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 톺아보기]#2. 후예사일, 화탕지옥을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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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 톺아보기]#2. 후예사일, 화탕지옥을 쏘다

데일리 포스트 2026-08-11 17:55: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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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 / 이형로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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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이형로 칼럼리스트| 절기상 입추였던 지난 7일. 서울과 경기 하남·용인, 광주, 경남 밀양 등 전국 곳곳에서 낮 최고기온이 40℃를 넘나들었다. 2018년 여름도 기록적으로 더웠지만 요즘 더위가 유독 혹독하게 느껴진다. 그때는 젊어 체력이 버텨준 것인지, 지난 더위를 이미 잊은 것인지 모르겠다.

고려 후기 문인 안축(安軸·1282~1348)은 ‘혹열(酷熱)’에서 한여름의 열기를 이렇게 노래했다.

‘넓고 넓은 하늘에 불바퀴 날아오르고(火輪飛出御長空), 온 세상은 온통 불가마 속이네(萬國渾如在烘中). … 양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돋아(安得兩腋生羽翼), 시원한 광한궁에서 신선들과 어울릴 수는 없을까(廣漢宮裏伴仙翁).’

700여 년 전 여름도 어지간히 더웠던 모양이다. 아침부터 해가 이글거리면 세상은 순식간에 불가마가 된다. 이 열기에서 벗어나려면 차라리 날개를 달고 신선이 산다는 광한궁으로 날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아주 먼 옛날에는 하늘에 태양이 열 개였다고 한다. 동방의 천제(天帝) 제준(帝俊)과 태양의 여신 희화(羲和)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로, ‘세 발 달린 금빛 까마귀’인 삼족금오(三足金烏)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 / 이형로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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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의 태양은 하루에 하나씩 번갈아 떠오르는 규칙을 지켰다. 그러나 어느 날 장난기가 발동해 한꺼번에 하늘로 솟아올랐다.

태양들에게는 장난이었지만 인간에게는 재앙이었다.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타오르자 강과 샘은 마르고 초목과 곡식은 타버렸다. 뜨거운 열기와 갈증, 굶주림이 사람들을 덮쳤다. 불경에서 말하는 ‘화탕지옥(火湯地獄)’이 지상에 펼쳐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요임금은 천제 제준에게 백성들의 고통을 호소했다. 제준은 천계 최고의 궁수 후예(后羿)에게 붉은 활과 흰 화살을 내주며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명했다.

후예가 활시위를 당기자 태양이 하나씩 떨어졌다. 추락한 태양들은 삼족금오의 모습을 드러냈고, 아홉 개가 사라진 뒤 하나만 하늘에 남았다.

마지막 태양이 살아남은 이유를 두고는 이야기가 엇갈린다. 제준이 자식들을 모두 잃을 것을 염려해 마지막 화살을 방해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태양이 모두 사라지면 세상이 암흑에 빠질 것을 걱정한 요임금이 화살 한 발을 숨겼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 / 이형로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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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후예사일(后羿射日)’, 후예가 활을 쏘아 태양을 떨어뜨렸다는 중국 고대 신화다. 『회남자(淮南子)』 등에 관련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화는 현실을 과장하지만 그 속에는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현실의 흔적도 남아 있다. 태양이 열 개나 떴다는 상상 역시 견디기 어려운 더위를 표현한 옛사람들의 언어였을지 모른다.

후예가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뜨린 덕분인지 지금 우리 머리 위에는 태양 하나만 떠 있다. 그런데도 한낮 기온은 40℃를 넘나든다. 옛사람이라면 지금의 여름을 보며 다시 화탕지옥을 떠올렸을 법하다.

지난 7일 입추가 지났다. 곧 처서가 찾아오고 매미 소리가 잦아들면 귀뚜라미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그러나 입추가 지났다고 폭염까지 달력을 따라 물러나는 시대는 아닌 듯하다. 옛사람들에게 열 개의 태양은 신화 속 재앙이었지만, 오늘날 극한 폭염은 반복되는 현실이 되고 있다.

신화 속에는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뜨린 후예가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후예가 없다. 오늘의 ‘화탕지옥’을 식혀야 할 몫은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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