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이 '선착순 게임' 됐다…총량규제에 '대출 오픈런' 넘어 포모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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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이 '선착순 게임' 됐다…총량규제에 '대출 오픈런' 넘어 포모 확산

폴리뉴스 2026-08-11 16:51:04 신고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강도 높은 가계부채 총량 관리로 은행권의 연간 대출 한도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금융소비자 사이에서 '대출 절벽'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필요한 시점보다 대출을 서두르는 '오픈런'을 넘어 당장 필요하지 않은 자금까지 미리 확보하려는 '대출 포모(FOMO)' 현상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대출 총량 목표 초과가 대출 문턱을 높이고, 다시 미래의 대출 수요를 현재로 앞당기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정책성 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6일 기준 650조376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보다 5조4005억원 증가하면서 올해 증가 목표치인 4조3300억원을 이미 1조원 이상 넘어섰다.

연간 목표가 조기에 소진되면서 은행권은 가계대출 관리 강화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워진 수요가 인터넷은행과 저축은행·상호금융·보험사 등 제2금융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전 금융권에 적용되는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인 1.5% 역시 넘어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융위원회는 실수요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주비와 분양 잔금대출 등을 총량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금융소비자들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출을 강하게 억제한 뒤 실수요자 피해가 나타나면 예외를 추가하는 방식이 2021년의 '대출 절벽' 사태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구체적인 증가율 목표를 제시하며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본격적으로 시행한 것은 2021년이다. 당시 부동산 가격 상승과 함께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나자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통해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을 5~6%대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 2021년 가계대출 증가율은 7.1%를 기록해 당국의 목표치를 넘어섰다. 은행들은 연간 목표를 맞추기 위해 하반기 들어 신규 대출을 중단하거나 한도를 크게 줄였고, 이미 주택 매매나 분양·전세계약을 체결한 실수요자까지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금융당국은 4분기 전세대출을 총량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잔금대출 공급을 허용했다. 은행권에서 대출받지 못한 차주가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보험사 등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도 나타났다.

5년이 지난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같은 소득과 신용도를 가진 차주라도 대출을 연초에 신청했는지, 연간 한도가 상당 부분 소진된 하반기에 신청했는지에 따라 대출 가능 여부와 조건이 달라지는 사실상의 '선착순 대출'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차주의 소득이나 상환 능력에 변화가 없는데도 신청 시점에 따라 대출 가능 여부가 달라지면서 금융소비자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하반기 대출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할 경우 미래의 대출 수요가 앞당겨지면서 총량 목표를 더욱 빠르게 소진시키는 역설적인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총량 관리 방식에 대한 우려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제기됐다. 지난 2월 26일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일부 위원들은 총량 관리가 주택시장 과열에 대응하기 위한 단기 수단으로는 필요할 수 있지만 통화정책의 효과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준금리가 내려가더라도 은행들이 총량 목표를 맞추기 위해 가산금리를 높이거나 대출 한도를 줄이면 금융소비자가 실제 체감하는 대출금리는 충분히 하락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시장 과열이 진정된 이후에도 총량 관리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이러한 부작용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계대출 총량 관리의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행 총량 관리는 법률이나 금융감독 규정에 직접 명시된 규제라기보다 금융회사들이 금융당국의 관리 방향에 따라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를 제출하고 이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목표를 초과할 경우 다음 해 대출 한도나 검사·감독 과정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강제성을 가진 행정지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금융소비자의 대출 가능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규제가 비법규적 수단으로 운용되면서 규제의 예측 가능성과 법적 근거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질 수 있다.

금융회사별 연간 가계대출 증가액을 직접 제한하는 방식은 주요국에서도 일반적인 가계부채 관리 수단은 아니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절정이던 1990년 부동산 관련 대출 증가율을 금융회사의 전체 대출 증가율 이하로 제한하는 총량규제를 시행했다. 부동산 대출 증가세를 빠르게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났지만 이후 부동산 거품 붕괴 과정에서 시장 충격을 키운 정책 중 하나였다는 평가도 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의 전체 대출량을 일률적으로 제한하기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을 통해 개별 차주의 소득과 상환 능력을 중심으로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낮춰 장기적으로 80%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금융당국의 방향성에는 근거가 있지만, 이를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낮추려고 하다 보니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여러 어려움이 생겨나고 있다"며 "선진국처럼 DSR 등 개별 차주의 상환 능력에 비례해 대출 규모가 결정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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