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배터리가 1% 남고서야 보조배터리를 찾는 게 사람 마음이다. 통장 잔고가 바닥나고, 건강검진 결과지에 빨간불이 켜지고, 부모님이 수술대에 누워야 "미리 대비할걸" 후회한다. 초고령사회도 다르지 않다. 2023년 기준 몸이 불편한 65세 이상 노인 18.6% 가운데 돌봄을 받는 비율은 47.2%에 그쳤다. 자식도, 국가도 내 노후를 온전히 책임져주지 않는다. 배터리가 방전되기 전에 충전해야 한다. 복지 전문 기자 김현우의 연재 '돌보다'가 진짜 노후 준비가 무엇인지 뜯어본다.
비행기가 고도 1만m 상공에서 난기류를 만나 미친 듯이 요동칠 때 인간은 비로소 한없이 겸손해진다. "아이고 하느님 부처님!"을 자동반사로 외치지 않던가. 하물며 삶의 마지막 종착역인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질수록 종교가 아픈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은 어마무시해질 수밖에 없다.
종교적 신념은 자연스레 노년의 복지 즉, 돌봄 서비스의 핵심 뼈대와 맞닿는다. 흔히들 '종교 재단 요양시설'이라는 간판을 보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나 나올 법한 수상쩍은 사이비 집단을 떠올리며 색안경부터 끼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종교 재단이 요양원을 운영한다고 해서 나라에서 요양보호사를 한 명 더 붙여주거나 시설 기준을 눈감아주는 특혜는 없다. 현행법상 일반 시설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진짜 차이는 법의 테두리가 닿지 않는 '보이지 않는 1인치'에서 갈린다.
거동이 불편해도 휠체어를 밀어 평생 다니던 본교회 예배에 모시고 가거나 여의치 않으면 목회자가 직접 찾아와 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린다. 최근 발표된 2026년 고령 만성질환자 대상 연구나 수많은 체계적 문헌고찰을 보더라도 종교적 돌봄은 낯선 환경에 뚝 떨어진 노인들의 심리적 회복력을 높이고 무너지는 정신력을 꽉 잡아주는 든든한 철근 역할을 한다.
"그럼 우리 부모님도 당장 짐 싸서 종교 요양원으로 모셔야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섣부른 판단은 접어두자. 종교계 요양원을 평가할 때 보호자가 두 눈 부릅뜨고 봐야 할 사실은 '안 믿을 자유'가 실제 생활에서 100% 보장되느냐다. "우리 시설에 왔으니 오늘부터 무조건 아멘 하세요. 법회 나오세요"라고 은근슬쩍 강요한다면 그건 돌봄의 탈을 쓴 영적 폭력에 불과하다.
평생 교회·성당에 다닌 분은 계속 성경책을 펼치게 돕고, 절에 다닌 분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게 두고, 아무것도 안 믿는 분은 남들 기도할 때 다른 재미있는 선택 프로그램을 즐기도록 내버려 두는 세심함. 어르신의 칠십 평생, 팔십 평생의 삶을 억지로 지우지 않고 익숙했던 삶의 궤적을 요양원 침대 위에서도 조용히 이어가게 돕는 것. 종교계 요양시설이 가진 진짜 가치와 한계는 '존중'의 줄타기 속에 숨어 있다.
10일 여성경제신문이 최영순 영락노인전문요양원 원장을 만나 종교계 요양원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다음은 최영순 영락노인전문요양원 원장과의 인터뷰 전문.
―종교계가 운영하는 요양시설은 일반 요양시설과 비교했을 때 돌봄 철학이나 운영 방식에서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나
"종교적 신념을 가진 요양원과 그렇지 않은 시설 사이에는 돌봄 철학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종교적 신념이 가진 선한 영향력이 결국 인격적인 돌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을 한 사람의 삶과 역사를 가진 인격체로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입소자와 가족 입장에서도 자신이 오랫동안 믿고 의지해온 종교적 기반이 시설에서도 유지된다는 점이 신뢰와 안정을 주는 경우가 많다. 실제 입소 상담을 하다 보면 '여기라면 내가 믿어온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겠다'는 점을 중요하게 보는 분들이 있다. 평생 이어온 종교활동이 입소와 동시에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에서 큰 위안을 받는 것이다."
―종교시설이라고 해서 법적인 인력 기준이나 시설 기준이 다른 것은 아니다 종교적 가치나 설립 이념은 실제 돌봄 현장에 어떻게 반영되나
"장기요양 관련 법과 법정 인력배치 기준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전제다. 우리 시설 역시 그 기준 안에서 운영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전문인력을 추가로 두면서 어르신의 안전과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종교적 가치와 설립 이념을 실제 생활과 프로그램에 어떻게 녹여내느냐에 있다고 본다. 평생 다니던 교회가 있는 어르신의 경우 상황이 허락하면 그 교회에 모시고 가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가능한 한 기존 생활을 이어가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갑자기 환경이 바뀐 고령자는 낯선 공간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익숙하게 해온 종교활동이나 생활습관을 이어갈 수 있다면 시설 적응에도 도움이 된다. 종사자에게도 법인의 설립 이념과 종교적 철학을 꾸준히 교육한다. 그 가치가 결국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고 안전하게 돌보는 태도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생활이나 영적 돌봄이 고령 입소자의 정서적 안정에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평생 의지해온 종교활동은 노년기에도 삶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는 중요한 힘이 될 수 있다. 특히 요양원에 들어오면 집과 가족을 떠났다는 상실감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분들도 있다. 그때 자신이 평생 믿어온 종교가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큰 버팀목이 될 수 있다.
