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편된 '더 나은 삶 지수(BLI)' 실측 분석에서 우리나라가 38개국 중 19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와 교육 등 물질적·객관적 지표는 최상위권에 올랐으나, 노동 환경과 사회적 고립, 주관적 삶의 만족도 등에서는 최하위권에 머물며 한국 사회의 취약한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평균적인 발전 지표에 가려진 '불평등과 박탈' 문제 해소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보사연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보건복지 이슈앤포커스 제471호 'OECD 더 나은 삶 지수(BLI)의 동향과 함의'를 발간했다고 10일 밝혔다. 연구 책임자인 정해식 보사연 사회보장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이 2024년 말 기준 데이터셋을 구축해 측정한 결과 한국의 종합 BLI 점수는 5.99점으로 OECD 38개 회원국 중 19위에 올랐다.
영역별 성적표를 보면 극단적인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은 주거(1위), 지식과 기술(2위), 환경의 질(8위), 시민참여(9위) 영역에서 최상위권 또는 상위권을 기록했다. 세부적으로는 폭염 노출 인구 비율(0%, 공동 1위), 주거비 부담을 뺀 가구 처분가능소득 비율(84.83%, 2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수학 평균 점수(527.3점, 2위), 저성취 학생 비율(7.29%, 3위), 출생 시 기대수명(83.5년, 5위) 등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삶의 질과 직결된 주관적 웰빙(35위), 노동(36위), 사회적 연결(37위) 영역은 바닥권에 머물렀다. 특히 여성 중위임금이 남성보다 28.95% 낮은 '성별 임금 격차'와 곤경 시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응답이 20.64%에 달한 '사회적 지지 부족' 지표는 OECD 전체 회원국 중 38위를 기록하며 최하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이 밖에도 주 50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유급노동 비율(13.69%, 34위), 자살·알코올·약물 과다 복용을 포함한 '절망사' 사망률(인구 10만 명당 27.97명, 31위), 부정적 정서 균형(14.85%, 29위), 삶의 만족도(6.5점, 36위) 등 사회적 박탈과 격차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들이 하위권을 맴돌았다.
보사연은 이번에 새롭게 개편된 OECD BLI 체계가 '격차 지표'와 '박탈 지표'를 대폭 도입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전체의 평균 수치가 높아졌더라도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묻는 '수직적·수평적 격차'와 사회가 정한 최소한의 기준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묻는 '박탈' 실태를 정밀하게 들여다보겠다는 의도다.
정해식 연구위원은 "이번 지수가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더 나은 삶을 누리는 데 있어 과연 누구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가'를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한국은 객관적인 물적·지식적 조건이 최상위권임에도 장시간 유급 노동과 절망사, 성별 격차, 사회적 지지 부족 등으로 인해 삶의 질 기반이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부정적 정서나 절망사의 증가 등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 위기의 신호"라며 "변화된 현실과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회 규범을 만들어 내고, 삶의 질 지표 관련 모니터링을 상시화해 실제 정책 실행이 국민의 체감 웰빙 향상으로 이어지는지 지속해서 점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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