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세금을 걷던 고위공직자 출신 인사가 이번에는 ‘고리대금’ 의혹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전 지방국세청장 출신 왕모씨가 지인 A씨와의 금전거래 과정에서 법정 최고이자율을 초과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왕씨는 앞서 경찰에서 한차례 불송치 처분을 받았지만 A씨 측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사건은 다시 검찰 판단을 받게 됐다.
왕씨는 국세청 고위직을 지낸 인물이다. 2009년 지방국세청장에 오른 그는 7급 공채 출신으로 국세청 1급 직위까지 오른 인물로 알려져 있다. 퇴직 후에는 세무법인 대표로 활동했다. 세금과 금융거래, 이자 제한 규정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전직 세무공무원이다. 국세청 고위직 출신이 고금리 대부업을 운영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다.
7급 공채서
1급 직위까지
사건의 출발은 2021년 6월이다. 취재진이 입수한 금전소비대차 공정증서에는 2021년 6월2일 10억원, 같은 달 9일 5억원 등 총 15억원을 빌려준 것으로 기재돼있다. 계약서상 채권자는 Y 주식회사, 채무자는 R 주식회사였다. 그러나 관련 문건과 계약 체결 과정에는 왕씨가 채권자 측 대리인 또는 관계자로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의신청 이유서에 따르면 왕씨는 A씨가 추진하던 서울지역 부동산 개발사업과 관련해 15억원을 대여하기로 한 뒤, 자신이 보유한 법인 등을 통해 금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난다. 공정증서상 이자는 연 24%로 기재됐다. 이후 별도의 각서와 정리표에는 연 36%를 전제로 한 이자 지급 내역이 등장한다.
A씨 측이 정리한 자료에는 2021년 6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이자 명목으로 지급된 금액이 총 4억1700만원에 이른다고 적혀 있다. 원금 15억∼16억원 규모의 거래에서 1년여 사이 수억원대 이자가 오간 셈이다. A씨 측은 이 과정이 정상적인 지인 간 금전거래가 아니라 사실상 고리대금이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후다. 2025년 작성된 문건에는 기존 채무의 원리금을 총 38억원으로 확정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왕씨의 계산 방식은 2022년 7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월 3% 복리를 적용하는 구조다. 월 3%는 단순 환산만 해도 연 36%에 해당한다. 여기에 매월 발생한 이자를 원금에 더해 다음 달 이자를 계산하면 채무는 빠른 속도로 불어나게 된다.
실제 문건에는 원금 15억원에 월 3%를 적용해 월 이자 4500만원을 산정하고, 이자를 지급하지 않으면 이를 다시 원금에 합산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2025년 2월3일자로 작성된 또 다른 금전소비대차 계약서에는 대여금을 38억원으로 확정한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기존 대여금과 이자를 합산해 원리금을 확정한다는 취지와 함께, 2025년 2월28일까지 변제하고 연 20%의 이자와 지연이자를 지급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이 밖에 왕씨는 채무자에게 “원금 중에 일부는 다른 사람의 자금이니, 2%를 추가로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업 이자 제한 위반 의혹…‘고리대금’ 법정행
경찰 한 차례 불송치…이의신청 거쳐 다시 검찰로
A씨 측은 “애초 15억∼16억원이던 채무가 고율 이자와 복리 계산을 거치면서 38억원으로 부풀려졌다”며 “법정 최고이자율 제한을 우회하기 위한 재약정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왕씨 측은 재판 과정서 해당 계약이 기존 채무를 정산한 결과일 뿐이며, 실제 대여 원금과 미지급 이자를 반영한 정상적인 약정이었다는 취지로 다툴 것으로 예상된다.
왕씨에 대한 수사기관의 판단은 한 차례 뒤집혔다. 왕씨의 대부업법 위반 사건에서 서울강남경찰서는 2026년 6월15일 왕씨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A씨 측은 같은 해 7월 법률대리인을 통해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서와 이유서를 제출했다.
