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의, 황정민에 의한, 황정민을 위한 연극

황정민의, 황정민에 의한, 황정민을 위한 연극

이데일리 2022-01-18 05:30:00 신고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세상을 속일 명연기로도 내가 저 왕관을 가질 수 없다면, 그때는 조금 더 악해지면 되겠지.”

구부정한 허리를 하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무대에 등장한 배우 황정민이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광기에 사로잡힌 듯 웃는다. 스크린에서 천의 얼굴을 보여주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지만, 무대에서 만나는 그의 연기는 더없이 생생하다. 관객은 공연 시작과 동시에 황정민의 연기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연극 ‘리차드 3세’의 한 장면(사진=샘컴퍼니)
황정민의, 황정민에 의한, 황정민을 위한 연극.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리차드 3세’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이 원작으로 2018년 황정민이 10년 만의 연극 복귀작으로 선택해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당시 98%의 객석점유율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작품은 15세기 영국의 왕이었던 리차드 3세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리차드 3세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 형들에게 누명과 음모를 씌우고, 조카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피의 군주’다. 굽은 등에 절름발이로 겉모습은 볼품 없지만, 권력을 향한 욕망만큼은 누구보다 강한 악인 중의 악인이다.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작품 중 동정하기 힘든 악인을 전면에 내세운 몇 안 되는 작품이다.

초연과 마찬가지로 이번 공연에서도 황정민은 리차드 3세에 완벽하게 몰입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굽은 등을 표현하기 위한 특수분장을 착용했지만, 그럼에도 100분간 허리를 숙인 채 한 발을 절며 넓은 무대를 오가는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가 알고 있던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금세 사라진다. 시적이면서 어려운 대사도 정확한 발음으로 소화하는 그의 모습은 스크린에서와는 사뭇 다르다.

무대 구성 또한 배우의 연기를 오롯이 집중하게 만든다. 여느 공연장보다 무대 뒤편이 깊은 CJ토월극장의 특성을 잘 살려 광활한 무대 위 배우가 눈에 띄게 만든 연출이 돋보인다. 무대 뒤에 설치한 스크린에서는 극중 인물이 비극적 사건을 맞을 때마다 이를 표현하는 영상을 삽입해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 극 전개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연극 ‘리차드 3세’의 한 장면(사진=샘컴퍼니)
공연 내내 황정민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장영남, 윤서현, 정은혜, 임강희 등 실력파 배우들도 황정민과 함께 ‘원 캐스트’(한 배역을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것)로 무대에 올라 공연을 탄탄하게 이끈다. 특히 장영남은 리차드 3세의 형수이자 피로 얼룩진 권력 쟁탈전에서 리차드 3세와 경쟁구도를 이루는 엘리자베스 왕비 역으로 강렬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소리꾼 출신 배우 정은혜는 미치광이가 된 마가렛 왕비 역으로 극에 음산한 분위기를 더한다.

‘리차드 3세’의 백미는 커튼콜이다. 열연을 펼친 배우들이 차례대로 등장해 인사를 하고 양옆에 늘어서면 무대 뒤편에서 황정민, 아니 리차드 3세가 달려나온다. 마침내 그가 굽은 등을 펴고 인사를 하는 순간 비로소 황정민이 리차드 3세를 연기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황정민의 생생한 연기를 무대에서 만끽하고 싶다면 놓쳐선 안 될 기회다. 공연은 오는 2월 13일까지.

연극 ‘리차드 3세’의 한 장면(사진=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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