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 민족 아니고, 기부의 민족?

배달의 민족 아니고, 기부의 민족?

코스모폴리탄 2021-04-11 08:00:00 신고


경기가 안 좋아지고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뭘 줄이는지 알아요? 기부금이에요.
1년여를 미루고 망설이던 ‘밥 한번 먹자’를 어렵게 실현했던 날이었다. 소외 계층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존경하는 지인의 사단법인이 설립 이후 최초로 ‘운영 중단’이라는 위기를 맞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대면 활동으로 이뤄지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진행이 여의치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눈에 띄게 줄어든 기부와 후원으로 직원 월급 지급조차 힘들어 한시적이나마 운영 중단을 결정했다는 거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작년 한 해, 돌봄이 필요한 미취학 아동과 동거하는 프리랜서 신분인 나는 ‘코시국’이 초래한 경력 단절의 당사자가 됐다. 수입이 줄어든다는 불안감으로 태어나 단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가계부까지 펼치는 긴축 재정 모드를 가동했을 때 나 또한 가장 먼저 떠올린 감축 항목이 바로 얼마 되지도 않는 기부금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푼돈이었던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말이다.

2020년은 우리 모두에게 가혹했지만 개인과 기업의 자발적인 후원 및 기부로 운영되는 비영리 단체와 사회단체에겐 유독 더했던 게 현실이다. 통계청의 가계 동향 조사에 따르면 2020년 3/4분기와 4/4분기에 종교 단체 기부금, 사회 단체 기부금, 단체 회비 등이 모두 포함된 ‘비영리 단체로의 이전 지출’이 전년 동분기 대비 각각 10.4%, 16.1% 감소했음이 드러났다. ‘기부=연말 특수’라 여겨질 정도로 연말에 기부가 몰리던 것을 감안하면 4/4분기의 감소세는 더더욱 두드러진다. 게다가 작년에는 기업들의 기부금마저 전년 대비 9%가량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대체로 코로나19 탓이 맞을 거다. 전체 비율상으로는 대면 예배 자제 권고로 헌금이 줄어든 게 크게 작용했고, 경기 위축, 정의연 의혹 등으로 기부 심리가 위축돼 기부금과 후원금도 확연히 줄어든 것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간 기부 참여율 추이까지 살펴보노라면 이게 전적으로 코로나19 탓만은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기빙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 68.6%의 최고점을 찍었던 기부 참여율이 매년 줄어들어 2019년에는 46.55%를 기록했다. 기빙코리아는 지난 10여 년간 기부자 1인당 평균 기부 금액은 대체로 점점 높아지는 반면 기부 참여율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2019년 발표한 통계청 사회조사의 기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조사에서는 ‘경제적 여유 없음’이 57.3%로 가장 높긴 했지만 매년 그 비율이 줄어드는 추세고 그 뒤를 따르는 ‘기부에 관심 없음(23.2%)’, ‘기부 단체 불신(8.9%)’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사실상 돈이 없어서라기보단 남까지 살필 마음의 여유가 없어 기부를 선뜻 실천하지 못하고, 나의 선의를 믿고 맡길 투명한 기관과 단체를 찾지 못한 것이 매년 줄어드는 기부 참여율을 더욱 쪼그라들게 했다는 거다. 맞는 말이다. 돈은, 그냥 늘 없었던 거니까(또르르…).

다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지점은 줄어든 기부가 단순히 우리의 ‘선의의 문제’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관과 단체의 지원이 절실한 취약 계층에게는 이게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와중에 지난 2월, IT 기업 수장들의 연이은 ‘기부 플렉스’가 화제에 올랐다.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은 10조원이 넘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밝혔고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의장은 아내 설보미 씨와 함께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의 219번째 기부자로 등록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더 기빙 플레지는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시작한 기부 운동으로 1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이 중 50%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해야 회원이 될 수 있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최종 보스 격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감탄 대신 콧방귀부터 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세금 문제 때문 아니야? 이슈에 물 타기하려는 거 같은데? 저 돈이면 전 직원 보너스 500% 지급 가능한 거 실화냐? 막말로 우리가 갖다 바친 돈이 얼만데, 그 정돈 해야 하는 거 아님?’ 가진 자들이 통 크게 베푸는 게 마냥 순수해 보이진 않았던 거다. 머잖아 반성했다. 나였다면, 나에게 그만큼의 재산이 있다면(그럴 리가 없을 테니 한 번 더 또르르…), 이런저런 여차저차한 상황에 처했다 해도 과연 전 재산의 절반을 기부할 수 있었을까 상상하니 순식간에 자아 성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은 기부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실천’했다. 그 실천이 불러일으킬 선한 영향력만큼은 절대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대해야 마땅하다.

