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코리아=류석만 기자] 50년간 군사시설로 사용되다 시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충북 청주시의 ‘당산 생각의 벙커’가 개방 2년도 채 되지 않아 장마철 습기로 문을 닫았다.
연간 5억5000만원에 달하는 유지관리비는 고스란히 발생하는 가운데, 과거 충무시설이었던 이곳으로 다시 충무시설을 이전하는 방안마저 사실상 보류되면서 당산 벙커의 향후 활용 방안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11일 현장을 확인한 결과, 벙커를 관리하는 충북문화재단은 지난 6월 28일부터 9월 초까지 시설을 임시 휴관하고 있다.
장마철 내부 습도가 급격히 높아져 작품의 안정적인 전시와 관람객을 위한 환경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인근에서는 ‘대성2지구 급경사지 붕괴위험지역 정비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관람객의 안전과 주변 보행환경 확보를 위해 출입을 제한할 필요까지 겹쳤다.
정확한 재개관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시설 상태와 습도, 전시환경, 주변 정비사업 진행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한 뒤 결정할 예정이다.
■ 50년 군사시설, 문화공간으로 변신했지만
당산 벙커는 1973년 조성돼 약 50년 동안 전시 지휘통제소인 충무시설로 사용됐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군사시설을 충북도가 문화집회시설로 용도 변경하면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의 변신이 시작됐다.
충북도는 폐쇄된 군사시설을 철거하거나 방치하는 대신 벙커 특유의 긴 통로와 폐쇄적인 구조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해 원도심의 새로운 문화거점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이후 ‘당산 생각의 벙커’라는 이름으로 2024년 10월 15일 도민에게 무료 개방했다.
벙커 주변에는 청주 도심을 내려다볼 수 있는 ‘당산생각길’도 조성됐다. 벙커와 산책로, 원도심 문화시설을 연계해 시민들이 찾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개방 이후 ‘동굴 속 화이트 크리스마스’, ‘색에 물들다’ 등의 전시가 열렸고,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한 ‘청주프로젝트 2025-벙커’도 진행됐다.
일반 전시장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벙커의 긴 통로와 독특한 공간 구조 자체가 전시의 일부로 활용되면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서 가능성도 보여줬다.
하지만 개방 전부터 제기됐던 문제가 결국 현실이 됐다. 바로 ‘습기’다.
■ 개방 전부터 나온 습기 문제…결국 여름철 휴관
벙커는 지하 구조 특성상 자연 환기와 습도 조절에 한계가 있다. 항온·항습 여건이 충분하지 않아 여름철에는 제습기와 환기장비를 지속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사업 초기부터 습기와 편의시설 부족 문제는 지적됐다.
충북도가 편성했던 활성화 운영예산 3억5000만원은 2024년 충북도의회 심사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당시 도의회는 시설 안전성과 제습 문제를 비롯해 화장실과 주차장 부족 등을 지적하며 보다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충북도는 이후 시설을 보완하고 ‘문화의 바다 그랜드 프로젝트’와 연계해 사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장마철이 되자 벙커의 구조적 한계가 다시 드러났다.
높아진 습도 때문에 작품을 안정적으로 전시하기 어렵고 관람객에게 적정한 환경을 제공하기도 힘들어 결국 6월 28일부터 전시와 관람을 모두 중단했다.
시민 입장에서는 여름철 두 달 넘게 벙커에 들어갈 수 없게 된 셈이다. 당산생각길 등 주변 문화공간과 연계한 이용도 사실상 제약을 받게 됐다.
■ 문 닫아도 1년에 5억5000만원…5년이면 27억5000만원
더 큰 문제는 비용이다.
신용한 충북도지사가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당산 벙커의 연간 유지관리비는 약 5억5000만원이다.
단순 계산으로 5년이면 27억5000만원, 10년이면 55억원이다.
