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쉬 토크...스포츠에선 말싸움도 실력일까?

트래쉬 토크...스포츠에선 말싸움도 실력일까?

리드맘 2021-11-29 16:26:59 신고

스포츠는 우리에게 좋은 친구이고 문화이며, 전 생애에 거쳐 행해지는 평생교육과 같습니다.

그런데 스포츠의 교육적 가치는 모든 면에서 높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스포츠의 속성에는 ‘경쟁’이 핵심이라 이기기 위해 벼라 별짓을 다 하기 때문입니다. 그 벼라 별짓을 못 하도록 공정한 규칙과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는 부정적 가치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기기 위해 불법 약물을 복용하거나 승부조작을 하고 상대에게 끔찍한 부상을 입히기도 합니다. 한국의 경우 선후배 상하관계가 엄격해서 후배들을 때리고 괴롭히는 문제로 끙끙 앓았던 것이 최근의 일이기도 하죠. 

ⓒ픽사베이
ⓒ픽사베이

이외에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선수들이 경쟁하며 내뱉는 말, 바로 ‘말싸움’입니다. ‘트래쉬 토크’라고 하지요. 다만 이 말싸움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끔은 재밌고 스포츠의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말싸움을 스포츠의 재밋거리로 여긴다는 것인데, 원래 싸움 구경이 재밌다고 하잖아요(^^;). 

스포츠에서 말싸움은 그냥 가십거리로 넘길 수도 있고, 팬과 팬들이 충돌할 만큼 엄청난 파급력이 있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선수들이 경쟁하며 하는 ‘트래쉬 토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트래쉬 토크로 전해지는 아주 유명한 여러 장면과 소소한 말싸움 몇 개를 소개하며, 스포츠 트래쉬 토크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아봅니다. 

단순한 스포츠의 재밋거리로 즐겨주시고, ‘내 아이도 스포츠에 참여하며 말싸움을 꽤 하고 있겠구나!’ 정도로 여겨주시면 되겠습니다. 


"공부나 하지 뭐 하러 왔노!"

첫 에피소드는 제가 겪은 일입니다. 축구선수로 활동하던 저는 중3 때 그만뒀다가 고1 때 아주 잠깐 선수로 복귀한 적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어떤 선수가 경기 때 만나 말싸움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포지션 상 저는 그 친구를 계속 막아야 했기에 경기 내내 그 친구는 거친 말싸움으로 저의 멘탈을 건드렸습니다.

“엄마 쭈쭈나 먹지 뭣 하러 왔어!”, “공부나 해라. 왜기 왜 왔노?”, “똥 싸고 올 테니까 그동안 한 골 넣어보던가?” 등 듣기 거북한 말로 싸움을 것이죠. 25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까지 생생하게 그 친구의 말이 멤돌정도의 기억이면....저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감히 내 누이를 모욕해!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기억되는 ‘지네딘 지단’은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에서 결승에 올라 이탈리아와 경기를 하게 됩니다. 전후반을 무승부로 마치고 연장 후반전이 시작된 지 얼마 후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테라치’라는 선수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져 있었는데, 주심은 대기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 후 지단에게 레드카드를 줬습니다. 지단이 마테라치의 가슴을 박치기로 공격했기 때문이죠. 

이 사건은 말싸움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지단을 마크하며 유니폼을 잡은 마테라치에게 지단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유니폼 갖고 싶어? 경기 끝나고 줄게..”, 

마테라치는 이렇게 되받아칩니다. 

‘너의 유니폼을 갖느니 너의 누이를 가지겠다(I would prefer your whore of a sister)’

지단은 자신의 누이를 윤락녀로 조롱하는 매우 모욕적인 말을 들었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채 폭력을 행사한 것이죠. 결국 월드컵 우승컵은 마테라치의 소속팀 이탈리아가 들어 올리게 됩니다. 참았더라면 우승컵의 주인이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죠.

 

오해를 부른 주먹 파이브
 
코로나19로 인해 ‘하이 파이브’가 잠재적으로 금지되자 ‘주먹 파이브’나 ‘엘보 파이브’로 인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일반상황에서도 많이 쓰이는 코로나 시대 인사법이죠.

얼마 전 유소년 축구경기장에서 큰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이긴 A 선수는 상대팀 B 선수에게 주먹 하이 파이브를 내밀었는데...

B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랑 장난하냐?”

A 선수는 이렇게 되받아칩니다. “뭐야 이 쪼잔한 놈아.”

