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아이가 말을 안 해요! [선택적 함묵증]

어머니 손을 잡고 내원한 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체구가 작고 왜소했습니다. 경직돼 있는 태도에 입을 꾹 다물고 있어 많이 긴장한 듯 보였습니다.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됐는데, 최근 학교 교사로부터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아이는 집에서 수다스럽게 말을 잘할 뿐만 아니라 1, 2학년 때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코로나 시국이어서 보통의 학교 분위기와 많이 다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갑자기 아이가 말을 안 해요! [선택적 함묵증] ⓒ픽사베이

아이에게 학교에서 말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뚜렷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냥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고, 친구들이 자기 말을 안 들어줄 거 같다고도 하고, 혼자 책을 보는 게 더 좋다고 말하기도 하는 등 이유가 자꾸 바뀌었다고 합니다. 

걱정이 된 어머니는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원에 전화해서 학원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학원은 1학년 때부터 다니던 곳인데 그곳에서는 별다른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학교에서 아이가 말을 안 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학원 교사는 의아해하며 학원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답니다. 

아이는 유독 학교에서만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같이 등교하는 친구와는 평소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왜 학교에서만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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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함묵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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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특정 장소나 특정 사람들과 말을 하지 않는 증상을 ‘선택적 함묵증(selective mutism)’이라고 합니다. 언어 발달을 포함한 전반적인 발달상의 문제가 없고, 평소 편안한 사람들과는 대화를 잘 나누기도 하지만 특정 상황이나 인물을 만났을 때 말을 전혀 하지 않는 양상을 보입니다. 증상이 극심한 아이들은 낯선 사람과는 완전히 말을 하지 않고, 그보다 나은 아이들은 분위기가 편안하면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학기 초에 이런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아이들이 늘어나는데 대부분 기질적인 예민함과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으로 인해 불안감이 높아진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에 온 아이들 중 일부는 검사 과정 내내 말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안 그래도 긴 심리검사 시간이 아주 길어지는 것이죠. 세 시간, 네 시간 길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끝내 말을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면도 함묵증을 보이는 아이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니 학교 교사나 친구들도 처음에는 다정하게 설득하는 태도를 보이다가도 이내 인내심이 바닥나서 포기하곤 하지요. 결국 아이는 학교 적응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수업에 참여하거나 친구들과 사귀는 과정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죠. 게다가 성격이 내성적이고 불안이 높은 아이들은 점차 불안이 심해져서 말을 하지 않는 대상이 늘어나고 행동적인 위축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은 처음에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지켜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답답한 마음에 아이를 다그치는 날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 이유를 뚜렷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니 그 속을 알 길이 없어 많이 답답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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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함묵증 아동 맞춤 양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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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이가 말을 안 해요! [선택적 함묵증] ⓒ픽사베이

 

함묵증은 아이가 말을 하는 능력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때로는 편안하게 말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니 방치하기 쉬운 문제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언급한 것과 같이 경우에 따라 증상이 극심해질 수도 있고, 증상으로 인한 전반적인 적응상의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재촉하고 압박하지 마세요

어린아이들의 경우 자신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를 스스로 자각하거나 말로 설명하는 게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단지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어서 대답하는 기회를 놓쳤던 것이 점차 습관처럼 대응하는 방법으로 굳어졌을 확률이 높습니다. 때문에 “왜 말을 하지 않는 거니?”라며 아이를 재촉하고 이유를 알아내려 할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부모님의 압박이 크면 뭐라도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아무 이유나 만들어서 이야기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문제 개선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죠. 

물론 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명확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단,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유를 물어도 별다른 답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자꾸만 재촉해 원인을 찾으려 할 필요 없습니다.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고 안심시켜 주세요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고 큰일이 난 것처럼 다루면 아이는 더 긴장하고 불안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말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낯선 곳에서는 말을 하는 게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는 설명으로 아이의 행동이 충분히 정상적인 반응일 수 있다는 안심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을 하지 않으면 친구들과 사귀는 것은 물론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천천히 연습해 보길 권하는 겁니다.

 

말하기 편안한 환경 만들어 주세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설명한 다음에는 말을 하기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위 사례의 경우 등교하는 아이, 같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과는 편안하게 대화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아이들과 함께 같은 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려나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수의 학원 아이들이나 한두 명의 같은 반 아이들을 집에 초대해 보세요. 집이라는 안전한 환경과 편안한 대상의 아이들을 만나면 조금씩 학교 아이들과도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증상이 조금 개선되면, 원래 같이 등교했던 아이와 함께 같은 반 아이 중 한 명을 같이 등교하게 하면 교실에 들어간 뒤에도 어느 정도의 편안함을 느껴서 말을 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증상 심하면 집중 치료 추천해요

아이가 편안한 환경 속에서 대화하는 연습을 충분히 하면 증상은 점차 개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고 더 심해진다면 집중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놀이치료와 같이 내면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동시에 치료사의 안내에 따라 친구들과 말하는 연습을 하는 사회성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혹은 치료 장면에서 아이들과 그룹을 형성해서 대화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도움 되기도 합니다. 

갑자기 아이가 말을 안 해요! [선택적 함묵증] ⓒ픽사베이

 

함묵증은 말을 하지 않는 것 외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동기는 한창 사회성이 발달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적절한 개입 시기를 놓치면 증상이 성격적인 문제로 굳어져 적응상 어려움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증상이 발견되는 즉시 충분한 관심을 갖고 단계적으로 문제를 개선해 나갈 것을 권장합니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통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