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재미 좋은 고급 고성능차에 있어 보다 명확해지는 전기차의 한계를 브랜드들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여기 초대한 두 모델이 보기 좋은 예를 제시한다. 포르쉐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는 많은 이들이 일상용 슈퍼카로 인정하는 포르쉐 전기차다.
아우디 RS e-트론 GT는 누가 봐도 아우디의 최신 모델이다. 넓고 낮은 자세, 화려한 조명의 현란한 세리머니, 쿠페처럼 유려하게 떨어지는 지붕선과 타고 내리기 크게 불편 없는 뒷문, 막혔지만 아우디의 상징인 커다란 육각형 그릴과 휠 하우스에 빼곡하게 들어간 21인치의 화려한 휠 등 아우디 특유의 트렌디하고 섬세한 디자인이 곳곳에 반짝인다.
두 모델은 독일 고급 브랜드의 정점에 선 전기차다. 이름 앞뒤에 터보와 RS를 붙이고 600마력 전후의 출력과 80kg·m가 넘는 토크로 엔진차가 넘보기 힘든 출력을 가뿐하게 쏟아낸다. 뿐만 아니라 어른 넷이 편안하고 우아하게 장거리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실내를 품었다. 이들의 성격은 이름 속 크로스 투리스모와 GT에서부터 드러난다.
폭스바겐 그룹이라는 가문 안에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아우디와 포르쉐. 언뜻 우애 좋고 편하기만 한 관계일 것 같지만 둘 사이는 남보다 더한 치열한 경쟁자이기도 하다. 그룹 입장에서 많은 부분 공유하며 규모의 경제를 꾀하지만 브랜드들은 각자의 색과 콘셉트를 공고히 하며 경쟁력 있는 모델로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두 모델을 한꺼번에 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전기차이기 전에 두 모델은 모두 훌륭한 차였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새로운 전기차 출시가 부쩍 늘어났는데 오늘 만난 두 모델은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실감케 해준 훌륭한 고성능 전기차였다. 그리고 두 모델은 J1 플랫폼이라는 같은 DNA를 공유한다.
아우디 RS e-트론 GT는 그 이름과 명료한 디자인에서 느낄 수 있듯 아우디 고성능 전기차의 최고봉이다. 출발하자마자 느낄 수 있는 주행 감각의 첫인상은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견고한 뒤 서스펜션 감각이다. 2.35톤의 하중과 84.7kg·m의 엄청난 토크가 차체를 뒤흔들 때 이 든든한 뒤 서스펜션을 바탕으로 조종 성능을 완성한다.
이에 비해 조향 감각이나 앞바퀴 둘레의 조종 감각은 예리함보다는 일관성 중심으로 튜닝했다. 앞 서스펜션이 뒤에 비해 부드럽기 때문이다. 또한 뒤 서스펜션이 단단한 덕에 뒤 차축의 롤 축 강성이 높아져 코너링 시 언더스티어를 줄이는 특성을 갖는다.
실제로 고속 코너를 꾸준히 가속하며 탈출해도 언더스티어는 거의 늘어나지 않는다. 다만 단단한-그리고 차의 조종 축이 되는-뒤 서스펜션이 코너링 도중 요철을 밟으면 차의 조종 안정성이 흐트러지는 경우를 간혹 겪기도 했다. 단단하면서도 불규칙한 노면의 요철을 흡수할 수 있는 섬세한 질감이 아쉬운 장면이다. RS e-트론 GT처럼 무거운 차일수록 안정성이 흐트러질 때 당황스러움은 더 커진다.
유턴 시 회전 반경이 참 짧다. 게다가 아주 매끈하고 안정적으로 돌아나간다. 록투록 2.5바퀴의 평범한 스티어링 기어비와 버스 타이어만큼 폭이 넓은 타이어를 감안하면 앞바퀴 접지력이 얼마나 확실하고 안정적인지를 알 수 있다. 부드러운 앞 서스펜션의 또 다른 혜택이다.
