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호르무즈 강경 요구'에 조용한 트럼프…시간 끌며 발빼기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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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호르무즈 강경 요구'에 조용한 트럼프…시간 끌며 발빼기 수순?

프레시안 2026-08-10 19:32: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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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 관련 강경한 요구를 내놓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위협 대신 이란의 취약한 경제를 상기하며 이례적으로 조용한 태도를 보였다. 이란이 시간이 자기 편이라 믿으며 강경 요구를 내세움과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을 끝까지 쥐고 트럼프 대통령의 '발빼기'를 방지하려 한다는 추측이 나온다.

9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미 매체 <액시오스>와의 통화에서 "우린 그들(이란)과 협상에 준하는(semi-negotiating) 접촉만 하고 있을 뿐"이며 "이란의 막대한 인플레이션과 그들이 돈이 없다는 사실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란이 경제적으로 "매우 나쁜 상황"에 처해 있다며 병사 급여를 지급할 돈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해상봉쇄가 이란 정권의 경제적 위기를 악화했다고 덧붙였다.

<악시오스>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오만과의 합의 발표를 미루고 있고 8일 해협 개방을 위한 새 요구 조건을 내놨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나 좌절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체에 "우린 조용히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과의 오락가락하는 협상이 "마치 체스 게임 같다"며 "언제나 그랬든 잘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전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위한 6대 조건을 발표했다. 8일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모하마드 바게르 졸가드르 사무총장은 어떤 언어로든 이란을 위협하거나 모욕하지 말 것, 이란 및 레바논·팔레스타인·예멘·이라크 침공 및 전쟁을 영구적으로 그만둘 것, 해상 봉쇄를 해제하고 이란 주변 해역에서 해군과 공군을 철수할 것, 전쟁 배상금 전액 지급, 제재 해제, 동결자산 무조건 해제 요구를 미국이 수용하지 않으면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지 않을 거라고 압박했다.

이는 이미 이란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6월 종전 양해각서(MOU)보다 더 강경한 내용이다. 종전엔 이란 동결자산 해제에 "양해각서 이행 때"라는 조건이 붙었는데 이번엔 "무조건" 해제가 요구됐다. 제재 해제 또한 양해각서에선 최종 합의 때 "합의된 일정에 따라"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선결 조건으로 이를 요구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양해각서는 핵합의를 포함한 더 넓은 범위 협상에 대한 합의였지만 이번 요구안은 호르무즈 해협 개방 조건으로 제시됐다. 핵문제 등 관련해선 더 많은 조건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AP> 통신을 보면 이란에 기반을 둔 분석가 라흐만 가흐레만푸르는 "호르무즈 해협 분쟁으로 핵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는데 이는 이란 이익에 부합한다"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할 땐 핵협상 재개 때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란 '물가 급등' 중산층 고통에도…'시간은 우리 편' 버티기

이란의 강경 조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국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거라는 믿음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휘발유 가격이 오르는 걸 방치할 수 없을 거라는 계산이다. 전미자동차협회(AAA) 자료를 보면 미국과 이란 충돌 재발로 미국 전국 평균 휘발유값은 7월 말 다시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섰다. 종전 양해각서 체결 뒤 6월 갤런당 3달러대 후반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오름세를 탔다. 이란전 발발 직전 휘발유 평균값은 갤런당 3달러에 못 미쳤다.

미국의 공습 및 방공 미사일이 고갈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도 이란이 버티기를 시도할 수 있게 한다. 장거리 공격을 위한 핵심 무기가 떨어질 경우 지상군 투입이 고려될 수 있지만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란 전쟁은 개시 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일관되게 인기가 없다.