경찰은 이자율 제한 위반 여부와 관련해 실제 원금과 변제 내역이 명확하지 않아 법정 최고이자율 초과 여부를 정확하게 계산하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등록 대부업 혐의에 대해서는 왕씨가 광고나 공개적인 모집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돈을 빌려줬다고 보기 어렵고, 외부에서 대부업자로 인식될 정도의 영업 활동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불송치 근거로 삼았다.
A씨 측은 경찰 판단이 ‘대부업’의 영업성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고 반박했다. 대부업 여부는 광고나 공개적인 고객 모집이 있었는지 판단할 것이 아니라, 금전 대여의 반복성과 계속성, 영리 목적, 거래 규모와 횟수, 기간, 상대방 수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의신청 이유서에는 “대부업으로 인식될 정도의 영업 활동이 없었다”는 경찰의 판단이 왕씨와 관련된 다른 금전 대여 사례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결과라는 주장이 담겼다.
이자 부담
‘눈덩이’
A씨 측은 왕씨가 A씨 관련 법인 외에도 여러 개인과 법인을 상대로 금전을 대여했으며, 확인된 대여 규모만 29억원을 넘는다고 주장했다. 이의신청서에는 A씨 측에 대한 16억원 상당의 대여 외에도 다른 차용인에게 약 10억원, 또 다른 관계자에게 2억1500만원, B씨 측 법인에 1억원을 빌려준 사례 등이 적시됐다.
A씨 측은 이 같은 거래가 모두 사실이라면 일회성 지인 간 차용이 아니라 반복적·영업적인 금전 대여 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결국 A씨 측의 이의 제기로 사건은 다시 검찰 판단을 받게 됐고, 이자율 제한 위반 혐의는 법정에서 다뤄지게 됐다.
A씨 측이 제출한 이의신청 이유서에는 왕씨와 별도로 금전거래를 한 B씨도 등장한다. 이유서에 따르면 왕씨는 B씨에게 화장품 신약 관련 개발 자금 명목으로 2023년 8월29일부터 2024년 4월28일까지 7차례에 걸쳐 10억원 이상을 대여한 것으로 주장됐다.
적용된 이율은 연 41.5% 상당으로, 왕씨는 이자를 수취한 혐의로 형사고소를 당한 것으로 기재됐다. 이유서에는 해당 사건에 대해 서울강남경찰서가 송치 결정을 내렸다는 내용도 담겼다.
B씨 사례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왕씨의 금전 대여가 특정 지인과의 일회성 거래에 그친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 여러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는 정황이 된다. 특히 연 41.5%라는 이율은 법정 최고이자율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어서 왕씨의 반복적 대여와 이자 수수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 자료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채무자 C씨 측 회사에 대한 2억1500만원 대여와 D씨와의 합의에 따른 R사 대상 1억원 대여까지 더해진다. 이의신청 이유서상 왕씨의 확인된 대여 규모는 A씨 관련 16억원, B씨 관련 약 10억원 이상, C씨 측 2억1500만원, D씨 관련 1억원 등 원금만 29억원 이상이다.
투자 명목
40% 이상
이번 사건은 A씨와 왕씨 사이의 분쟁에만 그치지 않는다. 추가로 입수한 고소장에는 C씨와 D씨가 고소인으로, 왕씨와 배우자 임모씨, 아들 왕모씨가 피고소인으로 적시돼있다. 고소장상 죄명은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다.
고소인들은 왕씨 일가가 관할 관청에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서 개인과 법인을 상대로 반복적으로 금전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C씨 관련 고소장에는 2024년 8월10일 왕씨가 C씨의 회사를 상대로 1억5000만원을 대여하고, 같은 날 별도로 6500만원 상당의 차용증을 작성해 총 2억1500만원을 빌려줬다는 내용이 담겼다. 약정상 이자율은 연 20%, 상환이 지연될 경우 적용되는 지연이자도 연 20%로 기재됐다.