‘필랜스러피(Philanthropy)’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정의로는 인류애, 박애주의 정도인데 이것이 사회 안에서 작동하는 순간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여러 움직임’으로 기능한다. 기부를 토대로 운영되는 산업이 사실상 ‘필랜스러피 산업’이라 불릴 정도로 기부 문화 근간의 가치로 여겨지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공교육 안에서 사회 공헌의 가치를 실천하는 필랜스러피에 대한 인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나가고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기부 문화가 가장 잘 정착한 나라로 꼽힌다(트럼프도 기부만큼은 남 못지않은 걸 보라).

아름다운재단에서는 필랜스러피를 이렇게 설명한다. “필랜스러피는 우리의 나은 삶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선단체에 돈을 기부하는 것을 먼저 떠올릴 수도 있지만 물질뿐 아니라 시간과 재능 또한 중요한 가치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필랜스러피입니다.” 지금까지 기부를 지출이니 여유 자금이니, 연말정산 혜택과 같은 단순한 ‘셈법’으로 다뤄왔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 기준점을 ‘나’에서 ‘세상’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내가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나누며 공유하고 싶은지를 드러내는 삶의 태도로서 기능할 수 있게끔 말이다.

세상을 향한 나의 관심사에 돈이 있으면 돈을 내고, 시간이 있다면 시간을 쓰고, 재능이 있다면 재능을 투자하는 것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메카닉이 될 수 있다는 너무도 자명한 구조. 그게 기부가 우리의 일상 속에 적어도 주식이나 비트코인 정도의 관심 지분은 차지해야 하는 이유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시작해보자. 어쩌면 여러모로 가장 어려운 상황인 이 시점이 최적의 시기일 수도 있다. 더 어려워질 일은 적어도 당분간은 없을 테고, 기부나 나눔을 포기할 명분도 그만큼 줄어들 테니 말이다. 지금, 당장, 나의 관심사에서 시작해보자.


나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기부를 다른 말로 ‘나눔’이라 표현하는 건 그만큼 거부감이 덜하기 때문일 거다.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곧잘 이뤄지는 나눔과 마찬가지로 기부도 거창하거나 어렵게 받아들일 필요가 전혀 없다.

① 나의 관심사에서부터 출발하라
어디에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럴수록 시작점은 자신의 최대 관심사, 최애 대상이 돼야 쉽다. 반려동물, 어린이, 노숙인처럼 굵직한 카테고리로 접근하는 것보다 생리대가 비싸서 맘 놓고 못 쓰는 청소년을 위한 생리대 후원, 가발이 필요한 소아암 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기부, 사회적 지지와 보호가 절실한 보호 종료 아동의 자립 지원 활동, 플라스틱을 잔뜩 삼키고 죽은 고래에서 시작된 환경보호 캠페인 같은 구체적인 이슈에서 출발하면 범위가 쉽게 좁혀진다.


② 1000원도 충분히 가치 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내가 내는 기부금이 고액이었다면 이렇게 오래 유지하지 못했을 거라 장담한다. 정기 후원이라면 한 달 혹은 한 주에 그 정도는 없어도 살 만한 수준의 액수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금액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밀알복지재단에서는 1000원부터 시작하는 소액 기부도 운영한다. 누누이 말하지만 액수보다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③ 크라우드 펀딩으로도 기부할 수 있다
네이버 해피빈에서는 다양한 사연의 기부 캠페인을 소개하고 펀딩을 진행한다. 와디즈에서도 기부와 후원으로 직결되는 펀딩 프로젝트를 찾아볼 수 있다. 경제적 도움이 절실한 사회 취약 계층에서부터 응원과 지지가 필요한 청년 자영업자까지,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곳에서부터 시작하라.


④ 믿을 만한 곳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기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조차 선뜻 실천을 미루는 요인은 바로 단체에 대한 불신이다. 나의 선의를 착복하거나 엉뚱한 곳에 사용하는 건 아닌지 딱 봐선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간단하게는 공식 홈페이지에 재정 보고, 회계 보고서, 연차 보고서 등의 재정 상황을 공개하느냐의 여부가 재정 투명성을 가리는 척도가 된다. 그마저도 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새는 구멍이 많다는 얘기기도 하니까. 그걸 봐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문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자. 궁금하거나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 다 물어보고 답을 구하자. 응대하는 상담자의 대화 내용과 태도에서 정보 이상의 무언가를 확인받을 수 있을 거다.




freelancer editor 박지현 photo by unsplash art designer 박유진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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