슬라럼 시 든든한 뒤 서스펜션이 앞 타이어의 부담을 얼마나 덜어주는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앞 서스펜션은 좌우 롤을 어느 정도 허용하면서 앞 타이어의 하중이 과도하게 변하지 않도록 좌우 하중 이동의 충격을 잘 토닥인다. 우악스럽지 않고 아주 세련된, 그러면서 예측 가능성이 매우 높고 세련된 선회 감각이다. 회피 기동에서도 수준 높은 핸들링은 여전하다. 운전자의 의도와 적절하게 보조를 맞추는 선회 감각도 일품이다.
포르쉐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는 타이칸에 비해 살짝 높은 크로스오버 모델. 그러나 실제로 RS e-트론 GT와의 높이 차이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실내 헤드룸은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가 앞좌석은 3cm가량, 뒷좌석은 루프 형상 덕택에 거의 8cm나 여유가 있다. 희한하다.
서스펜션 설정도 완전히 다르다. 전반적으로 아우디보다 부드러운데 앞 서스펜션이 뒤보다 더 단단하다. 고속주행 안정성을 위한 GT의 설정일까? 그렇다고 코너링 감각을 무디게 만들 포르쉐가 아니지 않나. 그리고 실제로 코너링 감각이 더 예리했다. 앞바퀴가 코너를 예리하게 파고들고 그 칼날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코너를 가르고 나온다는 감각이 있었다. 부드러운 밸런스 중심의 아우디와 판이하게 다르다. 코너링에서 앞바퀴 역할이 크고 훨씬 적극적인 설정이다.
하지만 뒤 서스펜션이 부드러워 발생하는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다. 급가속 시 뒤 서스펜션이 주저앉으면서 앞바퀴의 하중이 빠졌다. 그러면서 접지력이 약해지고 앞바퀴에 휠스핀이 발생한다. 코너를 탈출하며 가속하면 바깥쪽 뒷바퀴로 하중이 몰리면서 안쪽 앞바퀴가 미세하게 접지력이 흐트러지고 바깥쪽 앞바퀴가 약간씩 코너 안쪽으로 파고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런데도 뒷바퀴가 접지력을 잃거나 움직임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재미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드라이브 모드를 변경하는 순간, 나와 옆자리 김우성 주간의 입에서 작게 욕지거리가 새어나왔다. ‘우리 지금까지 헛고생한 거야?’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선택하자 약간 말랑했던 뒤 서스펜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더 이상 급가속의 스쿼트 현상도, 코너 탈출 시 하중 쏠림도 없다.
RS e-트론 GT는 자기 무게를 잊지 않고 최대한 안정적으로 제동한다. 든든한 뒤 서스펜션은 제동 시 리프트가 거의 없다. 앞 서스펜션은 적당하게 다이브를 유지하며 앞으로 넘어오는 하중이 앞 타이어에 갑자기 과도한 하중으로 작용하는 것을 방지한다. ABS는 최대 정지 마찰력보다는 약간 안전 마진을 두고 제동한다.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 시승차는 일단 사계절 타이어를 낀 상태였다. 그리고 스포츠 모드 이하에서는 부드러운 앞 서스펜션이 다이브를 좀 더 일으키며 하중 이동이 아우디보다 조금 더 일어났다. 하지만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제동 감각이 훨씬 명료하고 안정적으로 변한다. 그러나 사계절 타이어의 접지력 한계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스포츠 타이어라면 어땠을까.
둘의 발진 가속은 한마디로 대단했다.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흉곽이 압박되며 공기가 새어나오는 신음 소리가 났다. 전기차 발진은 엔진차와는 다른 폭력성이 있다. 두 모델은 거의 같은 페이스로 시속 100km가속에 3.4초대 전후를 기록했다. 기술 자료에 의하면 두 모델은 급가속 시 1단 기어로 출발해 대략 시속 70~80km에서 2단으로 바뀐다. 소리는 약간 느낄 수 있었지만 변속 충격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ZF의 2단 변속기는 참으로 대단하다.
