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코리아=류석만 기자] 충남 부여군의 곳간 사정이 심상치 않다.
올해 제2회 추가경정예산을 앞두고 각 부서가 요구한 군비는 2,129억원에 달했지만, 실제 군이 당장 동원할 수 있는 가용 재원은 432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결국 부여군은 세 차례에 걸쳐 사업비를 대폭 잘라냈다. 1차 조정에서 1,089억원, 2차 조정에서 824억원으로 줄인 데 이어 지난 7일 기준 3차 조정을 거치며 600억원까지 낮췄다.
당초 요구액에서 무려 1,529억원을 덜어낸 것이다.
그런데도 가용 재원과 비교하면 168억원의 구멍이 남았다.
결국 부여군은 개별 사업 몇 건을 미루는 수준을 넘어 전 부서를 대상으로 한 일괄 감액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 행정운영경비 15%·시설비 12%…‘전 부서 공통 감액’
군은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각 부서의 행정운영경비를 15%, 시설비를 12% 일괄 감액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제2회 추경에 편성된 국내여비와 국외여비, 국제화여비도 전액 삭감한 뒤 향후 재정 여건에 따라 재조정하기로 했다.
당초에는 각 부서가 시급성이 낮거나 연내 집행이 어려운 사업을 자체적으로 선별해 예산을 줄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자체 조정만으로는 부족한 재원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결국 부서와 사업의 구분 없이 공통 기준을 적용하는 단계까지 내몰린 것이다.
말 그대로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조정에는 공무원 인건비 37억원도 포함됐다.
다만 이는 공무원 급여 자체를 삭감하거나 지급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재 편성된 인건비 가운데 연말까지 실제 집행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다시 계산해 당장 사용하지 않을 예산을 줄이는 조치다.
하지만 인건비는 결국 지급해야 하는 필수경비라는 점에서 부담은 남는다.
연말 실제 소요액이 당초 전망보다 많아질 경우 부족분을 다시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행정운영경비와 시설비를 넘어 인건비까지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여군 재정 상황의 무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 ‘삭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업 연기’
이번 추경 조정에서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예산이 줄었다고 해서 사업비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는 사업을 취소하거나 불필요한 지출을 없애는 실질적인 절감이지만, 상당수는 당장 군비를 마련하기 어려워 사업 추진 시기나 군비 부담 시점을 연말 또는 다음 연도로 늦추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청구서를 없앤 것이 아니라 납부기한을 뒤로 미룬 것이다.
실제 의회청사 건립을 비롯해 일반산업단지 공공폐수처리시설, 각종 체육시설 조성 등 주요 대형사업이 사업 추진 시기나 군비 부담 시점을 조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올해 추경에서 어렵게 세입과 세출을 맞추더라도 재정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 미뤄진 사업비는 결국 다시 필요하고, 기존 사업비와 신규 사업이 한꺼번에 겹치면 향후 군 재정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국·도비 사업도 ‘공짜’ 아니다…매칭비가 미래 청구서
부여군의 현재 재정 부담은 하루아침에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국·도비 공모사업과 대규모 시설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외부재원을 확보했지만, 국·도비가 투입되는 사업 대부분에는 일정 비율의 지방비, 즉 군비 매칭 부담이 뒤따른다.
결산자료를 보면 2022~2025년까지 부여군 일반회계에서 다음 해로 넘어간 예산은 연평균 약 1,700억원에 달했다.
특히 대규모 시설과 투자사업이 포함된 자본지출 분야에서 미집행과 이월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문제는 올해 끝내지 못한 사업은 내년에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공모사업과 투자사업까지 추가되면 군비 부담은 겹겹이 쌓인다.
당장은 ‘국·도비 확보’라는 성과로 보였던 사업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군비 매칭과 후속 사업비라는 또 다른 청구서로 돌아오는 구조다.
■ 통합재정안정화기금도 802억→42억…버틸 여력 급감
재정이 어려울 때 사용할 수 있는 안전판도 크게 약해졌다.
부여군의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은 2022년 802억원에서 2025년 42억원 수준까지 급감했다.
과거에는 재정 여건이 악화될 경우 일정 부분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사용할 수 있는 여유 재원 자체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결국 예산 규모는 커졌지만 정작 군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줄어들고, 과거에 시작한 대형사업들이 현재와 미래의 재정을 먼저 차지하는 ‘재정 경직성’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여군은 현재 남은 168억원의 부족 재원을 최대한 자체 조정해 제2회 추경을 세입 범위 안에서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사업 조정과 순기 조정, 전 부서 일괄 감액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부족 재원을 줄이고 있다”며 “특정 부서나 특정 사업에 부담을 떠넘기기보다 전 부서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줄인 예산 가운데 상당 부분이 완전히 없어진 지출이 아니라 뒤로 미뤄놓은 부담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재정 상황을 가볍게 볼 수 없다”며 “그럼에도 군민 안전과 복지, 반드시 추진해야 할 사업은 최대한 지키고 불요불급한 경비는 끝까지 줄여 제2회 추경을 차질 없이 마무리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당장 추경은 맞춰도…‘미뤄진 청구서’가 남는다
부여군이 이번에 예산을 600억원까지 낮추고 전 부서 일괄 감액에 나선 것은 당장의 재정 공백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삭감과 연기는 재정 건전성 회복과는 다른 문제다.
올해 미룬 사업이 내년에 다시 예산을 요구하고, 기존 사업의 군비 부담과 신규 사업이 동시에 몰릴 경우 재정 압박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결국 부여군에 필요한 것은 단기적인 예산 삭감만이 아니라 대형사업의 우선순위 재조정, 계속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국·도비 매칭사업의 장기 재정 영향 분석, 이월·불용 예산 최소화 등 구조적인 재정 관리라는 지적이다.
이번 제2회 추경은 부여군의 올해 살림살이를 맞추는 시험대이면서 동시에 지난 수년간 누적된 재정 부담을 어디까지 털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432억원의 가용 재원으로 2,129억 원의 요구액을 감당해야 했던 부여군.
전 부서 예산을 일괄적으로 깎아 당장의 불은 끄고 있지만, 뒤로 미뤄진 사업비와 누적된 군비 부담이라는 ‘미래의 청구서’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부여군의 진짜 재정 위기는 어쩌면 이번 추경이 끝난 뒤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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