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문화] (35)"돼지 먹으면 부정 탄다고?"…'돗고기 부정' 이유는!

[다시! 제주문화] (35)"돼지 먹으면 부정 탄다고?"…'돗고기 부정' 이유는!

연합뉴스 2022-05-15 09:00:06

제주 돼지에 이런 의미가…금기에는 이유가 있다

다양한 해석과 추론 "성역 없는 활발한 연구 필요"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죈경내(종경내, 돼지고기 냄새) 나는 할망신과 같이 살 수 없다!"

제주의 돗통시 제주의 돗통시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만8천에 이를 정도로 많은 신들이 사는 고장 제주.

이곳 제주에서 어느 날 신들이 부부싸움을 하던 중 하르방신이 할망신을 내쫓으며 이처럼 버럭 화를 냈다. 할망신이 쫓겨난 이유는 '돗고기 부정'(돼지고기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돼지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란 것인데, 반대로 육식을 한 하르방신이 집에서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집마다 돗통시를 만들어 돼지를 가까이했던 제주에서 이런 내용의 본풀이(제주신화)가 전해 내려오는 이유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제주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게 왜 부정(不淨)한 일이 된 것일까.

◇ 제주 돼지에 이런 의미가…금기에는 이유가 있다

'괴기를 팟싹 먹고판 상돗통에 기여들언 보니, 되야지가 용베겔 베와 용ㅈ+ㆍ+ㅁ을 자고 이서, 갱맹지를 손에 감아 죄고 항문으로 손을 드리ㅁ+ㆍ+ㄹ아 간내 식식 양외 식식을 빼여 먹어.'(진성기,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495쪽, 너무나 고기를 먹고 싶어 돼지우리에 기어들어가 보니 돼지가 큰 베개를 베고 큰잠을 자고 있어 강명주를 손에 감아쥐고 항문으로 손을 들이밀어 맛있는 간과 양을 빼먹었다)

제주 서귀포시 보목동 본향당인 '조노깃당'에 전해 내려오는 본풀이는 충격적이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솟아난 한라산 신(神)인 조노기한집의 아내가 너무나 고기를 먹고 싶어 인간의 돼지우리로 기어들어가 돼지 항문으로 손을 집어넣어 내장을 빼먹었다는 것이다. 돼지고기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하지만 돼지고기 냄새를 맡은 남편 조노기한집이 부정한 아내와 함께 살 수 없다며 아내를 내쫓는다.

제주신화에는 신들도 인간처럼 부부의 연을 맺어 사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제주 산야를 떠돌아다니던 남녀 신들이 우연히 만나 함께 한 마을에 좌정한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그런데 육식을 했다는 이유로 부부 간 갈등이 빚어지곤 한다.

돗제에 올릴 돼지고기 손질 돗제에 올릴 돼지고기 손질

(제주=연합뉴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김녕어울림센터에서 돗제(豚祭)가 열린 가운데 마을 주민들이 제사상에 올릴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나눠 자르고 있다. 제주에서도 유독 구좌읍 김녕리에서는 마을의 신을 위한 의례를 지낼 때 돼지고기 한 마리를 바치는 전통이 있다. 고기를 삶아 부위별로 12조각으로 잘라 모두 제상에 올리고 육수에는 모자반을 넣어 몸국과 몸죽을 끓인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심지어 돼지털을 뽑아 방 안의 화로에 넣어 냄새를 맡거나 돼지 발자국에 담긴 물을 마시는 등 간접 접촉만 했을 뿐인데도 신들이 별거 또는 이혼에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탓에 사람들이 신에게 제를 올릴 때 바치는 음식도 쌀밥 등 곡물과 돼지고기 등 육류로 나뉘고 신들의 식성에 따라 미식신(米食神)과 육식신(肉食神)으로 구분한다.

특히, 제주에선 미식신에게 제를 올리거나 굿을 할 때 옆에서 보기만 하려는 참관자(參觀者)도 며칠 전부터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등 부정을 피하는 최소한의 정성을 기울이는 게 일종의 불문율처럼 돼 있다.

이러한 믿음,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돼지고기와 관련한 금기의 대표적인 사례는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교다.

이슬람교는 돼지고기를 금기시한다. 이슬람 경전 코란(꾸란)에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코란 2장 172∼173절에는 "믿는 자들이여, 신께서 너희에게 부여한 양식 중 좋은 것을 먹되 신께 감사하고 그분만을 경배하라.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적혀 있다.

이를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지리적 환경과 문화, 돼지의 특성을 분석해 그럴듯한 풀이를 내놓았다.

땀샘이 발달하지 못한 돼지는 체내에서 발생한 대사열을 체외로 방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건조하고 물이 귀한 사막 지대에서 돼지를 키우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동 지역의 돼지고기 금기는 이와 같은 환경을 파악한 정치·종교 지도자들의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바로 마빈 해리스의 견해다.

천연기념물 제주흑돼지 천연기념물 제주흑돼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리나라의 일부 학자 역시 이러한 그의 접근 방식을 제주의 '돗고기 부정'에 적용하기도 한다.

