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추진되는 메가특구를 두고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첨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R&D) 인력을 중심으로 근로시간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인 반면, 고용노동부는 현행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추가적인 예외 입법은 실제 현장의 필요성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내 국회 제출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메가특구특별법’(이하 특별법)을 두고 부처 간 입장차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규제 완화와 노동자 보호 사이에서 어떤 접점을 마련할지가 향후 법안 논의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0일 청와대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메가프로젝트 2차 민관 합동 점검회의’를 주재했다. 이번 회의는 호남·충청·영남권 등 지방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3대 메가프로젝트의 후속 조치와 사업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주요 현안에 대한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메가특구특별법을 둘러싼 논의에도 관심이 쏠렸다. 특별법의 핵심 쟁점으로 꼽히는 ‘주 52시간 특례’를 두고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가 입장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근로시간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인 반면, 고용노동부는 추가적인 근로시간 특례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반도체와 AI 등 국가 핵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초광역 단위의 ‘메가특구’ 조성을 추진하면서 노동시간과 고용 규제를 둘러싼 논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메가특구는 규제 특례와 인프라 지원을 특정 지역에 집중해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골자다.
현재 논의되는 특별법에는 첨단산업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제 적용을 완화하거나 제외하는 방안과 함께 고소득 전문직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소득 전문직 근로시간 규제 완화) 등이 담길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와 함께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당사자 동의를 전제로 현행보다 2년 연장하거나 파견근로 허용 업종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두고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양대 노총은 지난달 31일 잇따라 성명을 내고 메가특구를 명분으로 노동시간뿐 아니라 기간제·파견 등 고용 규제까지 완화하려는 움직임에 우려를 나타냈다. 특정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노동관계법상 보호 장치를 폭넓게 완화할 경우 노동권이 후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경제계는 첨단산업의 특성을 고려한 근로시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반도체와 AI, 배터리 등은 기술 개발 주기가 짧고 연구개발 일정에 따라 업무량이 크게 달라지는 만큼 획일적인 주 52시간제만으로는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R&D 인력이나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고소득 전문직 등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규제를 일부 유연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내부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김정관 장관은 지난 6일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일해서 성취하겠다는 의지를 제도가 꺾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발언하며 근로시간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도체 R&D 인력뿐 아니라 스타트업을 포함한 첨단산업 전반의 근로환경을 산업 특성에 맞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고용노동부 김영훈 장관은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주 52시간제 예외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김 장관은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현행 주 52시간제 테두리 안에서도 역대 최고 실적을 거두고 있디”며 “이미 현행법상 특별연장근로 등 보완 장치가 마련돼 있음에도 기업들이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처 간 이견이 공개적으로 드러나자 이 대통령도 조율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두 장관에게 “격렬하게 토론해야 현장에서 싸우는 일이 없다”는 취지로 발언하며 부처 간 충분한 논의를 당부한 상태다.
주 52시간 특례를 둘러싼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반도체특별법 제정 과정에서도 경영계는 연구개발 직무에 한해 주 52시간제 적용을 제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계와 정치권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근로시간 특례 조항은 최종 법안에서 제외된 바 있다.
특별법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당시와 유사한 갈등이 재현되는 양상이다. 특히 노동정책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책임지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근로시간 규제를 놓고 공개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향후 부처 협의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주 52시간 특례 적용 여부가 법안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앞서 삼성전자 노사협상에 대한 긴급조정권 발동과 대기업 초과이익 배분 방식,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한 성과급 교섭 여부 등을 두고도 두 장관은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을 각각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오며 간접적인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이에 정부가 산업별 특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노동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성대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처럼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산업의 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은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다”며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산업별 특성에 맞게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 간 대화와 조율도 중요하지만 신기술이 생산현장에 빠르게 적용되는 만큼 산업별 특성과 노동환경을 고려해 근로시간 제도 등 노동 제도 전반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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