더욱이 여름철마다 습기 문제로 전시와 관람이 제한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실제 시민에게 개방되는 기간에 비해 유지관리비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화공간으로 살려낸 군사시설’이라는 상징성만으로 막대한 운영비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 “25억원 들여 충무시설 옮겨도 기준 못 맞춰”
이런 가운데 당산 벙커를 둘러싼 또 다른 논쟁도 불거졌다.
현재 다른 곳에 있는 충무시설을 과거 사용했던 당산 벙커로 다시 옮기는 방안이다.
인수위원회는 현재 충무시설을 기존 벙커로 이전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검토 결과 이전은 사실상 보류됐다.
벙커에 서버와 보안설비 등을 다시 설치하는 데만 약 25억원이 필요하지만, 이 비용을 투입하더라도 행정안전부가 정한 충무시설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가 기준을 충족하는 새로운 충무시설을 조성하려면 약 45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25억원을 들여 벙커로 돌아가는 방안도 기준 미달, 제대로 된 새 시설을 짓는 데는 450억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연간 5억5000만원의 벙커 유지관리비와 비교하면 450억원은 약 82년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신 지사는 “당산 벙커로 다시 들어가는 데 25억원 정도가 필요하지만 서버와 보안시설을 설치해도 국가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기준을 충족하려면 450억원이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어 “솔직히 충무시설을 새로 짓는 데 450억원을 투입할 돈이 없다”며 현재 충무시설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충무시설이 국가가 정한 기준에 따라 관리되는 보안시설인 만큼 건립비를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신 지사는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관련 내용을 서면으로 건의했지만 다른 지역 지원 사례 등을 고려하면 국비 확보가 쉽지 않다는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 결국 남은 선택지는 ‘문화공간의 정상화’
충무시설의 당산 벙커 재이전이 보류되면서 당산 벙커는 문화공간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문화공간으로 계속 운영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항온·항습 설비를 추가할 경우 얼마나 많은 비용이 필요한지, 이를 통해 여름철에도 정상적으로 전시를 운영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작품 보존과 습도 관리, 화재 대응, 관람객 안전, 급경사지 정비사업에 따른 출입 동선, 보안시설과 문화시설의 공간적 분리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충북문화재단은 휴관 기간 내부 상태와 전시환경을 점검할 계획이다.
충북도는 민간 위탁을 포함한 운영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벙커 내부에서는 불이나 가스를 사용하는 조리가 어렵지만, 외부에서 만든 커피나 음료 등을 판매하는 편의시설은 도입할 수 있다는 구상도 내놨다.
휴게공간과 편의시설이 부족했던 관람객들의 불편을 줄이고 일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다.
하지만 커피와 음료 판매 등 수익사업만으로 연간 5억5000만원에 달하는 유지관리비 부담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 ‘멋진 재생’에서 ‘지속 가능한 운영’으로
당산 생각의 벙커는 폐쇄된 군사시설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
1973년 군사시설로 출발해 2024년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만큼 도시재생과 문화시설 재활용의 새로운 사례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개방 전부터 제기됐던 습기와 편의시설 문제가 개방 이후 실제 운영의 걸림돌로 나타났다.
개방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두 달 넘는 여름철 휴관에 들어간 데다, 문을 닫아도 연간 5억5000만원의 관리비가 들어간다.
충무시설로 되돌리자니 25억원을 투입하고도 국가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고, 새 충무시설을 짓자니 450억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결국 당산 벙커에 남은 과제는 ‘무엇으로 사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운영할 것인가’에 가까워졌다.
군사시설을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넘어, 막대한 관리비와 구조적인 습기 문제를 안고도 시민들이 사계절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향후 사업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신 지사는 “충무시설을 벙커로 옮겨도 국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현재 상태로 두는 것이 낫다”며 “당산 벙커는 민간 위탁 등을 포함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50년 군사시설의 변신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당산 생각의 벙커 앞에는 또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것’과 ‘문화공간으로 살아남게 하는 것’은 과연 같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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