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는 이미 늦었습니다.”
아동관련학과 교수의 4살 자녀에게 모 지역의 학원장이 한 말이다. 이 학원은 아이들에게 논리 논술을 가르치는데, 이제 4살이 된 아이에게 너무 늦게 왔다며 이미 이 아이는 늦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충격이 생생하다.
오는 9월부터 유아를 대상으로 한 학원에서 레벨테스트가 금지된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이미 등급을 받아 온 아이들의 마음까지 초기화되지는 않는다.
미리 분명히 해두고 싶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놀이로도 배우고, 성인의 설명으로도 배우고, 보고 따라 하면서도 배운다. 어떤 방법이 옳은지 따지려는 것도 아니다. 문제 삼는 것은 하나다. 배운 결과에 등급이 붙어 아이에게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레벨테스트의 더 깊은 문제는 시험 이후가 아니라 시험 이전에 있다. 만 4세에 시험이 있으면 만 2세와 만 3세는 자동으로 그 시험의 준비 기간이 된다. 그리고 이 하강에는 바닥이 없다. 준비반이 생기면 그 준비반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가 또 생긴다. ⓒ베이비뉴스
◇ 미국도 유아의 영어를 측정한다, 다만 반대 방향으로
흔히 우리 사교육이 과열되었다고 말할 때,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반론이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는 편이 낫겠다.
미국에서도 유아의 영어 수준은 측정된다. 공립 학군의 유치원 프로그램은 가정에서 쓰는 언어를 조사해 이중언어 학습자를 가려내고, 해당 아동은 영어 숙달도 스크리닝을 받는다. 미국에서 살지만 가정과 노출되는 사회에서는 모국어만 사용하다가, 만 3세에 유치원에 들어와 그때 처음 영어를 접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적이 정반대다. 그 측정은 지원이 필요한 아이를 찾기 위한 것이다. 결과는 교사의 수업 계획과 가정과의 협력에 쓰이고, 영어 학습자로 지정된 아동에게는 연방법의 보호와 지원 예산이 따라붙는다. 낮게 나온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이 주어지는 구조다.
우리의 레벨테스트는 정확히 반대다. 낮으면 덜 주어지거나 아예 들어가지 못한다. 도구는 같고 방향만 다르다. 한쪽에서 측정은 지원의 근거이고, 다른 쪽에서는 배제의 근거다.
조건은 더 다르다. 미국 유치원에 들어가는 아이에게 영어는 사회어다. 급식 줄에서, 놀이터에서, 병원에서 당장 필요하고 교실 밖에서도 하루 종일 쓰인다. 그래서 아이는 배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에게 영어는 모국어도 사회어도 아니다. 교실 문을 나서면 쓸 일이 없다. 몰입 환경의 압력만 그대로 들여오고, 몰입을 작동시키는 유일한 조건인 실제 필요와 실제 공동체는 빼놓은 채 그 위에 시험을 얹은 셈이다.
제2언어 습득에서 침묵기는 잘 알려진 현상이다. 새 언어 환경에 들어온 아이는 몇 주에서 몇 달간 거의 말하지 않고 듣기만 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말이 터져 나온다. 미국의 유아교사는 이것을 정상 발달로 보고 기다린다. 우리 아이는 그 몇 달 사이에 하반 판정을 받는다.
그리고 그 판정은 성적표에 머무르지 않는다. 유아기는 자아개념이 처음 만들어지는 시기다. 성인은 시험 결과를 한 시점의 수행으로 분리해 받아들이지만 유아는 그러지 못한다. 외부의 평가를 통째로 자기 규정으로 흡수한다. “영어를 아직 덜 배웠다”가 아니라 “나는 못하는 애”가 된다.
교사들이 전해오는 또 하나의 장면, 새로운 활동 앞에서 “저 그거 못해요”라며 물러서는 아이들의 모습이 여기서 나온다.
◇ 시험은 자기보다 어린 연령에 시장을 만든다
레벨테스트의 더 깊은 문제는 시험 이후가 아니라 시험 이전에 있다. 만 4세에 시험이 있으면 만 2세와 만 3세는 자동으로 그 시험의 준비 기간이 된다. 그리고 이 하강에는 바닥이 없다. 준비반이 생기면 그 준비반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가 또 생긴다. “4세 고시”라는 말이 붙는 순간, 그보다 어린 연령의 시장이 열린다.
이미 숫자로 나타난다. 2024년 교육부가 발표한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에서 2세 이하의 사교육 참여율은 24.6%였다. 네 명 중 한 명이 두 돌 전에 사교육을 시작한다.
교육부가 지난 4월 36개월 미만 영아에 대한 인지 교습을 전면 금지하기로 한 것은, 그 연령대에 이미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아직 모국어 체계가 자리 잡는 중인 시기다.
두 살 아이에게 영어를 시작하는 부모를 극성이라 부를 수 없다. 네 살에 시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하는 합리적인 대응이다. 탓해야 할 것은 부모가 아니라 시험이다. 시험을 없애지 않는 한, 그 앞의 시간은 계속 시험의 것이 된다.
◇ 법은 출발선일 뿐이다
이번 금지는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개정법은 모집 단계의 선발 시험을 막았을 뿐 등록 이후의 수준 평가에는 여지를 남겼다.
실제로 교육부가 유아 대상 영어학원 728곳을 전수조사했을 때, 레벨테스트를 실시한 23곳 가운데 선발 목적은 3곳뿐이었고 나머지 20곳은 반 편성 목적이었다. 다수는 이미 다른 이름을 달고 있었다는 뜻이다.
아이에게는 선발이든 반 편성이든 같다. 상반과 하반이 생기고, 그 아래 연령에는 그것을 대비하는 시간이 생긴다.
아이가 자기를 소개할 때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번 들어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그 문장에 등급이 들어 있다면, 그것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구조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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