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만 가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처세술을 조기 이수한 우리는 영혼 없는 끄덕임과 '모르는 척'으로 무장한 생존의 고수들이다. 퇴근길 소주 한 잔에 "오늘도 버텼다"며 스스로를 마취하고, "받은 만큼만 일한다"며 핏대 세우는 걸 훈장처럼 여긴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공했다는 이들의 삶은 왜 우리와 이토록 딴판일까. 어쩌면 우린 그저 거대한 '펜듈럼(Pendulum)'의 진동판 위에서 시키는 대로 춤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공력을 낭비하며 '잉여 포텐셜'을 공급하는 건전지 신세로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 교과서 대신, 왜 이 지겨운 장면이 무한 반복되는지 그 메커니즘이 궁금했다. 내게 그 프리즘을 빌려준 바딤 젤란드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의 '트랜서핑' 이론을 메스 삼아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김현우의 핫스팟]을 시작한다.
투표용지는 어떻게 정체성이 되었을까. 선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 이제는 집단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성격을 바꾸고 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팩트'다. 국회 국정조사계획서에도 명시된 명백한 행정 참사였다. 한데 두 달이 지난 8월 9일 현장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00여명이 텐트를 치고 장기 숙식 중이다. 중장년과 노년층 비중이 훌쩍 커졌다. 초기 구호였던 '참정권' 사이로 '윤어게인' 같은 특정 정치인 지지 팻말이 튀어나온다. 행정 실패에 대한 항의가 정치적 정체성 운동으로 슬그머니 문패를 바꿔 달고 있다.
트랜서핑에서 말하는 펜듈럼(Pendulum)의 전형적인 진화 과정이다. 처음 펜듈럼의 먹이는 구체적인 사건, '모자란 투표용지'였다. 이땐 사람이 문제를 지배했다. 그런데 시간이 길어지면 주객이 전도된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밥을 나누고, 같은 구호를 외치고, 같은 영상을 소비하면서 텐트촌은 하나의 거대한 '생활 공동체'로 변모한다. 이때부터 펜듈럼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뜯어먹고 자란다.
용어설명: 펜듈럼(Pendulum)이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람들의 생각과 에너지가 모여 형성된 후, 점차 스스로의 생존과 유지를 위해 대중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조종하려 드는 독립적인 에너지 정보 주체를 뜻한다.
심리학자 반 조머런(van Zomeren) 이 수많은 집단행동을 분석해 내린 결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불공정하다는 인식과 '우리가 뭉치면 바뀐다'는 효능감, 그리고 집단 정체성이다. 68일을 함께 버티며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애국 시민'이라는 강력한 정체성이 뇌리에 박힌 것이다. 스완(Swann)의 '정체성 융합(identity fusion)' 이론을 빌리자면, 이들은 시위 현장과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됐다.
처음엔 "선거를 지켜야 한다"에서 출발한 마음이 "우리가 철수하면 지는 거다"로 변한다. 종국엔 "우리가 물러서면 나라를 포기하는 것"으로 뻥튀기된다.
만약 누군가 "조사해 보니 생각보다 큰 부정은 없던데요"라고 밀어 넣으면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까. 68일간 쏟아부은 땡볕, 비용, 주변의 조롱 등 거대한 '매몰 비용'을 스스로 부정해야 한다. 이때부터 뇌는 '동기화된 추론(motivated reasoning)' 풀가동 상태에 들어간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결론에 맞는 정보만 편식하며 합리화의 성을 쌓는다. 트랜서핑의 '유도 전이'에 낚인 셈이다. 투표용지에서 시작된 의심이 선관위, 경찰, 언론을 거쳐 '대한민국 체제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세계관을 무한 확장한다.
진짜 애국과 펜듈럼을 구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그렇다고 이들을 "음모론에 빠진 극단주의자"라며 손가락질하고 강제 해산시키는 것도 무식한 해법이다.
경찰력을 동원해 무식하게 때려잡으면 원래 충돌 의도가 없던 온건파들조차 경찰을 적대 집단으로 인식한다. 강경파와 똘똘 뭉치게 된다. 무력으로 텐트를 치우면 장소만 사라질 뿐이다. 그들의 머릿속엔 '탄압받은 순교자 서사'라는 훨씬 덩치 큰 펜듈럼이 입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장에 펄럭이는 수많은 태극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국가를 무비판적으로 긍정하는 '맹목적 애국심'과 잘못된 제도를 고치려는 '건설적 애국심'은 다르다. 올림픽공원의 일명 '태극기 부대'가 건설적 애국심인지 확인하려면 질문을 던져보면 된다. △"재검증 결과가 당신들 예상과 달라도 승복할 텐가?" △"당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불리한 팩트가 나와도 받아들일 텐가?" △"텐트촌 사람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도 똑같이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결국 이 시위의 목적이 선거 관리 시스템 개선인가, 아니면 특정 정치인의 부활인가?"
이 질문에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을 얼버무린다면, 더 이상 참정권 운동이 아니다. 펜듈럼이 원래의 목적을 잃고 '생존'을 위해 요구 조건을 정치 체제 문제로 무한 리필하고 있다는 증거다.
펜듈럼을 굶겨 죽이는 재미없는 방법
해법은 '펜듈럼 굶기기'에 있다. 이미 국회는 투표용지 부족 의혹 특검법을 228표 중 226표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정부가 시위대 대표와 마주 앉아 '부정선거 인정'을 두고 정치적 딜을 시도하는 건 최악의 악수다. 정부는 절차만을 약속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원자료는 이거다. 이렇게 검사할 거다. 너희 쪽 전문가도 데려와서 참관해라. 결과가 뭐든 숨김없이 깐다."
'절차적 투명성'이야말로 펜듈럼이 가장 질색하는 맹독이다. 대중의 비웃음, 경찰의 과잉 진압, 정치인의 요란한 현장 방문은 모두 펜듈럼을 살찌우는 달콤한 에너지다. 반면 일관된 팩트 체크와 법 집행은 영양가가 전혀 없다. 4억 2800만원어치 시설 복구 비용이나 장기 점유로 인한 취소 행사 피해는 '애국 디스카운트' 없이 철저히 영수증을 청구하면 된다.
'시위대가 이겼나, 정부가 이겼나'로 바라보는 순간 본질은 산으로 간다. 진짜 승리는 투표용지가 왜 부족했는지 투명하게 조사해서 행정 시스템의 오류를 잡아내고, 다음 선거에서 같은 사고가 터지지 않게 제도를 고치는 것이다. 반대로 가장 끔찍한 결말은 양쪽이 서로 자기가 이겼다고 샴페인을 터뜨리는데, 정작 사회의 어느 누구도 국가의 선거 데이터를 믿지 않게 되는 세상이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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