강권용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은 '돼지를 통해 본 제주도 당신의 식성 갈등' 논문을 통해 선사시대부터 식용으로 사용돼 왔던 제주의 야생 멧돼지는 화전(火田) 농경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그 수가 줄어들었고, 돼지 거름을 통한 농업 생산량 증가를 위해 각 가정의 돗통시(돼지우리)에서 사육됐다고 설명한다.

그는 "돼지고기에 대한 금기는 돼지를 항상 이용할 수 없다는 데 있다"며 "농산물을 키우기 위한 거름을 생산하는 동물로 돼지는 중요한 자원이기에 함부로 훼손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앙민들은 돼지에 대한 식량자원으로서의 비용이 높게 발생하자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신앙에서만 (돼지고기를) 금기하는 부분 금기의 대상으로 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즉, 이슬람교처럼 돼지고기를 완전히 금기하는 것이 아닌 신앙에서만 금기시함으로써 돼지고기를 신에게 바쳐야 하는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 주고, 대신 집안의 대소사 등 일상생활에서는 돼지고기를 먹도록 허용했다는 것이다.

제주의 '돗고기 부정'에 대한 또 다른 해석도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김진영은 지난 2007년 '제주도 당본풀이에 나타난 '돗고기 부정'의 의미와 기능'이란 논문에서 "돗고기 부정은 제주 여성들의 임신 금기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산후조리기에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등 생리학적인 행위들 외에도 부정 타는 것을 방지하는 특별한 금기들이 있었다. 이것들은 삼신할머니 등 출산이나 산모, 아기와 가족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신들의 분노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제주 산욕기(産褥期) 여성은 인터뷰 결과 '(돼지가) 아무거나 먹는 짐승이므로'라는 이유를 제시한다. 이것은 변소에서 자라며 변과 음식찌거기 등 아무거나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자라는 돼지의 습성이 산모와 태아에게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기술했다.

제주의 돗통시 제주의 돗통시

[제주학연구센터 제공, 강만보 사진작가 촬영. 재판매 및 DB 금지]

돗통시에서 돼지가 인분을 먹고, 체내의 열을 식히기 위해 몸에 분변을 묻히는 습성을 본 사람들이 '돼지는 부정한 동물'이라는 인식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외에도 문무병 박사는 저서 '미여지 벵뒤에 서서_문무병의 제주 신화 이야기3'을 통해 색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그는 "돼지고기를 먹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욕망. 식욕, 생식욕, 성욕 등이 어떻게 극복되는가를 보여주는 '육식 금기의 파기' 모티프"라고 말하면서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중략) 배설의 카타르시스를 이뤄내는 생식의 욕구, 성욕으로 확대된다"고 설명했다.

하순애 박사도 저서 '제주도 신당 이야기'를 통해 돼지고기에 대한 욕망을 성욕과 연결해 사회 통념상 해서는 안 될 관계 맺음에 대한 '부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하 박사는 책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것 혹은 그와 유사한 어떤 행위를 성교의 상징으로 본다면 결혼 관계 밖의 성교는 대개의 문화권에서는 도덕적으로 권장할 일이 못 된다. 그래서 '돗고기'에 '부정'이라는 말을 연결하는 것쯤에는 굳이 이의를 달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돗고기 부정'이 할망신에게 주로 적용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며 "여성들에게만 적용하던 칠거지악의 유가적 명분이 작용했고, (중략) 이는 분명히 이데올로기적 감염의 증상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들 외에도 많은 연구자가 논문과 서적을 통해 제주에서 나타나는 '돗고기 부정'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모두가 일리 있는 주장과 해석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주 사회에서 돼지가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기에 이러한 이야기와 풍속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라는 점이다.

돗통시 돗통시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故) 이기욱 제주대 교수는 인류학총서 '제주농촌경제의 변화'에서 돼지를 키우는 공간인 제주의 돗통시에 대해 '인분을 처리하는 뒷간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음식물쓰레기와 생활하수를 처리하는 하수종말처리장이요, 당시의 주곡을 재배하기 위한 돗거름을 생산하는 유기질비료공장이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노부모의 장례식과 혼기를 앞둔 자식의 혼사에 사용될 돼지고기를 제공하는 돼지사육장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길러지는 돼지는 각종 의례 준비를 위한 상비적인 재산 역할을 했다. 급할 때는 팔아서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돼지저금통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매우 적절한 비유다.

신앙은 인간의 문화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 역시 서양과 동양 지역에 상관없이 인간의 삶을 반영하곤 한다.

제주에서 보이는 독특한 문화 현상들은 오랜 세월 삶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조상들의 경험과 지혜가 녹아든 산물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다양한 상상력과 과학적 검증을 통해 문화적 현상의 이유를 추론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어느 의견이 '맞다', '틀리다'를 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성역 없는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다.

[※ 이 기사는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진성기), '제주농촌경제의 변화'(이기욱), '미여지 벵뒤에 서서_문무병의 제주 신화 이야기3'(문무병), '제주도 신당 이야기'(하순애), '돼지를 통해 본 제주도 당신의 식성 갈등'(강권용), '제주도 당본풀이에 나타난 돗고기 부정의 의미와 기능'(김진영) 등 책자와 논문을 참고해 제주 돼지문화를 소개한 것입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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