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고려아연을 미국 핵심광물 공급망 재건의 주요 투자 사례로 직접 언급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이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대한 핵심광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국 내 채굴부터 제련·정제, 제조까지 이어지는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고려아연이 보유한 제련 기술과 미국의 자원·산업 기반을 결합한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이 한미 경제안보 협력 사례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10일 미국 의회전문매체 롤콜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국무부에서 광업계 관계자 200여명과 원탁회의를 열고 핵심광물 공급망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러트닉 장관은 첨단 제조업과 인공지능(AI), 반도체, 에너지, 국방 분야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산업 기반이 되는 원료를 해외 적대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강조했다.
특히 미국 정부의 목표를 미국 내에서 광물을 채굴하고 가공·정제해 제조까지 이어지는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고려아연의 74억달러 규모 미국 핵심광물 제련소 프로젝트를 주요 투자 사례로 거론했다.
러트닉 장관이 고려아연을 직접 언급한 배경에는 미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제련·정제 분야에서 고려아연이 갖춘 기술력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려아연은 울산 온산제련소를 운영하며 수십년간 아연·연·동 등 비철금속을 생산해 왔다. 특히 복잡한 저품위 원료를 처리하는 동시에 제련 부산물에서 희소금속과 유가금속을 회수하는 통합공정 기술을 축적했다.
이 같은 기술은 고려아연이 미국에서 추진하는 통합제련소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해당 제련소에서는 아연·연·동·은을 비롯해 안티모니·인듐·비스무트·텔루륨·팔라듐·갈륨·게르마늄 등 미국 정부가 지정한 60개 핵심광물 가운데 11종과 반도체급 황산을 생산할 계획이다.
갈륨과 게르마늄, 인듐, 안티모니 등은 반도체와 방위산업, 통신·에너지 분야에 활용되는 전략광물이다. 하나의 통합제련소에서 여러 핵심광물을 동시에 생산·회수할 수 있는 만큼 미국 입장에서는 공급망 구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사업의 실행 가능성과 속도도 강점으로 꼽힌다. 고려아연은 미국 내 기존 아연제련소와 관련 광산 등을 확보해 ‘크루서블 징크(Crucible Zinc)’를 출범시켰다. 부지 선정부터 인허가, 원료망과 숙련인력 확보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신규 제련소와 달리 기존 산업 기반을 활용할 수 있는 구조다.
현지 제련소 폰드장 5곳에 쌓여 있는 약 62만t의 부산물에서 핵심광물을 회수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온산제련소에서 축적한 자원순환 기술을 적용해 신규 원료뿐 아니라 산업 부산물과 스크랩까지 원료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미국 정부 역시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미 연방정부가 주요 투자자로 참여한 데 이어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한국 기업이 주도하는 사업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 대형 인프라 인허가 신속처리 제도인 ‘FAST-41’ 대상에 지정됐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프로젝트 크루서블이 단순한 한국 기업의 미국 현지 투자를 넘어 한국의 제련·정제 기술과 미국의 광물자원·산업 인프라를 결합하는 한미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러트닉 장관 역시 이날 “신뢰할 수 있는 공급을 확보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겠다”며 동맹국들과 협력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실제 산업에 사용할 소재로 만드는 제련·정제 역량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검증된 기술을 가진 동맹국 기업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며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한국의 제련 기술과 미국의 자원·시장·정책 역량을 결합한다는 점에서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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