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프리즘] 지구를 쓰고 버린 시대에 건네는 숲의 경고, '나무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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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프리즘] 지구를 쓰고 버린 시대에 건네는 숲의 경고, '나무의 노래'

뉴스컬처 2026-08-11 15:32:1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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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숲. 사진=픽사베이
니카라과 숲. 사진=픽사베이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한 여인이 흰 말을 타고 니카라과의 밀림으로 들어간다. 울창한 숲 사이로 이어지는 길,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는 그의 모습은 동화 속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영화 '나무의 노래'가 기록하는 것은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다. 1939년생인 88세의 여인이 실제로 거대한 숲을 사들이고, 그곳에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살아가는 현재의 기록이다. 영화는 그 삶을 따라가면서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를 조용히 되돌아본다.

주인공이 사들인 땅은 여의도 면적의 7배가 넘는다. 축구장으로 따지면 약 3천 개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 광활한 땅에서 그는 나무를 심고 가꾼다. 목표는 100만 그루다. 88세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숫자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영화 속 인물에게 나무를 심는 일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매일 이어가는 생활에 가깝다.

그녀는 조선 황실의 후손으로 태어나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 젊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생물유전학을 공부했고 연구자의 삶을 살았다. 삶의 궤적만 놓고 보면 자연과학의 언어에 익숙한 인물이다. 그러나 '나무의 노래'에서 그가 보여주는 세계는 숫자와 실험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나무마다 다른 소리가 있고, 나무마다 자기만의 언어가 있다고 말한다.

■기후위기의 숫자보다 오래 남는 한 그루의 나무

사진='나무의 노래' 스틸컷.
사진='나무의 노래' 스틸컷.

여기서 영화의 독특함이 드러난다. '나무의 노래'는 기후위기를 설명하는 강의가 아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평균기온 상승 그래프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산불과 홍수, 가뭄 같은 재난을 자극적으로 나열하지도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나무를 심는 시간을 오래 바라본다. 그 선택은 오히려 오늘의 기후위기를 더 선명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2025년 지구 기후 현황'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1년은 관측 사상 가장 더운 11년으로 기록됐다. 2025년 역시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 평균보다 약 1.43도 높은 수준으로, 역대 두세 번째로 더운 해였다. 지구의 에너지 불균형 역시 WMO 관측 기록 65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기후위기는 이제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과 산불, 해수면 상승과 빙하 감소가 세계 곳곳에서 사회의 안전과 경제 활동을 흔들고 있다. IPCC는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온난화를 명백하게 일으켰으며,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이미 세계 모든 지역의 극한 기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사진=픽사베이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사진=픽사베이

이 거대한 숫자 앞에서 '나무의 노래'가 선택한 것은 오히려 작은 행동이다. 한 사람이 흙을 파고 묘목을 심는다. 나무가 자라기를 기다린다. 다시 숲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반복이 영화의 시간을 만든다. 지구적 위기와 개인의 행동 사이에 놓인 거대한 간격을, 영화는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 좁혀간다.

숲은 기후위기 시대에 중요한 자연 기반 해법으로 평가된다. 산림은 탄소를 저장하는 공간인 동시에 물을 머금고 토양을 지키며 생물들이 살아갈 터전을 제공한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산림과 토지 이용 부문이 기후변화 대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숲의 보전과 복원이 탄소 감축과 생물다양성 보호를 함께 뒷받침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나무를 심는 것만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는 정책과 산업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훼손된 생태계를 회복하는 일 역시 기존 숲을 보전하는 노력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

사진='나무의 노래' 스틸컷.
사진='나무의 노래' 스틸컷.

이런 현실에서 '나무의 노래'가 보여주는 100만 그루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의지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무엇을 받아왔는지를 되돌려주는 행동이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것을 다시 지구에 돌려주기 위해 숲을 가꾼다. 자연을 자원으로만 바라보던 사고와 다른 삶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과 개인사를 앞세우지 않는 태도 역시 인상적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과시하기보다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에서도 개인의 명성보다 숲과 나무의 존재가 더욱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러한 태도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주인공이 누구인지보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왕실의 후손이라는 배경이나 과학자로 살아온 이력도 숲 앞에서는 하나의 배경으로 물러난다. 남는 것은 나무를 심는 사람과 그가 돌보는 생명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넘어 다음 세대를 위한 숲으로

사진='나무의 노래' 스틸컷.
사진='나무의 노래' 스틸컷.

다큐멘터리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서 살아난다. 관객에게 특정한 결론을 강요하기보다 한 인간의 생활을 따라가도록 한다. 그 생활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나무는 심자마자 숲이 되지 않는다. 오늘 심은 묘목이 그늘을 만들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인간의 생애보다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생명을 위해 자신의 현재를 사용하는 태도는 오늘의 속도와 정면으로 대비된다.

기후위기의 또 다른 문제도 이곳에서 드러난다. 인간은 즉각적인 결과를 선호하지만 생태계의 회복은 훨씬 느리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는 데 필요한 시간, 토양이 회복되는 시간, 동식물이 돌아오는 시간은 인간의 정치 일정이나 기업의 실적 발표보다 길다. 기후 대응이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 시간의 차이에 있다.

