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을 위한 100만인 국민 서명 운동을 시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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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을 위한 100만인 국민 서명 운동을 시작하는 이유

프레시안 2026-08-11 12:43:04 신고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헌법을 생각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우리는 선거 때마다 더 나은 대통령을 뽑으면 정치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해 왔다. 그러나 좋은 지도자 한 사람의 의지와 선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권력이 한 사람과 하나의 기관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면, 누가 그 자리에 앉더라도 독단에 빠질 위험은 존재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좋은 권력자를 선택하는 것만이 아니라 권력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게 만드는 데 있다. 대통령이든 국회든 누구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독점할 수 없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헌법의 역할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권력구조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은 1987년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39년 동안 멈춰 있는 헌법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의 결실로 만들어져 올해로 39년째를 맞았다. 비교헌법 연구에서는 세계 헌법의 평균 수명을 약 19년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우리 헌법은 그 두 배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단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다.

그사이 대한민국은 완전히 달라졌다. 대통령 두 명이 탄핵으로 파면됐고, 저출생과 고령화,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등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문제가 국가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사회는 급변했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기본 규칙은 1987년에 멈춰 있다.

개헌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개헌안을 발의했다. 국민에게 헌법개정 발안권을 돌려주자는 제안도 국회에서 나왔다. 그러나 모두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이 개헌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대통령과 정당 등 현재의 헌법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 권력을 내려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개헌은 권력을 어떻게 나누고, 서로 어떻게 견제하게 하며, 모든 권력을 어떻게 다시 국민의 통제 아래 둘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민사회에서도 개헌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번번이 좌절을 겪었다. 국민들의 열기가 모아지지 않으면, 개헌은 문턱은 넘기 힘들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개헌을 열망하는 시민사회 인사들이 모여 몇 차례의 좌담회를 열고, 다시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뜻을 모아보자는 결의를 다지면서 몇 가지의 흐름을 정리했다.

국민주도 개헌의 흐름과 방향

첫째,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을 과감하게 분산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들은 선거 때마다 개헌을 약속하지만, 정작 권력을 잡으면 권력 분산에 관심을 잃곤 한다. 한국 대통령은 예산편성권과 정부 입법권, 권력기관 인사권 등 국정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통치 권한만 놓고 보면 미국 대통령보다 강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권력 집중 구조의 상당 부분은 1962년 군정기 개헌을 통해 굳어졌다. 대통령 개인의 선의와 절제에 국가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 예산과 입법, 인사 권한을 합리적으로 나누고 권력기관에 대한 실효적인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입법부 내부의 견제 장치인 양원제를 도입해야 한다. 하나의 의회가 국민 전체를 대표한다면 다른 의회는 지역을 대표하도록 할 수 있다. 법안을 한 번 더 신중하게 심의하고, 하나의 정당이나 일시적인 다수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다. 인구 5천만 명 이상이면서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인 이른바 '30-50클럽' 국가 가운데 단원제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셋째, 지방정부에 재정권과 입법권을 과감하게 이양해야 한다. 지역마다 산업과 인구구조, 교통과 주거 문제가 모두 다른데 중앙정부가 획일적인 답을 정하는 방식으로는 복잡한 현실을 해결하기 어렵다. 지역이 필요한 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대표형 상원을 도입한다면 양원제와 지방분권을 하나의 개혁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넷째, 국민 헌법발안제를 복원해야 한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정작 국민에게는 헌법을 고치자고 공식적으로 제안할 권리가 없다.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는 주체는 대통령과 국회뿐이다. 국민의 헌법발안권은 과거 우리 헌법에도 존재했지만 유신헌법 제정 과정에서 폐지됐다. 헌법의 주인이 헌법을 고치자는 제안조차 할 수 없는 것은 주권재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일정한 수 이상의 국민이 뜻을 모으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남녀동권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임을 분명히 하고 실질적인 동등성을 실현할 책임을 국가에 부여해야 한다. 단순한 차별금지 조항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일은 남녀동권의 실질적인 관철과 기존 불이익의 제거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다. 스위스와 프랑스 역시 남녀의 실질적 평등과 사회 각 영역에 대한 동등한 접근을 헌법 원리로 두고 있다.

물론 이 흐름과 방향은 개헌에 열망이 큰, 좌담회에 모인 이들의 아직은 추상적인 방향이고, 논쟁적인 부분도 많다. 중요한 것은 개헌을 만들어갈 대다수 국민들의 뜻이며, 온•오프의 개헌플랫폼을 통해 국민들의 토론하고 논의하면서 개헌의 내용을 구체화시켜야 한다.

