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 펀딩으로 성전환 수술비까지 마련하는 시대

크라우드 펀딩으로 성전환 수술비까지 마련하는 시대

BBC News 코리아 2021-05-05 10:30:13 신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여성
Getty Images
크라우드 펀딩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생존 통로가 되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 이 '십시일반' 모금 방식은 사회적 공분을 산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기부를 하거나 심지어는 반려동물의 치료비 마련하기 위해서도 쓰여 왔다.

긍정적이거나 창의적인 노력들을 지원하는 모금 운동도 많다.

크라우드 펀딩 웹사이트를 들여다보면 폐쇄 위기에 놓인 생중계 극장이나 음악 공연장을 도와 달라는 부탁부터 데뷔 앨범 녹음을 지원해달라는 요청도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개인들도 등장했다.

"친구들에게 기대어 살고 있습니다"

영국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고펀드미(GoFundMe)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래 임대료와 공과금 해결을 위한 펀딩이 크게 늘었다.

고펀드미는 2020년 '임대료' 키워드가 들어간 모금 운동은 전년보다 60%, '공과금'이 포함된 건 63% 증가했다고 밝혔다.

'테라피 (상담)' 키워드를 포함한 캠페인도 지난 한 해 29%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고펀드미는 해당 기간의 전체 모금 건수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비슷한 추세는 다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도 보인다.

저스트기빙(JustGiving)은 "지난해 3월부터 지난 2월 사이 모금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157%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증가세의 이유를 크라우드 펀딩의 대중화로만 설명하긴 역부족이다.

저스트기빙은 다른 키워드에 비해 '임대료', '테라피', '쫓겨난', '실업자', '수술', '삶이 고달픈' 등의 단어가 들어간 모금 운동이 현저히 늘어난 점에 주목했다.

이들 역시 영업 기밀을 이유로 전체 모금 운동 건수는 밝히지 않았다.

영국 버밍엄 출신인 열여덟 살 청년 사울은 지난해 초 부모님 집에서 쫓겨난 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의 문을 두드렸다. 요리사 일자리도 잃은 상황이었다.

친구 제이콥이 사울을 위해 손수 사이트에 모금 운동 글을 올려줬다.

사울은 "코로나19 봉쇄령이 시작된 이후 갈 곳이 없었다"며 "한 호스텔에서 지내야 했다"고 말했다. 해당 호스텔은 구청 노숙인 담당 직원의 소개로 간 곳이었다.

그는 "청년층 자립을 돕는 단체를 접한 건 처음이었고, 최악의 경험이었다"며 "내게 꼭 맞는 도움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영국 버밍엄 시내 풍경
Getty Images
사울은 버밍엄 시내에서 간신히 몸을 뉘일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구청은 그런 시설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막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었어요. 마약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었죠. 결코 좋은 주거 환경이 아니었어요."

사울은 현재 공동 주택에서 지내고 있다. 그러나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버는 돈이 없으니 계속 밀리는 월세가 제일 골칫거리다.

그렇다고 정부의 도움이 아예 없진 않았다.

"유니버설 크레딧(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긴 해요. 하지만 전 민간 임대 주택 거주자라 정부의 주택 보조 대상이 아니죠."

그는 "모아놓은 돈마저 야금야금 생활비로 쓰고 있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제이콥과 같은 친구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울은 공동 주택에 살아도 주거지가 일정하다는 점 때문에 노숙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부모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만큼 가족과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사울은 이런 이유로 주택 보조금과 추가 유니버설 크레딧을 신청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크라우드 펀딩은 밀린 월세를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었다.

안타깝게도 목표 금액 달성엔 실패했다. 사울은 그래도 친구들이 오프라인에서도 그를 도와주고 있다고 전했다.

버밍엄시 당국과 사울이 묵고 있는 호스텔 측은 해당 시설이 16~25세 시민을 대상으로 운영된다고 밝혔다.

이들 기관은 "젊은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며 "각 요구에 맞는 적합한 도움이 제공된다"고 BBC에 설명했다.

버밍엄시는 실직자가 민간 주택에 사는 경우 유니버설 크레딧을 통해 주택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울의 경우엔 매달 291.13파운드(45만원)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시 당국의 설명이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향하는 성전환자들

크라우드 펀딩 운동의 성공 여부는 운에 달려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해당 캠페인이 얼마나 널리 소셜 미디어에서 공유됐는지 역시 성공을 결정짓는 요소다.

스물다섯 살 카이야는 성전환 수술 비용으로 4000여파운드(약 6300만원)를 모았다.

카이야
BBC
카이야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가슴 성형 비용을 모았다

2019~2020년 사이 성전환자들의 의료 비용을 모금하는 활동도 늘었는데, 고펀드미에 따르면 이런 캠페인은 44% 증가했다.

영국 리즈 출신인 카이야는 4년 전 런던과 리즈의 성 정체성 클리닉을 통해 '수술을 받아도 된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 절차의 일환인 심리 상담을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이었다.

"긴 대기자 명단이 병원 탓이 아니라는 건 알아요. 병원엔 자금이 부족하죠.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는 정규직 직장이 있었지만 가슴 확대 수술비를 마련할 만큼의 돈은 벌지 못했다. 국민건강보험(NHS)을 통해 수술을 받는 걸 기대하기엔 가능 여부를 확인받는 데만 수 년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카이야는 처음엔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워 수술비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으는 것을 꺼렸다.

"지원금이 얼마나 모일지 의문이었어요. 상당히 개인적인 문제로 모금을 하는 거니까요. 수술비 마련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친구가 설득했어요. 이런 모금 활동이 성전환자들에겐 꽤 흔한 일이에요. 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타적인지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기도 해요."

사울과 카이야의 크라우드 펀딩 경험담은 조금 달랐지만, 두 사람은 모두 공동체 의식,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아래 느낀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울은 "지난 1년 동안 제이콥 같은 친구가 있어 정말 좋았다"며 "나는 나아지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선 많은 이들이 삶을 개선하기 위한 어떠한 미래 결정도 내릴 수가 없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어떤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몰라요."

카이야도 비슷한 생각을 나눴다.

"코로나19 대유행과 현재의 경제 상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어요. 실직했거나 상실감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우리가 비록 물리적으로 함께 할 순 없어도 온라인 캠페인을 통해 서로에 대한 지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카이야는 "성전환자 커뮤니티뿐 아니라 일반 커뮤니티에서도 강한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한동안 나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사람들도 내 모금 운동을 공유해 줬고,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많이 힘들어하고 있고, 소외된 느낌을 받고 있어요. 단돈 5파운드(7800원)를 기증하는 데는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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