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 칼럼] 이야기 소묘⑭ 요즘 작업: 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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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 칼럼] 이야기 소묘⑭ 요즘 작업: 기하학

문화매거진 2026-08-10 16:25: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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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 칼럼] 이야기 소묘⑬ 요즘 작업: 이미지란 무엇인가?에 이어 

[문화매거진=이응 작가] 지난 글에서 나는 이미지란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이 결국 내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고 어떤 예술가로 남을 것인가를 묻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 내가 선택한 하나의 이미지 형식, 즉 ‘기하학’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기술력을 가졌어도, 작가가 진정으로 그릴 수 있는 영역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일까. 그림을 그릴 때마다 하고 싶은 것과 별개로 내 안의 요구가 이끄는 방향으로 이미지가 나아간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해낼 수 있는 것과 진정으로 다룰 수 있는 것 사이에는 분명 미묘한 제한과 한계가 있고, 결국 내가 그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역시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최근 작업 중인 작품 / 사진: 이응 제공
▲ 최근 작업 중인 작품 / 사진: 이응 제공


최근 몇 년간 내가 붙들고 있는 이미지는 기하학이다. 굳이 용어를 붙이자면 기하학적 추상화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원과 선, 면 같은 가장 단순한 도형을 반복하고 변주하며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작업인데, 뚜렷한 방향을 정해 시작했다기보다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다 보니 기하학에 닿아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기하학에 먼저 닿아 있었던 이유도 조금씩 알게 됐다. 단순한 도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서와 구조를 살피게 되었고, 보이는 대상의 이면에 놓인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일정한 질서 안에서 움직이며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도 작업과 잘 맞았다.

▲ 보도블록 패턴 찾기 / 사진: 이응 제공
▲ 보도블록 패턴 찾기 / 사진: 이응 제공


이러한 성향의 뿌리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가 가장 매료되던 이미지는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길가의 보도블록이나 방바닥의 타일처럼 일상에 줄 맞춰진 무늬들, 그리고 그 균일한 패턴이 문득 끊기거나 미세하게 균열이 일어나는 지점에 눈이 갔었다.

왜 그런 반복에 관심을 가졌는지 그때는 잘 몰랐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내 안의 강박증에서 비롯된 관찰이었다.

그렇게 세상의 다양한 무늬를 좇다 보니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겉면의 패턴에서 내부의 패턴, 즉 마음의 패턴으로 이동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보이지 않는 것이 결국 보이는 것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 반복을 오래 바라볼수록 내가 흥미를 느낀 것은 무늬 자체보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질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질서를 가장 간결하게 다룰 수 있는 형식이 내게는 기하학이었다.

예로부터 수많은 화가가 기하학을 사랑했고 이를 응용해 저마다의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나 역시 기하학이라는 형식을 통과해 이미지를 빚어내고 있는데, 이 방법론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함 속에서 무한히 복잡해질 수 있는 확장성에 있다. 오래전 화가들이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통해 신지학적이고 종교적인 힘, 즉 진리에 닿기 위한 방편으로 이를 추종했던 지점 역시 공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 기하학적 회화 작업 / 사진: 이응 제공
▲ 기하학적 회화 작업 / 사진: 이응 제공


올해 들어 작업하는 이미지는 장황한 글과 설명을 줄이고, 단순한 도형이 지닌 깊고 복잡한 변주를 통해 스스로 자기 아우라를 뿜어내기를 바란다. 이 그림들이 놓이는 공간이 일상과 다른 밀도를 띤 ‘예외적 공간’의 힘을 상상하면서 작업에 정진 중이다. 그래서 작품을 마주한 관객이 잠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미적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회화는 그리는 작가를 쏙 빼닮았으면서도 동시에 작가와는 독립된 ‘타자’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그렇기에 작품을 본다고 작가에게 완전히 닿을 수도 없고, 작가를 안다고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

언어는 선형적이고 순차적으로 다가오지만, 이미지는 그와 달라 매우 직관적이고 몸 전체로 감각과 만난다. 그래서 회화는 언제나 말해질 수 있는 부분과 결코 말해질 수 없는 영토를 동시에 남겨두는 매체다. 어쩌면 그래서 작가는 이미지를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국 자신이 그릴 수밖에 없는 이미지를 발견해 가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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