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양강도 혜산시에 살았던 이해연(가명) 씨는 여름이면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자리에 들곤 했다. 네 식구가 선풍기 한 대를 공유했다.
하지만 북한의 전력 공급은 일정하지 않았다. 밤에는 전기가 안 들어오는 날이 더 많았다.
"자다가 너무 더워서 깨고, 잠을 설친 적이 많죠.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선풍기가 꺼진 줄 모르고 자다가 일어나 보니 전기가 끊긴 거죠. 너무 더우니까 깨는 거예요."
선풍기가 멈추면 이 씨는 문과 창문을 열어놓고 다시 잠을 청했다. 너무 더운 날에는 창고 혹은 집 밖에 잠자리를 만들어 가족들과 자기도 했다. 이 씨가 탈북한 2017년까지 익숙한 풍경이었다.
23살에 탈북한 이 씨는 자신이 북한을 떠날 때까지 에어컨의 존재를 몰랐다고 말했다.
"에어컨이라는 기계가 있는 것 자체를 몰랐어요. 그냥 선풍기가 최고인 줄 알았죠."
그가 북한을 떠난 지 9년이 지난 올여름, 한반도에는 극심한 더위가 찾아왔다. 한국 곳곳의 기온이 40도를 넘었고, 북한에서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졌다.
북한은 이달 초 평양과 평안북도, 자강도 등에서 35~40도의 고온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고온주의경보'를 내렸다. 이후 8일에도 평양과 황해남도, 평안남도, 남포, 개성 등 일부 지역의 평균 습도가 70%를 넘고 낮 최고기온이 33~35도에 이를 것으로 예보하는 등 무더위가 이어졌다.
에어컨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흔하지 않은 북한 주민들은 이런 더위를 어떻게 견딜까.
BBC는 평양과 양강도 혜산시, 함경북도 청진시 그리고 황해남도 해주시 등 서로 다른 출신지와 경제적 배경을 가진 북한이탈주민(탈북민) 4명에게 북한에서 경험한 여름에 대해 물었다.
보기도, 쓰기도 힘든 '에어컨'
북한의 에어컨 보급률을 보여주는 신뢰할 만한 통계는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탈북민의 경험을 종합하면, 이들이 북한에서 생활했던 당시에는 에어컨이 일반적인 가전제품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들은 학교나 공공기관에서도 에어컨을 보기 어려웠다고 말했으며, 집에 에어컨이 있었던 탈북민조차 에어컨은 '흔하지 않은' 가전제품이라고 표현했다.
2023년까지 황해남도 해주시에 살았던 김일혁 씨의 집은 북한에서도 상당히 여유 있는 편이었다.
김 씨의 아버지는 장사 등으로 부를 축적한 북한의 부유층 이른바 '돈주'였고, 가족은 방이 네 개인 큰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각 방에는 태양광으로 충전한 배터리에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직류식 선풍기가 한 대씩 있었다.
하지만 에어컨은 없었다. 전력 공급 때문이었다.
통일부가 2023년 탈북민 6000여 명을 조사해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서 하루 평균 가정에 전기가 공급된 시간은 4.1시간이었다.
보고서는 "가정이나 개인이 자체적으로 전기를 확보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2016~2020년 탈북한 응답자 가운데 가정용 전력 공급 방법에 답한 사람의 절반 이상(53.9%)이 전기를 자체적으로 확보했다고 답했다.
에어컨을 사용하려면 선풍기보다 훨씬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북한 당국이 전기를 공급하지 않을 때 태양광으로 얻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를 충전할 태양광 설비까지 갖추기 쉽지 않았다고 김 씨는 설명했다.
그는 이어 황해남도 해주시에서 에어컨을 설치한 집을 보기는 했지만, 매우 드물었다고 덧붙였다.
"에어컨은 상당한 전압을 먹잖아요. 이걸 사용하려면 용량이 아주 큰 배터리를 여러 개 보유해야만 가능한 거예요. 그만큼 또 태양광 충전하는 설비 자체도 여러 개가 돼야 하니까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죠. 전기를 24시간 보장받는 곳이 아니었어요.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으면, 에어컨을 구매했겠죠."
평양에서 자란 김금혁 씨의 경험은 달랐다. 김 씨는 현재 국민의힘 미디어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까지 평양에 거주했던 김 씨의 집에는 2000년대 중반부터 에어컨이 있었다.
김금혁 씨는 평양에도 전력이 계속 공급되는 편은 아니었고, 에어컨을 사용하는 사람이 흔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기가 잘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에어컨을 '몰래' 사용해야 했다.
그는 별도의 방법으로 전력을 확보해야 에어컨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이나 LG 에어컨을 몰래 숨겨놓고 썼었던 것 같기도 해요. 부자 같은 경우에는 전력 공급선을 따서 집과 바로 연결해서 전기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집들은 거의 24시간 전기가 들어왔었고, 저희 집도 24시간 썼었어요. 하지만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김 씨의 말에 따르면, 집에는 에어컨이 있었지만, 학교에는 없었다. 그는 북한에서 외국어를 쓰는 인재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학교인 평양외국어학원을 다녔는데, 에어컨이 없어 더위에 허덕였다.
여름이면 학생들이 수업이 끝날 때마다 수돗가로 내려가 찬물로 등목을 한 뒤, 다시 교실로 돌아오기도 했다. 교실의 남학생들은 대부분 온몸이 젖은 상태로 수업을 듣곤 했다.
얼음·부채·양산·모자...일반 주민들의 여름나기
그렇다면 대부분의 주민은 어떻게 더위를 피했을까.
양강도 혜산에서 자란 이해연 씨의 기억 속에서 여름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얼음'이었다.
