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윤시현 기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이 부실한 개발행위 허가와 준공 승인으로 일대 농지를 8년째 방치해온 가운데, 전라남도보건환경연구원이 작성한 공식 수질 시험성적서의 전문이 공개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영암군수 명의로 직접 채수를 의뢰한 오염수에서 작물을 고사시키는 강알칼리성 수치와 중금속 성분이 검출됐음에도, 군이 이를 확인한 뒤에도 수년간 농민 피해 구제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영암군이 내세우는 '친환경농업 확산을 통한 잘사는 농생명 일번지'라는 군정 슬로건은, 말라 죽은 논바닥과 마주해 실제 현장 대응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수 명의로 의뢰한 성적서에 담긴 'pH 12.8'의 실체
2018년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 일대 10필지, 약 8000㎡ 규모의 성토 공사 과정에서 알루미나 제련 잔재물인 보크사이트가 대량으로 매립됐다. 이곳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침출수와 회갈색 점액질은 인접한 강모 씨의 논 약 1000㎡로 흘러들었고, 수확을 앞둔 벼는 뿌리째 말라 죽었다. 이후 8년간 해당 농지의 농업 생태계는 회복되지 못했다.
피해가 이어지자 영암군은 2019년 7월 2일 군수 명의로 침출수를 채수해 전라남도보건환경연구원에 시험을 의뢰했다. 본지가 확보한 수질 시험성적서(시료명: 민원접수 수질)에는 심각한 수치가 담겨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항목은 수소이온농도(pH)다. 측정값은 12.8로, 통상적인 농업용수 적정 기준인 pH 6~8을 크게 벗어난 강알칼리성으로 나타났다. 비눗물이나 양잿물에 가까운 이 농도는 토양의 양분 흡수 기능을 저해하고 작물 세포 조직을 손상시켜 즉각적인 고사로 이어질 수 있는 수준이다.
오염원을 특정할 수 있는 핵심 지표인 알루미늄(Al) 농도는 리터당 184.000㎎으로 측정됐다. 보크사이트 매립에서 유출된 침출수가 농지 피해의 직접적 원인일 가능성을 행정기관의 공식 검사 결과가 뒷받침한 셈이다. 이 외에도 총질소 100.6㎎/L, 총인 8.774㎎/L, 구리 4.800㎎/L, 철 4.750㎎/L 등 생태계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성분이 잇따라 검출됐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수질관리 전문업체 관계자는 "수소이온농도 12.8은 매우 강한 알칼리성으로 대부분의 농작물은 pH 6~8 범위의 물을 필요로 한다. 토양의 양분 흡수를 방해하고 작물 뿌리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총질소 100.6 mg/L는 비료 성분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장기간 사용 시 질소 과잉으로 작물 생육 불균형 위험이 있다"며 "총인 8.774 mg/L는 농도가 높아 농업용수로 지속 사용 시 환경 영향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구리 수치 역시 작물 독성과 토양 축적 우려가 크며, 알루미늄 184 mg/L는 뿌리 생장을 억제해 농작물 생육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분석이다.
◇성적서 확인하고도 대책 미비…영암군 "사업자 책임" 원론 답변
공식 검사로 오염 실태를 파악했음에도, 이후 영암군의 대응은 더디게 이어졌다. 개발행위 허가 당시 "피해 발생 시 사업자가 모든 책임을 지며 행정조치를 취하겠다"는 부관을 명시했으면서도, 준공 승인은 그대로 내줬다.
피해 농민 강씨는 "2018년 벼가 말라 죽은 후로 바닥이 오염돼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실정이다. 시험성적서에도 오염수치가 명확하게 나타났지만 군이 이를 방관하고 있다"며 "개발행위로 농지를 잃도록 행정을 펴고도 농생명일번지란 군정방침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행정적 책임과 구제 대책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영암군 측은 관련 민원에 대해 "피해 발생의 경우 사업자가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복해 밝혔다.
당시 민원 조사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2019년에 끝난 상황이라 답변하기가 어렵다"며 "많은 고민을 했지만 시간이 흘러 (대책마련이 어려워) 답변을 받는 입장에서는 미흡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명백한 독성 수치가 담긴 성적서를 확인하고도 8년째 별다른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영암군. 현장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가는 사이, '농생명 일번지'라는 군정 구호와 현실 사이의 간극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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