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아를 한자로 쓰면 ‘외로울 고(孤)’와 ‘아동 아(兒)’로 풀이된다. 외로운 아이라는 뜻이다. 부모가 죽거나 버림받은 아이들, 여기에 국가가 부모에게서 강제로 데려간 아이들이라는 말을 더해야 할 듯하다. 비영리단체 고아권익연대가 국가 폭력에 시달린 고아들을 위해 나섰다.
‘고아’ ‘권익’ ‘연대’, 고아들의 권익을 위한 연대. 단체명이 매우 직관적이라는 말에 한민우 고아권익연대 정책국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고아라는 단어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좋지 않지만, 이보다 와닿는 표현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보호 대상 아동, 시설보호 아동 등 다양한 대체어가 나왔지만, 고아권익연대는 2018년 설립 때부터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국가가 버린
지난 4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아권익연대 사무실에서 한민우 정책국장을 만났다. 한 정책국장은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와 시설에서 함께 생활한 선후배 사이다. 1년여 전 조 대표의 제안으로 합류했다. 조 대표가 ‘불도저’처럼 앞장서는 편이라면 한 정책국장은 뒤에서 조용히 ‘서포트’하는 편이다. 한 정책국장은 ‘뒷수습’을 하는 역할이라며 웃었다.
최근 고아권익연대가 가장 주력으로 진행 중인 사업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이하 진화위)’ 관련 일이다. 진화위는 2005년 5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 정리법)’에 따라 그해 12월 출범한 위원회다. 지난 2월26일 과거사 정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3기 진화위가 출범했다.
행정안전부는 3기 진화위 출범을 계기로 지난해 11월26일 2기 위원회 종료 이후 매듭짓지 못한 2111건의 조사 중지 사건을 살펴보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2기 때보다 확대된 진실 규명 대상과 범위다. 특히 국가의 관리‧감독하에 운영된 사회복지기관, 입양 알선 기관 및 집단 수용시설이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그 범위도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이전인 2001년 11월까지로 확대됐다.
지난 3월 취임한 송상교 3기 진화위 위원장은 “진화위의 존재 이유는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 회복에 있다”며 “집단 수용시설, 입양 사건을 전담할 ‘조사3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등 집단 수용시설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조사 역량을 강화해 진실 규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한 정책국장은 진화위 3기 출범과 활동 방향에 환영의 뜻을 보였다. 그는 “고아권익연대 지원으로 2기 때 신청했는데 조사가 중지된 사건이 있다. 3기 진화위가 2기 때 처리되지 못한 사건을 우선 다루겠다고 한 점이 반갑다. 또 진실 규명의 범위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한 기관을 넘어 지원‧관리‧감독한 민간기관에 의해 운영된 사회복지기관까지로 확대한 점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실제 고아권익연대는 지난 2월26일 과거사 정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날 아동양육시설 피해자들과 함께 서울 중구 진화위 건물 앞에 섰다. 이날 고아권익연대를 비롯해 고아신원연합, 아동권리연대 등 단체가 참여했고, 신림원(남송원), 오류마을, 구세군, 부산애아원, 제천영아원 등 8개 기관의 피해자 40여명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아동양육시설에서 수십년간 이뤄진 강제 입소, 폭력‧학대 등에 대한 진상규명 ▲성폭력과 강제 노역, 종교 강요 등 인권 침해 피해 사실 조사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국가 차원의 적절한 후속 조치 마련 등을 요구했다.
한 정책국장은 “3기 진화위가 출범하자마자 기자회견을 열고 (신청서를) 접수했다. 당시 고아권익연대를 통해 신청한 피해자는 수풀원, 신림원, 제천영유아원, 동방아동복지회 등 4개 기관 60여명 정도”라고 말했다.
“과거사 해결은 본인의 의지뿐”
진화위 3기 출범, 신청서 접수
수풀원 신림원 등 피해자 지원
<일요시사>가 입수한 이들의 ‘진실 규명 신청서’는 아동양육시설에서 자행된 국가 폭력의 흔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지워지지 않은 상처를 꾹꾹 눌러 쓴 느낌이 들었다. 이들은 국가가 빼앗은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고 싶다는 뜻을 보였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 그 기억으로 인해 망가진 청년 시절,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노년 시절까지 피해자의 삶은 침전하기만 했다.
그래서 한 정책국장은 더 많은 피해자가 진화위의 문을 두드리길 간절히 바랐다. 한 정책국장은 “과거사 쪽은 피해자 본인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 고아권익연대는 말 그대로 지원하는 단체지, 피해자의 설움을 모두 대변해 줄 수 없다. 본인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끝까지 싸울 수 있는지, 그 에너지가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기 진화위 당시 피해자가 조사를 취하한 사건도 꽤 된다. 진화위는 신청주의기 때문에 피해자가 조사를 취하하면 끝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어떻게 조사를 진행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신청주의는 개인이 직접 청구하거나 서류를 내지 않으면 국가나 지자체가 먼저 나서서 지원하지 않는 방식을 뜻한다.
이어 “조사 과정이 수년 이상 길어질 수 있고 조사관을 만나면 왠지 모를 압박감을 느낄 수도 있다. 본인이 잘못한 건 없지만 조사라는 단어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또 시간을 들여야 하지 않나. 조사 시간이 8시간이 될 수도 있고, 9시간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이런 게 굉장한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잊고 살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문제는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 누구도 구제해 줄 수 없다”고 호소했다.
또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탓하면서 자라왔던 사람들이다. 자신이 뭔가를 잘못해서 버려졌고, 뭔가 문제가 있어서 학대를 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이제는 용기를 가지고 지금까지의 일이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국가와 지자체 또는 사회로 인해 본인들이 피해를 받은 것에 대한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거듭 말했다.
한 정책국장은 인터뷰 내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단체마다 지향점이 다르고 피해자들도 각자 생각이 달라서 자신의 말 한마디로 상처를 입을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고아들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취약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일반적인 취약계층은 사회복지관에 가서 공적 지원을 받거나 하는데 고아들은 그조차도 꺼리는 일이 많다. 부모와 가족이 없이 자랐고 국가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학대를 받으면서 나라조차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국가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기에 더 못 믿는 것도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국가가 구해야
이어 “우리가 홍보를 제대로 못한 탓도 있지만, 고아권익연대가 설립된 지 8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우리 같은 단체가 있는지도 모르는 분이 많다. 또 국가나 지자체가 뭘 더 해줄 수 있겠냐고 기대조차 안 하는 분도 많다. 그런 분들에게 우리의 목소리가 더 많이, 멀리까지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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