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유랑·귀환… 유대인 역사는 허구”

“2000년 유랑·귀환… 유대인 역사는 허구”

세계일보 2022-01-15 02:00:00

이스라엘의 건국 선포 직후 팔레스타인인 70만명 이상을 고향에서 몰아낸 ‘나크바(대재앙)의 날‘인 5월15일 시위를 벌이는 팔레스타인 시위대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만들어진 유대인/슐로모 산드/김승완 옮김/사월의책/3만4000원

영국군의 철군이 이뤄진 다음날인 1948년 5월14일 오후,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 텔아비브 로스차일드가의 텔아비브예술박물관 회의실에서 앞머리뿐 아니라 속알머리까지 빠진 다비드 벤구리온이 왼손으로 종이를 들고 서 있었다. 목소리를 한번 가다듬은 그는 곧이어 이스라엘 정부 수립을 선언하는 이른바 ‘이스라엘 국가선언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 이스라엘 땅은 유대 민중이 태어난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들의 영적, 종교적, 정치적 정체성이 형성됐다. 이곳에서 우리들은 처음으로 국가를 가졌고, 민족이고 보편적인 의미의 문화적 가치를 창조하였으며, 영원한 책 중의 책을 이 세상에 전하였다.”

열렬한 시온주의자이자 자신의 집에서 정기적으로 성서모임을 가졌던 벤구리온이 시오니즘 주창자 테오도르 헤르츨의 초상화가 내려다보는 가운데 세계를 향해 낭독한 이스라엘 국가선언문에는 구약성경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유대 민족의 ‘위대한’ 서사가 담겨 있었다.

“… 자기 땅에서 강제로 추방된 이후에도 유대 민중은 디아스포라 시절 내내 신앙을 지켰고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기도와 희망을 멈추지 않았다. 그곳으로 돌아가 정치적 자유를 회복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스라엘 국가선언문과 하인리히 그레츠를 비롯한 시오니즘 역사학에서 표출되는 이런 이스라엘 건국 서사 혹은 유대 민족 서사의 핵심은 ‘2천년의 유랑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옛 고향땅을 되찾은 뛰어난 민족’이라는 것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떠돌이 유목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해(출애굽), 신이 약속한 가나안 땅에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고,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제국의 침공을 받아 포로가 된다(바빌론 유수). 바빌론에서 풀려난 이들은 다시 예루살렘을 건설하지만, 로마의 지배 아래 고향 땅을 빼앗기고 뿔뿔이 추방된다. 이후 2천년 동안 디아스포라로 세상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수많은 핍박에서도 근대까지 정체성을 지키며 살다가 마침내 신이 약속한 땅에 다시 모여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한다.”

슐로모 산드/김승완 옮김/사월의책/3만4000원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교수인 슐로모 산드는 최근 국내에 출간된 책 ‘만들어진 유대인’에서 이 같은 유대 민족 서사는 실체와 다른, 과장된 허구라고 비판하면서 이스라엘 건국 서사의 해체를 시도한다. 저자는 민족주의 열기가 들끓던 19세기 유럽에서 민족 개념이 ‘발명’되고 시오니즘이라는 유대 민족주의가 형성된 과정을 추적하면서 유대인 서사의 허구를 하나씩 규명하고 폭로한다.

책에 따르면, 먼저 위대한 문화 중심지에서 혈통을 찾으려는 그레츠 등의 유대인 역사가들에 의해 구약성서 ‘출애굽기’ 등의 중심 서사가 그대로 유대인 역사로 차용되면서 이집트에서 탈출해온 사람들이라는 스토리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한다. 즉 히브리 노예들이 모세의 영도와 신의 힘에 의지해 이집트를 탈출했다는 출애굽기를 유대인의 역사로 자리매김시켜 놨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출애굽이 있었다고 하는 기원전 13세기에 가나안은 여전히 강력했던 파라오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꼼꼼하게 기록을 남긴 이집트의 어떤 기록에서도 ‘이스라엘의 자식’들이 이집트에 살았다거나 대항해 봉기했다거나 이집트로부터 이주해 나갔다고 하는 기록 자체가 없었다며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성서에 나오는 시나이산의 위치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고, 이스라엘인들이 진격 나팔을 불며 함락시켰다는 예리코나 아이, 헤스본 등은 기원전 13세기 말엔 성곽도 없는 작은 마을이거나 사람들이 살지 않던 곳이었다고 비판한다.

장구한 유대인 서사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다윗과 솔로몬왕이 통치하는 유대 왕국 부문 역시 진실성에서 의심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예루살렘 어느 곳을 발굴하더라도 다윗과 솔로몬의 시기로 추정되는 기원전 10세기의 왕국이 존재했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등 거대한 통일 왕국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대인 역사가들은 유대 민족이 기원전 6세기 유다 왕국이 멸망된 뒤 바빌론에 유수됐고 서기 70년에는 로마인들에 의해 강제로 추방됐다며 유대인들과 추방과 유랑 이미지를 극적으로 결합시킨 것도 지적됐다.

저자는 바빌론 유수는 유대인 전체가 아닌 엘리트 지배층 일부에 한한 것이었고, 서기 70년 로마인들에 의해 이뤄졌다고 하는 강제추방 역시 실제로 없는 사실이었다고 주장한다. 로마인들의 경우 근동에서 반항적인 피지배 주민들을 억누를 때는 무자비하게 죽였고 왕과 왕자들은 유배시켰지만, 정복지 주민 전체를 강제 추방한 일은 결코 없었다. 결국 ‘유대인의 유배’라는 것은 유대인 역사가들에 의해 관념으로만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에 무수히 퍼져 있는 유대인들의 존재는 무엇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 일신교를 앞장서 채택한 히브리인들의 신앙체계가 지중해 세계에 파고든 측면이 있고, 특히 유대교 왕국들이 개종 정책을 적극적으로 취한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그는 반대로 이스라엘 건국 이전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이들은 7세기 아랍인들이 이 땅을 점령한 이후 개종한 유대 농민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로부터 그토록 핍박당하는 팔레스타인인의 뿌리가 사실은 유대인에 가깝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저자는 결국 ‘죄로 인한 추방’ ‘성지로의 귀환’이라는 이념화하고 전도된 유대인 서사가 자신들의 고향에 이미 정착해 살던 이들을 상대로 한 전쟁과 정복을, 이스라엘의 폭력적 패권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다며 ‘만들어진 유대인’ 서사를 비판한다.

“진실에 눈을 감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하지만 한때 풍부한 상상력의 도움으로 이스라엘 사회를 창조하게 한 역사적 신화는 이제 이 사회의 붕괴 가능성을 높이는 강력한 힘이 되고 있다.”(5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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