고소인 측은 이를 두고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이자를 수취하는 방식으로 무등록 대부업을 영위했다”고 주장했다.
또 D씨 관련 고소장에는 2025년 8월12일 R사를 상대로 1억원을 빌려주고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이자 명목으로 총 750만6840원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고소인 측은 “단순한 일회성 차용이 아니라 계속적·반복적으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수수한 구조”라며 “실질적으로 영업적인 금전 대여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채권 회수 과정도 논란거리다. Y사 측은 2025년 7월 A씨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 2021년 6월2일 10억원, 같은 달 9일 5억원 등 합계 15억원을 대여했고 금전소비대차 약정서를 작성해 공증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원리금을 변제하지 않을 경우 모 신탁사에 신탁된 회사 건물에 대해 매매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회사 통장과 카드에 대한 압류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통보했다.
줄줄이 나오는 채무자들…추가 고소장 제출
배우자에 아들까지 등장 ‘패밀리 사채업?’
A씨 측은 이를 단순한 채무 변제 요구가 아니라 회사 운영 자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압박으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실제 법원 절차도 진행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자료에는 Y사가 R사 등을 상대로 15억원 상당의 채권가압류를 신청한 내용이 나온다. 청구 채권은 2021년 6월2일 10억원, 같은 달 9일 5억원의 대여금 반환 채권으로 기재됐다. 가압류 대상에는 채무자가 제3채무자에게 갖는 채권과 부동산 신탁수익권 등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채권 회수 압박이 말에 그치지 않고 실제 법적 조치로 이어진 셈이다.
A씨 측 이의신청 이유서에는 왕씨 측이 재개발 사업 관련 권리와 지분을 요구하거나, 이를 채무 변제와 연계했다는 주장도 담겼다. 왕씨가 채권자 측 법인의 실질적인 의사결정에 관여하면서 가처분과 가압류 신청을 주도했다는 취지다.
D씨와 왕씨 사이의 통화 녹취록은 왕씨가 금전 대여와 이자 수수 구조를 어느 정도 직접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로 거론된다. 2026년 2월23일 작성된 녹취록에는 통화 당사자가 D씨와 왕씨로 기재돼있다.
통화에서 왕씨는 채권 회수 문제를 설명하면서 “가압류를 하고” “나도 집사람하고” “최종적인 책임은 우리 집사람”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어 왕씨는 “5년 동안 빌려줘가지고 이자도 못 받고 있다”고 주장하다가 곧바로 “한 1년은 받았지”라고 말했다. 또 “2022년 7월부터 지금 이자 한 푼 못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왕씨의 발언대로라면 적어도 2022년 7월 이전 약 1년 동안은 이자를 지급받았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이자를 전혀 수수하지 못했다는 주장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A씨 측 이의신청 이유서에도 같은 녹취 내용이 증거로 첨부됐다.
A씨 측은 왕씨가 통화에서 약 1년간 이자를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며, 금전 대여와 이자 수수 사실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제시했다. 표면적으로 15억원을 빌려준 주체는 법인이지만 계약 협의, 이자 요구, 추가 약정, 채권 회수와 법적 조치 과정에는 왕씨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최종 책임은
우리 집사람”
A씨 측은 이를 두고 “왕씨가 단순한 채권자 측 관계자가 아니라 세무 자문, 채권 회수, 법적 압박을 복합적으로 활용한 정황”이라고 주장한다. 왕씨의 배우자가 금전거래와 채권 회수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쟁점이다. 왕씨가 녹취에서 “집사람”과 “최종적인 책임”을 언급한 데다 추가 고소장에는 배우자와 아들까지 피고소인으로 적시돼있기 때문이다.
다만 가족이 계약서나 계좌의 명의자로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공동 대부업이나 공범 관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자금 출처와 의사결정 과정, 이자 귀속 주체, 채권 회수 지시 여부 등이 확인돼야 한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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