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창간 26주년 특별기획
「대한민국 산업의 길을 바꾼 경영자」
고(故) 최종현 SK그룹 제2대 회장
[편집자 주] 창간 26주년을 맞은 폴리뉴스는 대한민국 경제와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선택을 남긴 경영인들을 다시 조명하는 특별기획 「대한민국 산업의 길을 바꾼 경영자」를 시작한다. 기업의 성공담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경영인의 판단이 당시의 국가 경제와 산업구조 변화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살펴보는 산업사 프로젝트다.
첫 번째 인물은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이다. 오는 8월 26일은 그의 28주기다. 섬유기업 선경을 에너지·화학·정보통신으로 확장한 그의 경영 궤적은 한 기업의 성장사를 넘어 한국 산업화의 격변기와 맞닿아 있다.
폴리뉴스는 10부작을 통해 최종현 회장의 선택과 도전을 산업사적 시각에서 다시 짚는다. 수출과 소재, 에너지, 정보통신, 인재육성과 SKMS를 거쳐 오늘의 반도체·AI 시대까지, 과거의 선택이 무엇을 남겼고 어떤 한계를 가졌는지를 함께 살펴본다.
1973년. 한국 경제와 선경은 거의 같은 시기에 갈림길 앞에 섰다.
정부는 그해 중화학공업화를 선언했다. 섬유와 의류 등 노동집약형 상품을 만들어 해외에 팔던 경제에서 철강·조선·기계·전자·화학 등 자본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산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국가적 전환이었다.
같은 해 선경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11월 최종건 창업회장이 세상을 떠났고 동생 최종현이 경영 전면에 섰다.
그가 넘겨받은 것은 오늘날의 SK와는 거리가 있었다. 전쟁의 폐허에서 일으킨 직물회사를 기반으로 화학섬유와 원사까지 영역을 넓혀가던 기업이었다.
회사를 더 크게 만드는 일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었다.
선경은 앞으로 무엇을 하는 기업이 될 것인가.
최종현 시대의 선경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달라졌다. 직물을 더 많이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직물을 만드는 원료를 거슬러 올라갔다. 생산한 제품은 직접 해외시장에 내다 팔았고, 섬유에서 화학 소재로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마침내 석유까지 올라갔다.
선경의 변화는 이른바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당시 최종현이 선택한 길에는 하나의 방향이 있었다.
산업의 흐름을 따라 기업의 경계를 다시 그리는 것이었다.
선경을 만든 최종건, 그 다음을 맡은 최종현
최종현 회장의 시대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최종건 창업회장을 정확하게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선경을 만든 사람은 최종건이었다.
한국전쟁으로 공장이 폐허가 된 상황에서 직기를 복구해 1953년 선경직물을 일으켰고, 섬유기업으로 성장할 기반을 만들었다. 선경이 완제품인 직물만 생산하지 않고 원사 등 상류 영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도 최종건 시대부터였다.
1969년 설립된 선경합섬은 그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한국 경제에서 섬유는 단순한 소비재 산업이 아니었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했던 개발 초기 한국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해 세계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수출산업이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다른 국가들이 값싼 노동력으로 같은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면 가격 경쟁만으로 우위를 지키기 어려웠다. 원료를 해외에 의존하면 국제 가격 변동에도 취약했다.
결국 섬유기업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택해야 했다.
더 싸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인가.
최종건이 전후의 폐허에서 선경이라는 기업의 토대를 세웠다면, 1973년 경영권을 이어받은 최종현 앞에는 두 번째 문제가 놓였다.
그 토대 위에 어떤 산업을 올려놓을 것인가였다.
1973년, 한국의 기업들도 '다음 산업'을 찾아야 했다
공교롭게도 최종현이 회장이 된 1973년은 한국 산업구조 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진행되던 당시 정부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는 '공업의 고도화'였다. 노동집약적 산업만으로는 수출 확대와 소득 증가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정부는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해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도전적인 목표였다.
실제 한국은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하며 당초 목표보다 빠르게 고지를 넘어섰다.
그러나 숫자만으로 당시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 중화학공업화는 기회인 동시에 거대한 위험이었다.