그는 전기가 들어올 때 '극동기', 즉 냉동고에 물을 얼려놓고, 전기가 끊기면 얼음이 빨리 녹지 않도록 땅을 파 만든 지하 김치 저장고인 김치움에 보관했다고 했다. 필요할 때 꺼내 얼음물을 만들어 마셨다. 김치움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전기가 오래 끊기는 날에는 얼음을 파는 곳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 김단금 씨 역시 여름이 되면 길가에 얼음물과 이른바 '아이스케끼(아이스크림)'를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길거리에 얼음물과 아이스케끼를 파는 장사꾼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옆에 10m에 한 명씩 얼음 파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무리 돈이 없어도 워낙 더우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걸 사 먹는 거죠."
가장 흔한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부채와 양산, 그리고 모자였다.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여름에 '채양모'라고 부르는 챙이 있는 모자를 쓰거나 양산을 쓰고 다닌다. 집에 있을 때는 앞뒤 문과 창문을 모두 열어 바람이 통하게 하고, 부채도 필수품이다.
바닷가 도시인 청진에서 살았던 김단금 씨에게는 이 방법이 꽤 효과적이었다.
"선풍기가 없는 대신 앞뒤 창문을 열어놓으면 바람이 통하잖아요. 희한하게 더위를 못 느꼈어요."
반면 바람이 머물지 않는 후텁지근한 밤을 지내야 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해연 씨는 정전으로 선풍기가 멈춰 더위로 잠에서 깨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김일혁 씨도 선풍기로 더위가 달래지지 않을 때면 시원한 감주(막걸리) 혹은 얼음을 띄운 맥주 한 잔으로 더위를 식혔다고 전했다.
아예 집 밖으로 나와 잠을 청하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김 씨는 더운 날이면 옥상 혹은 밖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 씨의 가족 역시, 더운 날에는 집 밖 그늘진 곳에 침대를 만들어 잠을 청하기도 했다.
집 안에서 불을 피우지 않는 것도 더위를 견디는 방법이었다.
2017년 당시 혜산의 많은 가정에서는 전기가 없는 탓에 장작불로 음식을 조리했는데, 한여름 집 안에서 불을 피우면 실내가 더욱 뜨거워졌다. 이 씨는 여름이면 집 밖으로 조리 도구를 꺼내 음식을 만들곤 했다고 회상했다.
가까운 강으로, 바다로
압록강 인근에 살았던 이 씨는 어린 시절, 여름이면 매일 강으로 뛰어갔다. 부모들이 저녁이 되면 아이들을 찾으러 강가로 나오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더우면 강으로 뛰어가요. 친구들과 수영하고 고기도 잡고, 해 질 때까지 놀았어요."
혜산에 대형 야외수영장이 생긴 뒤에는 강 대신 수영장을 찾는 날이 많아졌다. 이 씨는 하루에도 몇 차례 수영장을 오가기도 했다.
청진에 살던 김단금 씨에게는 바다가 있었다. 국가가 정한 휴일이나 명절이면 가족이나 친구끼리 음식을 준비해 바다나 공원으로 나가 먹고 노는 문화가 있었다고 했다.
평양에서 온 김금혁 씨는 물놀이장을 찾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학교 단위로 물놀이장을 예약해 이용하는 경우도 있어, 개인적으로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붐빌 때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바다나 계곡을 찾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북한에서는 다른 지역을 방문하려면 여행증명서가 필요한 데다, 교통수단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김단금 씨는 "자신이 사는 지역 안에서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만, 다른 지역으로 가는 건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여름휴가를 위해 멀리 있는 바다나 계곡, 수영장을 찾는 모습은 북한에서 흔치 않았다고 탈북민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북한 매체가 최근 공개한 해수욕장과 물놀이장의 붐비는 모습이 북한 주민의 일상적인 여름나기를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봤다. 특정 시설과 지역의 모습을 일반 주민의 생활처럼 보여주는 '보여주기' 성격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김일혁 씨는 "(이런 모습은) 흔한 게 아니"라며 "중산층에서도 최상위 부류나 고위급 사람들이 누리는 생활이었다. 일반 주민들이 꿈꾸기는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다만 김단금 씨는 평양의 물놀이장은 실제 평양 주민들이, 해수욕장은 해당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모습일 수 있다며 "전체 주민의 생활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실제 이용하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더위를 피할 수 없는 사람들
김금혁 씨에게 북한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여름의 기억은 농촌 동원이었다.
김 씨는 학창 시절, 8월이 되면 학생들이 3~4주 동안 농촌에 파견돼 농사일을 돕고 함께 생활하는 활동이 있었다고 전했다.
평양보다 전기 사정이 열악한 농촌에서 선풍기 없이 땡볕 아래 일해야 했고, 김 씨는 당시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무더위 속에서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일하고, 한편으로는 우리는 잠깐 와서 일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평생 일하는 분들은 정말 고생을 많이 하는구나 깨닫기도 했습니다."
안경수 통일의료연구센터장은 냉방시설 부족뿐 아니라 주민들의 기존 건강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관리하기 어려운 북한의 의료 환경이 폭염으로 인한 건강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혈압이나 심혈관 질환 등이 있어도 이를 알지 못하고 생활하는 주민들이 고온에 노출됐을 때 훨씬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심한 어지럼증이나 탈수 증세가 생겨도 주민들이 병원보다 집에서 해결하려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안 센터장은 "더위는 똑같고, 사람도 똑같다"며 "같은 수준의 더위라도 의료 접근성과 건강 관리 여건에 따라 취약성이 달라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 당국 역시 최근 폭염이 이어지자, 주민들에게 한낮의 야외 활동을 줄이고 건강 관리에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해연 씨는 북한에 있을 당시에는 더위를 견디는 생활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렇게 사니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다들 이렇게 사나 보다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이 씨는 웃으며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살았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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