2년 전 이곳에서 100세로 세상을 떠난 어르신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평생 한 번도 예배를 드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곳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내가 직접 이 요양원을 선택했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고 이곳에서 편안하게 잠들어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한다고 하셨다. 그분은 자신이 가진 재산을 복음통일과 북한 선교를 위해 사용해 달라며 기부하기도 했다.
가족이 없던 분이어서 늘 제 손을 잡고 '원장 선생님도 힘들지 않으냐. 늘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제가 그분에게 의지하는 순간도 있었다. 돌아가신 뒤에는 제가 상주 역할을 맡아 장례 절차를 진행했고 생전에 바라던 대로 자신이 살았던 이북이 보이는 실향민 묘원에 모셔드렸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울 수 있다. 다만 신앙을 가진 어르신에게는 자신이 믿어온 가치와 천국에 대한 소망이 삶을 정리하고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힘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종교 공동체가 있다는 점이 어르신의 외로움이나 사회적 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되나
"우리 재단은 기독교 재단이다. 한 분, 한 분의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마지막 삶에서도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중요한 역할로 생각한다. 그래서 재단 소속 목사가 매주 정해진 날 어르신들의 예배를 지원하고 있다. 직접 예배뿐 아니라 재단 소속 교회의 영상예배도 제공한다. 오랫동안 신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했던 목회자가 정기적으로 찾아와 어르신들의 신앙생활과 영적 활동을 돕기도 한다.
평생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온 분에게는 이런 관계가 끊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종교활동이라고 해서 예배 한 시간을 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기도하고 자신이 여전히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갖는 과정이 포함된다. 가족 방문이 많지 않거나 인간관계가 줄어든 어르신에게는 이런 만남 자체가 중요한 사회적 관계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평생 신앙생활을 해온 어르신들에게 예배 시간은 가장 기다리는 시간 가운데 하나다. 얼굴 표정이나 반응에서도 그 시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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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설립 이념은 직원들의 돌봄 태도나 조직문화에도 영향을 준다고 보나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원장도 이념을 바탕으로 어떤 시설을 만들어갈 것인지 운영 철학을 직원들과 계속 공유한다. 그 안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종교적 설립 이념과 신앙을 바탕으로 하되 결국 현장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은 어르신과 종사자 모두의 인권을 존중하는 태도라고 본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도 있을 수 있고 돌봄 현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나 거부감이 생기는 순간도 있다. 특히 장기요양 현장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럴 때 조직이 어떤 원칙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법인이 추구하는 종교적 신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운영자의 철학이 확고하면 조직 전체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를 간헐적인 교육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과 매일 소통하면서 반복해서 이해시키려 한다. 그런 과정이 쌓이면 개인의 생각을 넘어 조직문화가 된다. 실제로 우리 기관의 조직문화가 입소자 가족뿐 아니라 취업을 고민하는 종사자에게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고 느낀다. 어르신에게 좋은 시설이 되려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존중받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영적 돌봄의 수준은 종교적 배경뿐 아니라 인력이나 근무환경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이 있다
"종교적 이념이 영적 돌봄과 무관하다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종교적 이념이 있기 때문에 영적 돌봄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과 방향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시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가 프로그램과 인력 운영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종교적 신념만 있다고 좋은 근무환경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종사자가 어떤 처우를 받고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근무환경은 인력배치나 처우 업무 부담과 연결돼 있다. 종교적 가치와 함께 종사자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여건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종교시설의 장점을 살리면서 다른 종교를 가진 어르신이나 무교인의 선택권은 어떻게 보장하고 있나
"종교활동을 강제하지 않는다. 입소 기준에서도 종교가 있는지 없는지를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 시설을 선택하고 생활하는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도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오히려 우리 기관이 종교적 사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다. 모든 종교활동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어르신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담을 주거나 불이익을 주는 일도 없다.
종사자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 생활하다 보면 스스로 종교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분들도 있다. 다른 종교를 가졌던 어르신이 종교를 바꾸는 사례나 종사자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변화가 있더라도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여야 한다. 우리 기관을 방문한 분들이 자주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어르신과 직원 모두 표정이 편안하고 밝아 보인다'는 것이다. 저는 그런 모습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
―종교계 요양시설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모습은 무엇이라고 보나
"종교법인이 운영하는 시설이라면 설립 당시의 종교적 신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운영자의 철학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치가 실제 돌봄과 조직문화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 그 철학이 제대로 현장에 자리 잡는다면 어르신에게는 '살고 싶은 공간' 종사자에게는 '일하고 싶은 조직'이 될 수 있다. 가족에게는 부모를 안심하고 맡기고 자신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된다. 결국 종교적 신념이 현장에서 어떤 돌봄과 관계로 구현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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