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논의가 구체화하면서 금융권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한국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3대 국책은행 노동조합은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첫 공동 집회를 열고 지방이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국책은행의 이전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의 유치 경쟁이 시작되자 노조는 정부 발표에 앞서 선제 대응에 나섰다. 노조는 본점 이전이 단순한 근무지 변경을 넘어 정책금융 수행 역량과 금융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의도 모인 3대 국책은행…“약속 어디 갔나”
11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퇴근 시간대 거리에는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직원과 금융노조 관계자들이 모여들었다.
현장에는 3대 국책은행 노조 깃발이 늘어섰고 참가자들은 지방이전 반대 피켓을 든 채 구호를 외쳤다.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노조가 본점 이전 문제를 놓고 함께 거리로 나온 첫 자리다.
노조는 국책은행별 역할을 강조했다. 산업은행은 산업·기업금융과 구조조정,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소상공인 금융, 수출입은행은 수출·대외금융을 담당하는 만큼 긴밀한 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류장희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대선 과정에서 국책은행 특수성에 대한 공감과 상호 협력, 과학적 검토를 약속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류 위원장은 “이는 단순한 약속 파기가 아니다. 도의와 신뢰, 과학적 근거 모두를 부정하는 폭거”라고 주장했다.
정은주 수출입은행 노조위원장은 3대 국책은행을 “정부 입장에서 보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빗댔다.
정 위원장은 “3개 기관을 모두 합치면 정부 배당금이 2조원에 육박한다”며 “더 많은 황금알을 얻겠다고 거위의 배를 가르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현준 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과거 부산 이전 추진에 맞섰던 경험을 꺼냈다. 김 위원장은 “지난 정권 때 남들이 다 포기하라고 했을 때도 물고 늘어지고 가열차게 투쟁해 승리했다”고 말했다.
◇“동료들이 하나둘 떠났다”…정책금융 논리 뒤 직원들의 상처
노조는 산업은행이 산업·기업금융과 구조조정, 기업은행이 중소기업·소상공인 금융, 수출입은행이 수출·대외금융을 담당하는 만큼 정부·기업·금융회사와의 긴밀한 협업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석구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산업은행은 특수금융과 정책금융의 최고 집행자로 반드시 여의도에서 다른 금융기관과 함께 제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게 국가 금융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책금융 생태계가 분산될 경우 발생할 부작용을 강조했다. 그는 “충분한 검토 없이 정책금융 생태계를 일방적으로 분산한다면 신속한 금융 지원과 국가적 위기 대응 능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며 객관적인 효과 분석과 노동자들과의 협의를 촉구했다.
정책금융을 둘러싼 논리 뒤에는 이전 갈등을 직접 겪었던 직원들의 기억도 남아 있었다.
산업은행 한 조합원은 과거 부산 이전 추진 당시를 돌아보며 “깊어지는 고용 불안 속에 소중한 동료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났다”며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씁쓸한 말이 농담처럼 오고 갔지만 사실 아무도 웃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본점 이전을 막아냈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걸 잃었고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며 “정권이 바뀌었는데 나아진 게 하나도 없이 우리는 이 자리에 다시 모였다”고 토로했다.
◇예보도 움직였다…금융 공공기관 전반 ‘술렁’
이날 여의도에서 터져 나온 반발은 3대 국책은행에 머물지 않았다. 정부의 이전 대상 발표 전부터 금융 공공기관 곳곳에서 집회와 토론회, 내부 의견 수렴 등 대응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NH농협노조는 농협중앙회와 농협은행 본점의 지방이전 가능성에 반발해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예금보험공사 노조는 이날 서울 중구 본사에서 지방이전 관련 정책토론회를 열고 금융위기 대응기관이라는 업무 특성과 서울 소재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투자공사(KIC)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도 지방이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 노조는 직원 설명회와 조합원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등 금융 공공기관 전반에서 대응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금융노조는 공동대응 체계를 통해 이전 후보와 정치권·지방자치단체 움직임을 공유하고 있다. 3대 국책은행 노조도 정부의 대상기관 선정에 따라 후속 대응 수위를 결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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