나윤석
아우디 RS e-트론 GT의 운전석은 시각적으로 화려하다. 직선과 각, 카본과 디지털 디스플레이 등으로 대단히 미래적이면서도 기계적인 분위기를 직설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스티어링 휠도 카본처럼 보이는 패턴이 또렷한 림 부분과 하이글로시 면, 크롬 라인으로 각이 잡힌 스포크와 스위치 등으로 첨단의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나 시트 감각은 퀼팅 표면이 적당한 쿠션으로 작용해 너무 단단하지 않아서 좋다. 스티어링 휠도 생긴 것과 달리 말랑말랑하고 가볍게 돌아 시각적인 과장보다 실제는 더 다루기 쉬웠다.
이에 비해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 운전석은 좀 더 간결하고 차분하다.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실내 디자인의 시각적 자극을 최소화한 느낌이다. 화려하지 않고 진지한 스포츠카 느낌이다. 하지만 아우디보다 더 많이 사용된 하이글로시 블랙, 비스듬히 누운 센터페시아 하단의 공조 제어 디스플레이의 햇빛 반사가 거슬린다. 그리고 송풍구 방향을 터치스크린으로 조절하는 방식은 제발 포기하길 바란다.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는 짱짱하다. 운전석 도어의 닫히는 소리, 손에 잡히는 스티어링 휠 감촉, 그리고 돌리는 무게감까지 훨씬 묵직하고 단단하게 느껴진다. 감각적으로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는 이름과 달리 더 스포티하다. 게다가 퀼팅이 없고 스포티하게 생긴 시트 역시 단단하다. 역시 스포츠카의 감촉과 정공법이다.
나윤석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는 포르쉐 엠블럼에 걸맞은 고성능과 압도적 밸런스에 공간까지 욕심낸 버전이다. 20년 전 포르쉐가 두 눈 질끈 감고 SUV를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전기차 크로스오버의 등장은 어려웠을 것이다.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의 실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공간이다. 2열 공간은 이 차가 포르쉐 전기차임을 잊게 한다. 대시보드와 1열 구성은 타이칸과 다를 바 없다. 메르세데스-벤츠 등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사용하는 버메스터 사운드 시스템을 갖춰 풍요롭고 근사한 음향을 들려준다.
2열 공간은 훌륭하다. 머리 공간과 무릎 공간은 넉넉한데, 1열 시트 아래로 발을 집어넣을 수 없는 게 다소 아쉽다. 2열에서도 공조장치를 모두 조작할 수 있다. 투리스모라는 명칭에 걸맞은 최대 1212ℓ의 트렁크 용량에서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하는 포르쉐의 욕심을 읽을 수 있다.
아우디 RS e-트론 GT의 이름 안에는 아우디가 가장 공들이는 요소가 잔뜩 들어 있다. e-트론이라는 전기차 명칭이 그렇고, GT라는 성격이 그러하며, 그 앞에 붙인 RS의 뉘앙스가 또 그렇다. 이들을 조합하면 이 차의 성격이 어떨지, 이 차의 지향점이 뭔지 짐작할 수 있다.
고급스러운 연출에 대한 아우디의 경험과 감각, 미래를 향해 성큼 내딛는 포르쉐의 자신감이 각각의 실내에서 빛을 발한다. 퍼포먼스를 선호하는 운전자에게는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 동승자와 함께 다양한 주행 경험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RS e-트론 GT의 실내가 조금 더 편할 듯하다. 물론, 그 차이는 지극히 작다.
김우성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고 전기차 시대의 서막이 열리는 지금. 예전부터 차 좋아하던 마니아들의 시름도 깊어졌다. 제아무리 잘 만들고 빠른 전기차여도 달리는 전자제품이 내연기관차의 감성과 자극, 흥분을 주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다가올 미래와 전기차를 두고 더 이상 낙담하지 않아도 좋다. 적어도 오늘 만난 두 모델을 보면 고성능 전기차가 만들 유쾌하고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전기차의 태생적 한계인 육중한 무게와 1회 충전 주행거리 등 당면한 해결 과제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둘은 이 문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풀고 각자 추구하는 콘셉트와 방향성을 전기차로 어떻게 보여주고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두 모델은고급 전기차의 현재와 미래를 훌륭하게 대변했다.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완성도와 상품성을 기본에 두고 각자의 색을 명확히 보여준다.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는 뒷공간 실용성을 강조한 모델 답게 편안하고 안락하다. 물론 든든하고 단단하고 묵직한 스포츠카 질감 안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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