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불빛의 온기 #엘르보이스

비현실적인 불빛의 온기 #엘르보이스

엘르 2021-12-08 00:00:01 신고


비현실적인 불빛의 온기

따뜻한 불빛 아래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를 묻는 다정한 인사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다가온 코로나19 시대의 두 번째 연말이지만. 거리 풍경은 인간의 센티멘털리즘을 고려하지 않는다. 바람의 온도는 매일 달라지고, 피었던 것이 바래지며 저물고 떨어진다.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한결같다는 걸 연말이 돼서야 새삼 느낀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연말을 맞은 대부분의 인간들은 습관처럼 들른 스타벅스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캐럴을 들은 후에야 실감하고 만다. “아니 한 해가 끝나버렸잖아?”

고맙게도 2021년에는 공연을 조금은 할 수 있었다. 신년 목표로 세웠던 질 좋은 수면을 위한 노력과 식사를 건강하게 하고 운동을 챙겨 하는 것도 서서히 일상으로 들어와 지금의 나를 지켜주는 얇은 버릇이 됐다. 아마도 예전처럼 활발히 공연하고 친구들과 밤늦도록 떠들썩하게 놀았다면 결코 가질 수 없었을 내 모습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울한 상황을 살아간다고 해도 100% 불행이란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스스로의 불행에게만 너그럽자고 다짐한다. 한 해 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을 기억해 낸다. 그렇게 또 한 겹의 나이를 먹을 준비를 한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옷을 껴입는 것처럼.

바야흐로 ‘위드 코로나’의 시작으로 1년 반 만에 가게들이 자정 이후로 영업하기 시작했다. 어색하고 무서운 기분마저 들지만, 그동안 갈 곳을 잃었던 영혼들은 철새처럼 하나둘 술집으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을지로에 모였다.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만났지만 10시 이후까지 가게에 머물 수 있다는 소식에 천천히 술을 시키고 마시기로 했다. 그동안 바빴지, 하며 서로 근황을 주고받으며 깊은 곳으로 간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을까.” “그러게, 사월은 왜 음악 하는 것 같아.” “그러게, 우리는 왜 이걸 하고 있을까.” 나는 음악가이고 친구 둘은 배우였다.

친구 1은 말했다. 연기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다른 일도 좋아하는 게 많아. 그런데도 굳이 왜 이 일을 하고 싶냐면 연기는 하면 할수록 나를 알아가는 것 같아서. 그게 좋아. 사람들은 모두 다르지만, 어딘가 비슷한 부분이 있잖아. 내가 나를 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더 진심으로 사랑을 나눠줄 수 있지 않을까. 그건 배우를 하며 겪은 어려움을 상쇄해 줘. 참 고마운 일인 것 같아.

나는 말했다. 나는 외로워서 음악을 하는 것 같아. 너무 외로우니까 세상 속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 거야. 내 이야기로 음악을 만들고 부르면서 이곳저곳에 들리게 하면 어딘가에 있을 나 같은 사람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 사람이 팬일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 우리는 세상을 살며 엄격한 평가를 받고 때론 폭력적인 비난도 받지만, 그 안에서 위로해 주고 서로 편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그게 나에겐 친구고 팬인 것 같아.

친구 2는 말했다. 연기를 처음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아. 내가 이걸 왜 하고 싶을까.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더라고. 그때 고민하다 정리해 둔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어. 나는 사랑받고 싶어서 연기해. 사랑받고 싶고, 그만큼 다른 사람도 사랑해 주고 싶어.

그러네, 나도 그런 것 같아.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서 이걸 하고 있구나, 하며 잔을 부딪쳤다. 어쩌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사랑받고 싶어서 일하는 거 아닐까. 사랑받고 싶다는 말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사랑받고 싶어서 너에게 좋은 사람이 돼주고 너도 나에게 그런 거라면 정말 좋을 것 같아. 참 단순하고 좋을 것 같아. 나는 생각했다.

다른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다. 말하고 나누고 나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지. 실제로 뛰고 있는 심장을 감싸고 있는 뼈와 피부로 이뤄진 너와 가까이서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것. 그런 우리는 모여 서로를 사랑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정이 넘어도 밝은 거리가 새삼 비현실적이다. 고작 몇 년 전까지 우리가 이런 걸 누려왔다고? 버텨오던 가게에 11월이 되자 손님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한다는, 고맙다는 사장님의 트윗 같은 것을 보며 뜬금없이 눈물이 날 것 같다. 작은 따뜻함에도 눈물 날 것 같은 외롭고도 사랑이 고픈 대부분의 인간들이 또다시 연말을 맞았다.

김사월 메모 같으면서도 시적인 노랫말을 쓰는 싱어송라이터. 2020년 에세이 〈사랑하는 미움들〉을 썼고, 석 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에디터 이마루 디자인 이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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