순간 욱을 참지 못한 B 선수는 A 선수를 가격했고, 큰 싸움으로 번질 뻔한 사건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싸움은 주먹 하이 파이브를 주먹 감자로 오해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스포츠 트래쉬 토크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도 하기에 오해하기 충분한 것이었죠.


조세 무리뉴의 ‘말 말 말’

지난 시즌 손흥민의 감독이기도 했던 ‘조세 무리뉴’는 트래쉬 토크의 달인입니다. 그는 말로 상대의 기분을 건드리거나 심리전을 걸어 흔들리게 하는 전법을 잘 씁니다. 그의 말싸움 상대로는 아주 유명한 감독들이 있는데,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알렉스 퍼거슨’, ‘아르센 벵커’, 최근 손흥민이 속한 토트넘의 감독이 된 ‘콘테’ 감독 등과 아주 재밌는 썰전을 펼쳤습니다.

퍼거슨은 무리뉴의 입을 단속하기 위해 ‘누가 그의 입에 단추를 달아줘’라고 얘기한 적이 있을 정도로 무리뉴의 입은 거칠기로 유명합니다.

무리뉴는 자신의 팀을 시원하게 이기고 기뻐하는 콘테에게 다가가 ‘야!~ 4:0으로 이기면서도 골을 넣고 그렇게 신나면? 좋냐?’라고 대놓고 말싸움을 합니다. 골 넣고 좋아하는 것까지 시비를 걸 정도로 무리뉴는 자신의 입단속을 잘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무리뉴는 아스널의 벵거 감독에게 “벵거는 관음증 환자 같다”라고 한 적이 있고, 경기 중 상대 감독에게 제스처나 말로 싸움을 거는 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다만 트래쉬 토크에도 능하지만 명언 제조기라 불릴 만큼 많은 명언을 쏟아내기로도 유명합니다.


 


트래쉬 토크도 경기의 일부


트래쉬 토크가 유독 많은 종목은 무엇일까요? 격투기에서는 유독 심하게 말싸움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대를 자극하고, 일부러 상대의 약점을 얘기하고, 심리적으로 흔들릴 만한 이야기로 싸움을 거는 것은 경기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선수는 트래쉬 토크를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도 합니다.

이렇게 상대와 가까이서 경기하고, 스킨십이 많이 일어나는 종목, 심판 모르게 말싸움을 걸수 있는 종목들에서 거친 말싸움이 많은 편입니다.

반면 네트를 가운데 두고 하는 경기들은 말싸움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많지는 않은데, 최근 올림픽에서 김연경 선수의 ‘식빵’에 상대팀 선수가 악수를 청하러 온 모습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트래쉬 토크에 담긴 의미

스포츠와 사회는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스포츠를 일반 사회의 축소판이라 부르기도 하는데요.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 사회도 수많은 말싸움과 썰전을 펼치며 살아갑니다. 사람의 생각에 따라 말싸움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전혀 쓸모 없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는데, 트래쉬 토크의 ‘트래쉬’는 ‘쓰레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트래쉬 토크는 말 그대로 ‘쓰레기 토크’인 것이죠. 

스포츠에 참여하고 배우는 아이들도 자연스레 말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반전을 마치고 온 아이가 “선생님, 저 아이가 저에게 계속 욕해요”라고 말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는 입이 없니? 너두 욕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너가 잘하기 때문에 너를 자극하려고 하는 말이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말고 플레이에 집중하자~~”라고 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차를 운전할 때 정말 쓸데없는 욕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이것을 싫어하는 가족들로 인해 안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정말 사고가 날뻔한 상황이 아니면 제 입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지나고 보니 요즘같이 무서운 세상에 그 욕으로 인해 더 큰 싸움으로 번질 위험까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스포츠의 가장 아름다운 미덕은 페어플레이와 존중에서 나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존중의 미덕을 버리면서까지 트래쉬 토크로 상대방 약을 올릴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스포츠 세계와 우리의 사회가 비슷하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쓰레기 같은 쓸데없는 말로 난처한 상황에 부딪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유독 말싸움이 많은 아이로 고민인 부모가 있다면? 아이의 기질상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은지, 혹시 부모중에 그런 분이 있으신 건 아닌지, 그러한 여러 장면을 보여주신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이가 타고난 기질을 존중해주고, 적절한 언어를 교육하는 동시에 잠재적으로 좋은 말을 많이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글 = 강현희(스포츠 교육학 박사)
KBS스포츠예술과학원 교수. ‘스포츠 양육’, ‘경쟁 스포츠 현상 연구’, ‘유소년 스포츠’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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