섬유공장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지만 정유·화학·철강·조선 같은 산업은 달랐다.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고 한번 방향을 잘못 잡으면 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여기에 1973년 1차 석유파동까지 겹쳤다.
원유 가격 급등은 석유를 해외에 의존하던 한국 경제에 충격을 줬다. 원료와 에너지를 수입해 제품을 만들고 다시 해외에 파는 경제구조에서 원료 확보는 단순한 구매 업무가 아니었다.
기업의 생존 문제였다.
최종현이 선경의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시대였다.
더 많이 만드는 대신 산업의 '위쪽'으로 올라갔다
1970년대 선경의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생산량을 늘리는 것만으로 성장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직물을 만들던 기업이 원사로 올라가고, 다시 소재로 이동했다. 생산만 담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기능도 강화했다.
1976년 종합상사 설립이 그 한 장면이다.
선경은 그해 1억1335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당시 한국 기업에 수출은 선택이 아니었다. 국내시장만으로 대규모 투자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정부 역시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산업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선경에 종합상사의 의미는 물건을 해외에 더 많이 파는 데만 있지 않았다.
해외시장을 직접 상대하게 되면서 어떤 제품이 팔리는지, 어떤 원료가 필요한지, 국제 가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기업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
생산기업이 시장을 직접 보기 시작한 것이다.
1년 뒤인 1977년에는 또 하나의 변화가 나타났다.
선경화학이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에 성공했다.
직물과 원사 중심이던 사업이 보다 기술집약적인 화학 소재로 이동하는 과정이었다.
각각 떼어놓고 보면 종합상사 설립과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은 서로 다른 사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면 선경이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가 보인다.
생산에서 수출로, 완제품에서 소재로.
기업의 활동 영역이 계속 넓어지고 있었다.
'다각화'보다 '연결'…최종현 경영의 초기 문법
기업이 성장하면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새로운 사업을 선택했느냐다.
1970년대 선경의 확장은 전혀 관계없는 산업을 하나씩 붙이는 방식과는 다소 달랐다.
직물을 만들려면 원사가 필요했다.
화학섬유 원사의 원료를 거슬러 올라가면 석유화학에 닿는다.
석유화학 원료의 출발점에는 다시 석유가 있다.
완제품에서 출발해 원료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다.
오늘날 경영학에서는 이를 수직계열화로 설명하지만, 당시 선경에는 기업의 운명을 바꾸는 선택이었다.
원료를 외부에서 사오는 기업과 원료 단계까지 확보한 기업은 국제 원자재 가격이 출렁일 때 대응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경험한 1970년대 한국에서 그 차이는 더욱 컸다.
그렇다고 당시 선경이 처음부터 정유기업을 목표로 모든 사업을 설계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산업은 계획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의 전략 역시 시장 상황과 정책, 기회를 만나며 변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최종현 체제에서 선경이 기존 사업의 경계를 고정해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섬유라는 출발점보다 산업의 연결관계를 보면서 다음 사업을 찾기 시작했다.
이 경영방식은 이후 SK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된다.
사업을 키우던 시기에 왜 '사람'에게 돈을 썼나
최종현의 초기 경영을 사업 확장만으로 설명하면 빠지는 부분이 있다.
인재에 대한 투자다.
그가 회장에 취임한 이듬해인 1974년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설립됐다.
당시는 기업이 해외 생산기지나 기술 확보에 돈을 쏟기에도 부족했던 시절이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적 수준의 학자를 키우겠다는 목표로 장기적인 장학사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단기간의 경영성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배경에는 '나라가 발전하려면 세계 수준의 인재가 필요하다'는 최종현의 인식이 있었다.
한국 경제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중화학공업화는 공장만 지어서는 완성되지 않았다. 기계와 화학, 전자산업을 운영할 기술인력과 연구자가 필요했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도 과학기술 향상과 인력 개발은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됐다.
산업의 고도화와 사람의 고도화가 동시에 필요했던 셈이다.
최종현은 이 문제를 기업 내부 인재육성의 범위를 넘어 바라봤다.
회사가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우는 일이 장기적으로 국가와 기업의 성장 기반이 된다고 본 것이다.