개헌 논의 과정은 자체가 헌법교육이자 민주시민교육

국민들이 진행하는 개헌 논의 과정 자체가 헌법교육이자, 민주시민이 될 수 있다. 전문가를 불러 수많은 헌법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이 있었지만, 크게 효과는 없었다. 시민들이 교육과 변화의 효능감을 맛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시대 변화에 맞춰 헌법을 수십 차례 손질하는 동안, 우리는 단 한 번의 부분 개정도 하지 못했다.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디지털 기본권, 새로운 가족 형태와 인구구조의 변화처럼 헌법이 새롭게 답해야 할 문제가 생길 것이고, 이 문제를 헌법화시키고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보다 성숙해질 수 있다.

한 번에 완벽한 헌법을 만들겠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추첨형 시민의회와 공론조사 등을 통해 국민이 일상적으로 헌법을 토론하고, 충분한 합의가 형성된 조항부터 단계적으로 개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는 제헌 80주년인 2028년을 기점으로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야기하는 개헌은 선거를 앞두고 등장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개헌의 내용보다 대통령 임기와 권력구조의 유불리가 먼저 계산됐고, 국민은 논의가 거의 끝난 뒤 찬반을 선택하는 존재로만 취급됐다.

대통령과 정당 지도부 몇 사람이 밀실에서 권력을 나누고 마지막에 국민에게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 수 없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협상한 결과만으로는 그 권력을 제대로 제한하기도 어렵다. 역대 개헌 논의가 번번이 무산된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논의의 출발점과 주도권부터 달라져야 한다.

100만인의 참여로 시작하는 국민주도 개헌

시민 개개인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만드는 '개헌을 위한 100만인 국민서명운동'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100만 명의 서명은 단순히 개헌에 찬성한다는 숫자를 모으는 일이 아니다. 대통령과 국회가 독점해 온 개헌 논의의 주도권을 국민에게 돌려달라는 요구다. 정치권이 필요할 때 꺼냈다가 유불리에 따라 접어버리는 개헌이 아니라, 국민의 지속적인 요구로 정치권을 움직이겠다는 주권자의 선언이다.

개헌 논의와 서명운동 자체가 국민들의 일상활동이 될 필요가 있다. 온라인과 거리, 지역과 직장, 학교와 시민사회의 현장에서 서명을 모으는 동시에 시민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헌법이 무엇인지 함께 토론해야 한다. 지역별 시민토론회와 공론장을 열고 그곳에서 나온 의견을 모아 국민개헌 의제로 발전시켜야 한다. 청년과 여성, 노동자와 농어민, 장애인과 소상공인 등 기존의 권력구조에서 충분히 대표되지 못했던 시민들의 목소리도 개헌안에 담아야 한다.

서명이 모이면 국민이 참여하는 개헌특별위원회와 시민의회의 구성을 요구하고, 개헌의 쟁점과 논의 과정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정치권의 협상 결과에 찬반만 표시하는 국민투표가 아니라, 의제 설정부터 조문 작성과 검증에 이르기까지 국민이 전 과정에 참여하는 개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100만 서명운동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위한 운동이 아니다. 대통령의 권력을 다른 정치세력에 넘겨주는 데 그치는 운동도 아니다. 어떤 인물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독단에 빠질 수 없도록 권력을 나누고 견제하며 국민이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운동이다. 우리는 더 나은 지도자 한 사람이 나타나 민주주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좋은 지도자의 선의에 의존하는 체제가 아니라, 누구도 지나치게 강한 권력을 갖지 못하도록 시민이 권력을 통제하는 체제여야 한다.

헌법 제1조는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렇기에 헌법을 바꾸는 과정 역시 국민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민주도 100만인 서명운동의 제안문과 참여방법은 헌법개정국민행동, 복지국가SOCIETY 홈페이지 있으니 뜻있는 분들의 동참을 기대하며, 첫 자리는 다음 주(20일) 온라인 좌담회부터 시작한다. (자세히보기 : ☞ www.welfarestate21.net)

윤석열의 친위쿠데타에서 배워야 할 것은, 누가 권력을 잡더라도 독단과 폭주에 빠지지 않도록 국민의 손으로 민주주의의 울타리를 튼튼히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쿠데타 음모를 빛의 혁명으로 막았지만, 이를 제도화 시키고 시민들의 민주주의 역량을 강화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역사는 다시 되풀이 될 수 있다. 빛의 혁명의 성공 여부는 '국민주도개헌 100만인들'의 참여에 달려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7일 국회에서 열린 5월 임시국회 제1차 본회의에서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결 불참으로 의결정족수에 미달해 투표 불성립을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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