이란엔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이란 지원 후티 반군을 통한 홍해 남쪽 입구 바브엘만데브 해협 봉쇄 또한 협상패로 남아 있다. 후티 반군은 이미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홍해 봉쇄를 선언했다. 이란은 후티 반군의 해당 행동은 자국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란 국영매체는 홍해 봉쇄 또한 이란이 가진 협상패로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AP>는 이러한 시간끌기가 이란 입장에서도 "위험한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통신은 이란에서 전쟁의 경제적 여파가 심각한 수준으로, 미국과 이스라엘 공습으로 이란 산업 기반이 훼손된 데다 미국 해상봉쇄로 원유 수출 상당 부분이 막혔으며 이란 국민들이 식료품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극심한 물가 상승을 견디고 있다고 짚었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은 이란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6월21일~7월20일 이란 식품 물가가 전년 대비 128% 상승했다고 전했다. 식용유, 유제품, 고기, 빵 가격이 크게 상승하며 수도 테헤란의 고소득 가정조차 장바구니 물가가 감당 안 돼 "부유한 빈민"이 됐다며 자조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사기업에 다니는 45살 남성 마지아르는 "우리 식탁에 주로 올랐던 붉은 고기, 이란산 쌀, 고급 식용유 구매를 포기했다"며 "내일 가격이 더 오를까 걱정돼 월급을 받자마자 생필품, 특히 식료품을 사러 달려 간다"고 말했다. 식료품점 주인 마흐무드(63)는 "40년 넘게 가게를 꾸렸는데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며 "이란-이라크 전쟁(1980~88년) 때도 시장은 최소한의 일일 거래량을 유지했는데 지금은 사실상 죽은 상태"라고 토로했다.

트럼프, 경제 압박하며 숨고르기…성공 전망은 '글쎄'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란에선 올해 초 환율, 인플레이션 등 경제 불만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 강경 진압을 실시한 정부 공식 집계로 3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인권단체는 실제 사망자는 두 배 이상일 것으로 본다.

<AP>는 온건파를 중심으로 이란 내부에서 시위 재발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통신은 2015년 핵합의 당시 이란 외무장관이었던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가 최근 기고에서 이란이 이번 전쟁에서 성과를 거뒀고 "외교에 있어 특별한 기회"를 열어줬지만, 조만간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경제 회복이 어려워지고 특히 미국 대선 이후 내부 불안과 새로운 침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란 경제가 피폐했음에도 경제 압박 전략이 즉각적 효과를 거두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알자지라에서 미 조지타운대 카타르 캠퍼스 메흐란 캄라바 정치학 교수는 현 상황을 "양쪽 모두 먼저 손을 내밀어 '이제 앉아서 협상하자'고 말할 의향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의 경제 압박이 성공할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전망하며 "이란은 심각한 경제적 압력에 직면해 있지만 이란 정치 체제가 매우 억압적이라는 걸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의사결정자들은 권력 유지에만 관심이 있고 중산층 어려움엔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은 수십 년간 이란에 압력을 가해왔지만 이란의 입지를 흔들지 못했고 이란 행태를 실질적으로 바꾸지도 못했다. 따라서 이 전략이 지금 시점에서 효과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조용히 발빼기?…외신 "이란 호르무즈 강경 요구로 어려워져"

트럼프 대통령의 이례적 조용함이 이란전 발빼기 수순이라는 추측도 제기되는 가운데 이란이 호르무즈 관련 강경 조건을 내걸어 이를 막으려 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영국 경제외교 전문 싱크탱크 부르스앤바자르 설립 에스판디야르 바트망헬리지는 "이란 당국자들은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면 트럼프가 분쟁 해결 필요성을 못 느끼고 발을 뺄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그들은 트럼프의 양해각서의 여러 조항 이행 보장을 위한 수단으로 해협을 이용하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몇 주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재개방할 경우 이란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할 기반을 준비해 왔고 고위 보좌관들에게 비공개적으로 핵합의 없이도 물러날 수 있다는 용의를 내비쳤다고 전했다. 신문은 그러나 이란이 해협 개방 관련 더 강화된 조건을 내걸며 이러한 선택지가 좁아졌다고 평가했다.

▲9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부 광장에서 한 여성이 반미 광고판 앞을 지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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