훗날 그의 대표적인 경영철학으로 자리 잡는 '십년수목 백년수인'의 인재관도 이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 늘어나자 경영도 '개인의 감'에서 시스템으로
기업이 작을 때는 최고경영자가 대부분의 일을 직접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계열사가 늘고 사업 영역이 넓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사람의 경험과 감각만으로 수많은 조직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는 어렵다.
1970년대 후반 선경 역시 이 문제와 맞닥뜨렸다.
수출과 화학, 소재 등으로 사업 영역이 넓어지면서 서로 다른 회사가 같은 기업집단 안에서 움직여야 했다.
최종현은 이 문제를 '경영 시스템'으로 풀려고 했다.
1979년 정립된 SKMS(SK Management System)는 그 결과물이었다.
최고경영자의 생각과 기업의 경영원칙을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체계로 정리하려는 시도였다.
SKMS는 이후 여러 차례 변화하며 오늘날까지 SK 경영의 중요한 축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1부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 구체적 내용보다 등장한 시점이다.
SKMS가 만들어진 것은 선경이 더 이상 한두 개 사업을 가진 기업이 아니게 되던 시기였다.
사업의 확장이 조직 운영 방식의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회사가 커진 다음 사람을 관리한다'기보다, 더 큰 기업으로 가기 위해 사람과 시스템을 먼저 준비하려 했다는 점에서 최종현의 경영방식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섬유의 끝에서 '석유'를 만나다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 선경의 사업 확장은 결국 하나의 산업에 닿는다.
석유다.
화학섬유의 원료를 따라 올라가면 석유화학이 나오고, 그 위에는 정유산업이 있다.
선경이 추진해온 수직계열화의 관점에서 보면 정유는 멀리 떨어진 신사업이면서 동시에 기존 사업의 가장 위쪽에 있는 산업이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연결된다고 해서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사업은 아니었다.
정유업은 국가기간산업이었다.
필요한 자금의 규모부터 섬유산업과 비교하기 어려웠고, 해외에서 원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능력도 필요했다.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은 한국에서는 에너지 문제가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경제와 직결돼 있었다.
그런 산업에 섬유기업 선경이 뛰어들겠다는 것은 기존 기업의 크기를 키우는 차원이 아니었다.
기업의 정체성을 바꾸는 선택이었다.
1980년 선경은 대한석유공사, 유공을 인수한다.
1973년 최종현이 회장에 취임한 지 7년 만이었다.
이 인수로 선경은 더 이상 섬유기업이라는 이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업이 됐다.
창업이 아닌 도약…기업의 '크기'보다 '위치'를 바꿨다
최종현 시대 초기의 선경을 평가하면서 경계해야 할 것도 있다.
오늘날 SK의 성공을 과거 한 사람의 선견지명으로 모두 설명하는 방식이다.
현재 SK의 반도체와 AI, 배터리 사업이 1970년대부터 예정돼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산업환경도 달랐고 각각의 사업이 성장하기까지 수많은 경영자와 구성원의 판단이 있었다.
최종현의 의미는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변화하는 산업환경에서 기업이 현재의 사업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반복했다는 데 있다.
최종건이 전쟁의 폐허에서 선경을 세웠다면 최종현은 그 기업이 산업 안에서 자리 잡을 위치를 바꿨다.
직물에서 원사로, 원사에서 소재로, 국내 생산에서 세계시장으로.
그리고 그 끝에서 에너지를 바라봤다.
1973년 그가 넘겨받은 것은 섬유기업 선경이었다.
7년 뒤 선경은 대한민국의 핵심 기간산업인 정유업에 들어갔다.
회사의 이름은 그대로였지만 기업의 성격은 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최종현 시대의 시작을 단순한 '경영권 승계'로만 읽기는 어렵다.
창업은 아니었다.
그러나 창업 이후 기업이 어떤 길을 걸을 것인지를 다시 설계한 도약이었다.
그리고 그 도약의 가장 크고 위험한 승부가 1980년 시작된다.
대한석유공사 인수.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섬유기업 선경은 왜 정유사업에 자신의 미래를 걸었을까.
특별기획 제2부에서는 두 차례 석유파동과 국가 에너지 전략, 대한석유공사 인수전의 배경을 따라가며 최종현 회장의 가장 중요한 경영 승부 가운데 하나를 들여다본다.
[폴리뉴스 정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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