군인 신분으로 한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었던 허인회는 육은채 씨를 캐디로 등록했데, 군에서 이를 반대했다. 이런 시선을 무릅쓴 육은채 씨는 어느덧 베테랑 캐디가 됐다. 지난해에는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함께 우승을 합작했다. 어느덧 코리안투어에는 허인회와 육은채 씨처럼 우승을 함께 하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동반자 라인 밟을까…그린 밖에서 ‘발 동동’

육은채 씨는 캐디를 하던 초반에는 동반자의 퍼팅 라인을 밟을까봐 그린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조심스러워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지금은 규칙이 바뀌어 핀을 꽂고도 퍼팅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퍼팅할 때 무조건 핀을 빼놔야 했다. 전문 캐디가 아니거나 초보 캐디는 핀을 뽑으러 가다가 의도치 않게 동반자의 퍼팅라인을 밟는 일이 허다했다. 육은채 씨는 “처음에 선수들에게 양해를 정말 많이 구했다”고 회상했다. 허인회는 “동반 선수의 캐디들에게 ‘아내에게 핀 주지 말고 알아서 꽂아주세요. 저는 그냥 퍼팅할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아내, 부모, 지인 등 전문 캐디가 아닌 경우에는 동반자 플레이에 방해가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자신이 맡은 선수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주위를 둘러볼 여력이 없어져서다.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동반 플레이어가 샷을 할 타이밍에 움직이거나 소리내는 것, 퍼팅 라인을 밟는 것 등이다. 허인회는 “일부러 아내에게 그린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형준과 아내 홍수빈 씨(사진=이데일리DB)
퍼팅 라인 읽고 바람 방향도 공부

코리안투어 통산 5승의 이형준(30)과 아내 홍수빈 씨도 대표적인 선수-캐디 부부다. 이형준이 캐디백을 아내에게 처음 맡기기 시작한 것은 교제 중이던 2016년. 홍수빈 씨는 2017년 본격적으로 캐디를 시작한 이후 남편의 2승을 책임졌다. 홍수빈 씨는 “전문 캐디가 아니어서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못하지만 보기를 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정말 많이 해준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그런 홍수빈 씨의 필살 내조법은 매일 밤 10분씩 해주는 발 마사지다. 특히 대회 때는 나흘 동안 매일 5시간을 걸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특히나 발에 무리가 가는 이형준을 위한 홍수빈 씨의 팁이다. 또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태국으로 함께 전지훈련을 가서 퍼팅 라인 읽는 법과 바람 방향을 파악하는 공부를 많이 했다. 홍수빈 씨는 “남편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퍼팅 라인 보는 건 남편과 호흡이 맞는 것 같다”라며 밝게 웃었다.

양지호와 아내 김유정 씨(사진=이데일리DB)
부진할 때도 믿고 기다리는 것이 내조법

지난달 KB금융 리브챔피언십에서 데뷔 14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한 양지호(33)는 아내 김유정 씨가 백을 메 화제를 모았다. 특히 김유정 씨는 마지막 18번홀에서 두 번째 샷을 앞두고 양지호가 우드로 투 온을 노리려고 하자, 우드를 뺏다시피 하며 아이언으로 안전하게 치기를 권해 눈길을 끌었다.

2018년 양지호가 잘 풀리지 않을 때부터 그의 곁을 지키며 백을 멘 김유정 씨는 2년 전 결혼했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캐디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내년에는 2세 계획이 있어 올해까지만 캐디를 하기로 했다.

사실 양지호는 올해 데뷔 14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골프를 헤맨 적이 더 많았다. 김유정 씨로서는 양지호가 고전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적에 대한 압박은 전혀 가하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믿음 하나로 그의 골프를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김유정 씨는 “남편이 연습하는 걸 보면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믿었다”며 “남편이 뒤떨어진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남편이 할 것만 열심히 하면서 기다리면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다”고 밝혔다.

김민수와 아내 류아라 씨(사진=이데일리DB)
아내 캐디의 장점…경비 절감·심적 안정감

최근 아내 캐디가 많아진 이유로는 경비 절감을 꼽을 수 있다. 보통 한 대회 당 전문 캐디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100만~150만원 선이다. 식비, 숙박비 등은 별도다. 대회 상금이 크면 이 금액이 부담스럽지 않지만, 상금이 적은 규모의 대회에 출전하면 버는 돈보다 캐디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더 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 된다. 또한 최근 들어 유독 캐디를 구하기가 힘들어지면서 코리안투어 선수들이 아내 혹은 여자친구에게 캐디를 부탁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육은채, 홍수빈, 김유정 씨는 아내 캐디의 장점으로 심적으로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점을 꼽는 데 입을 모았다. 홍수빈 씨는 “아무래도 남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니까 물이 필요할 때, 이야기가 필요할 때 등 선수의 리듬을 맞추는 데 능하다”고 말했다. 또 “여자라서 그런지 더 섬세하게 잘 챙겨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김유정 씨 또한 “전문 캐디에 비해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게 단점이지만, 남편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알기 때문에 그럴 때 위로의 말을 통해 심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며 동의했다.

코리안투어 데뷔 10년 차인 김민수(32)의 아내 류아라 씨도 지난해부터 남편의 백을 메기 시작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정회원인 그는 레슨보다 캐디가 훨씬 재밌다며 김민수가 캐디를 구하지 못해 처음 백을 메게 됐다고 소개했다. 류아라 씨는 “남자들이 잘 잊어버리는 세심한 부분까지 챙겨주는 게 아내 캐디의 장점”이라며 “짐 싸는 것부터 운전, 숙소 예약, 일정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긴다”고 설명했다. 코스 안에서뿐만 아니라 코스 밖에서 매니저 역할까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뿐만 아니라 최호성(49), 이근호(39)도 아내와 함께 투어를 다니고 있고, 방두환(35)도 곧 아내를 캐디로 대동할 예정이다. 코리안투어에 부는 여풍(女風) 효과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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