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크게 관심 없는 팬들도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별명의 주인공은, 이승엽(46)이다.
일간스포츠는 KBO리그 출범 40주년을 맞아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를 선정하고 있다. 2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세대별 야구인 10명씩 총 40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이승엽을 올스타 1루수로 선택한 이는 무려 37명이다. 이승엽은 이번 투표에서 야수 전체 득표율 1위(92.5%)를 차지했다. 이승엽이 '최고의 1루수'라는 평가에는 이견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이승엽은 어릴 적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아버지 이춘광씨가 "생일 선물로 갖고 싶은 게 뭐냐"고 묻자 이승엽은 "동네 형들이랑 야구 하고 싶다. 방망이와 글러브를 사달라"고 했다. 이승엽은 집 안이든 앞마당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늘 혼자 공을 던지며 놀았다. 동네 유리창을 자주 깨트려 변상하곤 했다. 이승엽도 "공부보다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며 웃었다.
우연히 야구에 입문했다. 동덕초등학교에 다닐 때 대구 지역 멀리 던지기 대회에서 입상했다. 이를 눈여겨본 중앙초등학교 신용승 선생이 야구 입문을 권유했다. 이승엽은 정규 수업을 마치면 집에 책가방만 던져 놓고 중앙초등학교로 달려갔다. 공을 던지고, 배트를 휘두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막내아들의 운동을 반대했다. '꼬마 이승엽'은 물러서지 않고 단식 투쟁까지 했다. 결국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다. "포기하지 않고 야구만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한 뒤였다.
그의 야구 인생은 1995년 삼성 라이온즈 입단 후 바뀌었다. 투수로 계약했으나, 입단 기자회견 뒤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구단의 권유에 따라 타자로 전향했다. 이승엽은 어릴 적부터 '왼손 박철순'을 꿈꿨고, "타자는 취미"라고 여겼다. "과연 내가 타자로 잘 될 수 있을까" "1년만 시한부로 해볼까" 하는 마음마저 내심 품고 있었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8년(2004~2011년)이나 뛰었음에도 KBO리그 각종 최다 기록을 갖고 있다. 최다 홈런(467개), 타점(1498개), 득점(1355개), 루타(4077개), 2루타(464개)를 기록했다. 이 외에도 '최연소' '최고령' '최소 경기' 등등 수식어가 줄 잇는다. 한·일 통산 홈런은 무려 626개(일본 159개)에 이른다.
이승엽의 KBO리그 통산 성적은 1906경기 타율 0.302(2156안타). 홈런왕과 MVP(최우수선수)를 5회씩 수상했다. 골든글러브는 역대 최다인 10회 수상했다.
이승엽의 활약은 태극마크를 달고 있을 때 더욱 돋보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3·4위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전 등 '숙적' 일본을 만나 결정적인 홈런과 적시타를 터뜨렸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 8회 역전 결승 2점 홈런을 때려내며 그동안의 부진과 부담을 떨쳐낸 뒤 눈물을 쏟은 장면은 여전히 회자하고 있다. 한국 야구에 '8회의 기적'이라는 단어를 선물하며, 역전 드라마를 썼다. SSG 최지훈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베이징 올림픽 영웅으로 기억한다. 누구나 떠올리는 '레전드'"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1루는 전 포지션을 통틀어 강타자가 가장 많이 포진해 있다. 그 가운데 이승엽은 '독보적'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항상 최고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는 '더 잘하고 싶다'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했다.
양상문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이승엽밖에 없다. 이대호도 있지만, 이승엽이 단연 역대 최고 1루수"라고 했다. 김경기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1루수는 경쟁자가 많은 포지션인데 그 정도 업적을 낸다는 게 압도적"이라고 했다. 이승엽과 마찬가지로 1루수 출신의 동갑내기 이호준 LG 타격코치는 "명실상부한 넘버원 타자"라고 인정했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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