숲을 지키는 일에는 사회적 비용과 정치적 선택도 뒤따른다. 산림 보호와 복원에는 지속적인 재원이 필요하며, 각국 정부와 기업,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산림은 기후변화뿐 아니라 생물다양성 손실과 토지 황폐화에도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숲의 면적은 약 41억4천만 헥타르에 달한다. 전 세계 육지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산림 파괴 속도는 과거보다 둔화됐지만 숲은 여전히 농업 확대와 도시화, 개발, 산불 등 다양한 압박을 받고 있다. 보호와 복원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결국 '나무의 노래'는 환경영화라는 장르에서 한 발짝 벗어난다. 기후위기를 크게 외치는 대신 나무를 바라본다. 위기를 수치로 증명하는 대신 한 사람의 생애를 보여준다. 거대한 환경 담론을 개인의 행동으로 가져오는 방식이다.

사진=전재운 감독.
사진=전재운 감독.

진재운 감독은 부산을 기반으로 30년 넘게 환경과 자연을 기록해온 다큐멘터리 제작자다. 그는 환경과 생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꾸준히 카메라에 담아왔다. 이번 작품 역시 오랜 시간 자연을 기록해온 감독의 시선이 한 여인의 삶과 만나 완성됐다.

무엇보다 영화가 부산에서 열리는 '제5회 하나뿐인지구영상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은 특별하다. 부산 출신 감독의 신작이 부산에서 열리는 환경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세계 최초 공개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 측은 작품의 완성도와 대중성, 환경영화제로서의 상징성 등을 고려해 '나무의 노래'를 개막작으로 선정했다. 특히 집행위원장이 감독인 만큼 감독을 배제한 별도의 외부 자문기구를 구성해 선정 과정을 진행했으며, 참여한 외부 전문가 4명이 모두 작품을 개막작 1순위로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재운 감독은 개막작 선정과 관련해 이 영화가 기후위기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자체로 강력한 경고와 희망을 함께 전한다고 밝혔다. 기후위기의 원인과 결과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관객이 발견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도 전했다.

영화가 보여주는 숲은 인간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나무는 산소와 탄소흡수량으로 환산되는 대상이기 전에 살아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 시선의 변화가 중요하다. 자연을 경제적 가치로만 계산할 때 인간은 자연을 다시 상품으로 만들기 쉽지만, 살아 있는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보전의 이유는 훨씬 넓어진다.

■100만 그루의 약속,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위한 숲

사진='나무의 노래' 스틸컷.
사진='나무의 노래' 스틸컷.

나무를 심는 행위에는 미래를 향한 약속도 담긴다. 오늘 심은 나무를 가장 먼저 누리는 사람은 심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숲이 충분히 자랐을 때 그늘 아래에 있을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무의 노래'는 바로 그 시간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모습을 기록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희망은 거대한 구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숲을 보전하고, 훼손된 생태계를 회복하고, 지역사회가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수많은 선택이 필요하다. 국제사회가 산림 복원과 보호에 주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기에 100만 그루라는 숫자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남는다. 한 사람의 특별한 삶을 소개하는 숫자가 아니라 인간이 지구를 대하는 방식에 관한 숫자다. 100만 그루의 나무는 인간이 소비한 것에 비해 얼마나 적은 것을 돌려주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동시에 한 사람이 오랜 시간 행동을 지속할 때 그 작은 실천이 얼마나 넓은 숲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나무의 노래'는 결국 나무를 찍은 영화이면서 인간의 시간을 기록한 영화다.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서 가장 느린 생명인 나무를 바라보며, 인간의 삶도 자연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기후위기를 말하지 않으면서도 기후위기의 현실을 깊게 환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나무의 노래' 스틸컷.
사진='나무의 노래' 스틸컷.

88세의 여인은 오늘도 숲으로 간다. 흙을 만지고, 나무를 돌보고, 자라나는 생명을 바라본다. 그가 바라는 것은 유명해지는 일이 아니다. 아무도 모르게 지구에 산소를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나무의 노래'는 그 조용한 소망을 스크린 위에 남긴다.

그리고 영화가 건네는 메시지는 인간이 자연보다 위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닿는다. 기후위기는 지구가 인간에게 보내는 벌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한계를 넘어선 결과다. 그러므로 해법 역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한 그루의 나무는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그루를 심고 돌보는 행동은 인간이 어떤 미래를 선택하는지를 보여준다. '나무의 노래'가 100만 그루의 나무를 통해 기록하는 것도 바로 그 선택이다. 미래를 소비할 것인지, 미래를 심을 것인지. 영화는 답을 대신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한 여인이 평생에 걸쳐 나무를 심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한다.

그 느린 시간이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 닿을 때, 영화는 환경에 관한 작품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다음 세대에게 남길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문화적 기록이 된다. '나무의 노래'가 부산에서 공개되는 9월의 밤은 한 사람의 숲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지구 전체를 향해 확장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사진='나무의 노래' 포스터
사진='나무의 노래' 포스터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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