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지 못한 '공동 번영' 약속…자유민주주의의 탈선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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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지 못한 '공동 번영' 약속…자유민주주의의 탈선과 위기

연합뉴스 2026-08-11 14:42: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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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론 아제모을루 신간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노동계층 함께해야 부흥 가능"

지키지 못한 '공동 번영' 약속…자유민주주의의 탈선과 위기 - 1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자유민주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치체제로 평가받아왔다. 동유럽 공산권 붕괴와 소련 해체로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체제 경쟁에서의 승리를 확신했다. 자유민주주의는 실제로 지배적 정치 체제로 자리 잡고 번영을 가져다줬다.

그런데 위기가 찾아왔다. 불평등이 심화하고 포퓰리즘과 권위주의가 부상했다. 자유민주주의에 등을 돌리는 시민도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백악관과 대법원, 의회 등 민주주의 대표 기관과 제도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졌고, 다른 서구 국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신간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제목처럼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파헤치는 책이다.

저자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을 달성했는지부터 살펴본다. 먼저 빠른 경제 성장과 평등한 분배, 즉 '번영'과 '번영의 공유'를 이뤘다. 공공 인프라와 보건 부문에서도 큰 성과를 거뒀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교육 격차가 줄었고, 소비자와 노동자 보호도 강화됐다. 대중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정치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상황이 달라졌고, 2000년대 들어 기류가 완전히 바뀌었다. 서구 유권자들은 자유민주주의가 공동 번영이라는 핵심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거나 저버렸다고 믿었다.

저자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다른 견해와 관습에 대한 불관용, 불완전한 지식에 기초한 믿음 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관한 딜레마를 안고 있다. 경제가 고속 성장하던 시대에는 이런 문제가 치명적 갈등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공동 번영에 균열이 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저자는 자유주의가 강력한 성공을 거둔 뒤 기성세력이 됐지만, 새로운 현실에 맞춰 스스로 조정하지 못했다며 '자유주의의 탈선'을 지적한다. 또 자유주의자들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감각을 잃었고, 그와 함께 자유주의의 몇몇 가치도 잃었다고 말한다.

자유민주주의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배경에는 탈산업화가 있다. 산업 자동화와 디지털 기술 도입으로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노동자 간 임금 격차가 커졌고, 성장 과실은 자본가와 엘리트 대졸자에게 집중됐다. 세계화로 인한 저임금 국가와의 교역 확대도 탈산업화를 가속했다.

탈산업 시대에 정치적 지형도 달라졌다. 대졸자 수와 영향력이 급격히 늘면서 엘리트 집단은 노동계층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반면에 노동계층의 사회적 위상은 약화했고, 민주당을 비롯한 서구 중도좌파 정당은 고학력 전문가와 대졸자 중심 정당으로 재편됐다. 정책 역시 노동자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노동계층 유권자는 중도우파와 우파 포퓰리즘으로 이동했다.

대졸자들이 사회의 지배적인 집단이 되면서 자유주의도 변질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유주의는 원래 다양한 공동체가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실험하고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사상이지만, 탈산업 시대에는 하나의 보편적 가치관을 확산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지도층이 자신들의 신념에 맞춰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을 통제하려는 '사회공학'이 등장했다. 자유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보다는 '올바른 가치'가 중시됐다.

자유주의 엘리트들의 선의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사회공학은 의도와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 노동계층의 불만은 강한 역풍으로 이어졌고, 반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했다. 소셜미디어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은 각 진영의 논리와 불만, 비난을 증폭시켜 악순환을 심화시켰다.

다만 저자가 "자유민주주의는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유주의에 새 숨을 불어넣어야 한다며 "노동계층과 함께해야 부흥이 가능하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그는 노동계층과의 단절 극복을 핵심으로 꼽으며 '노동계층 자유주의'를 제안한다. 공동체에 강하게 뿌리를 두고 사회공학을 피하며 공동 번영, 일자리, 공공서비스에 높은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자유주의가 지탱되려면 다시 지어져야 한다"며 "오로지 자유주의의 기본가치들로, 즉 표현의 자유, 공동체, 그리고 공동 번영을 위한 건실한 실천으로 돌아가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소셜미디어와 AI에 관한 우려와 규제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AI 역시 수많은 발전 경로가 가능하며 경로마다 서로 다른 사회적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소수의 거대 테크기업이 당연히 옳은 경로를 선택하리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어떤 선택이 내려지는지는 공동 번영의 미래와 자유주의의 약속 모두에 지극히 중요하다"며 "알고리즘 시대인 오늘날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할 것은 소셜미디어와 AI에 대한 규제"라고 덧붙였다.

생각의힘. 572쪽.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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